고야의 콩트 2(42)

시뻘건 집

by 최병석

진정해 씨는 최근에 집을 옮겼다. 서울에서 직장 때문에 내려와 자리를 잡은 지 꼭 10년 되었다. 10년 동안 큰 별고 없이 무탈하였었는데 작년 초쯤 윗집에 새 이웃이 이사 오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좋은 집에 산다는 얘기는 윗집의 이웃이 어떤 모양새로 자리를 잡느냐의 문제였다. 이사 오는 날부터 시작된 거침없는 행보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시도 때도 없는 쿵쿵거림과 괴성에 가구 끄는 소리에 육중한 발망치 소리는 진정해 씨를 결코 진정시켜주지 않았다. 결국 그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해 그 좋았던 집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중을 기한 끝에 어렵사리 지금의 집이다. 제발 여기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길 학수고대하면서 이삿짐을 정리하는 중이다.비싼 돈을 주고 포장이사를 했건만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행태에 속을 끓이며 창밖을 내다보던 정해 씨가 뜨끔했다.블록너머의 옆 동에 기괴한 집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 이 야심한 시간에 기괴하게도 시뻘건 조명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다른 색도 아닌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시뻘건 색이라니... 기분이 싸해진다.


'저 집은 뭐 하는 집이지?'


'혹시 어린 아기를 위한 조명? 에이 그래도 저건 아닌데'


'오늘만 특별히 저러는 걸지도...'


정해 씨가 궁금해졌다. 더하여 소름이 일어선다.


'에이 별것 아니겠지!'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집은 늘 시뻘건 색이다.

조금 이른 저녁시간에는 안 보이는데 저녁 7시가 넘어가면 영락없는 뻘건조명이다. 밤이 늦도록 아니 새벽 해가 뜰 때까지 시종일관 빨갛다.


"여보, 이리 와서 저 집 좀 봐요 저 시뻘건 집"


남편이 성능 좋은 핸드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는다.


"100배 줌을 자랑하는 핸드폰의 사진으로 댕겨보니 무언가 희한한 그림이 훅 다가오는데... 이건 부적인가?"


남편이 한마디 한다.


"내일이 마침 토요일이니 낮에 그 집 주변을 살펴보자고"


밤이 아닌 환한 대낮에 살펴보면 무언가 답이 보이지 않겠냐는 생각에 마음을 합하고 둘의 발걸음을 모았다.


"여보! 별건 없는데요?"


"아녀 저기 봐, 저 동 1층이 사주나 운세라고 쓰여 있잖아, 혹시 저 집의 사이비교주 정도가 그 집에 사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또다시 소름이 돋는다.


"여보 나 무섭다. 우리 다른 데로 이사 가야 하는 거 아녀?"


"그래? 아니 그 정도야?"


기껏 전쟁터를 피해 이사를 왔는데 이젠 기괴한 두려움 때문에 이사를 해야 한다. 진정해 씨가 진정이 안 되는 가슴을 들이대며 남편을 졸라댄다.


남편이 한숨을 팍팍 내쉬며 창밖을 내다본다. 말이 이사지

정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기에 걱정이 태산이다.


'흐이구 이를 어쩐다 또 이사를 해야 하나?'


하늘에 무심히 떠 있는 달빛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번뜩이는 무언가가 들어온다.


"여보 자기야! 이리 와봐 봐 "


호들갑을 떠는 남편을 보며 정해 씨가 남편이 있는 서재방으로 들어선다.


"아니 왜요? 이사 갈 생각을 굳힌 거예욧?"


"아니 그 그게 아니고... 저기 저 목욕탕 글씨 보여?"


"어디요? 어디 오라 저기 저 글씨요?"


"그래 저기 저 붉은 네온글씨 말이야"


"네에? 그게 모여?"


"잘 보라고 저 글씨가 퍼져있는 각도하고 옆집 저 층하고의 반사각도가 절묘하지 않냐고"


그랬다. 목욕탕의 붉디붉은 네온글씨가 옆동의 거실유리창에 절묘하게 반사되어 진정해 씨의 눈에 시뻘겋게 들어선 것이었다.


진정해 씨는 두려움을 벗게 되었다. 허망하게 진정이 된 셈이다. 아코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돋아났던 소름이 갈길을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중이다.

토요일 연재
이전 11화고야의 콩트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