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머나 씨는 기가 죽었다. 다름 아니라 하필 그때 걸려온 전화로 손주 놈을 유치원에 놔둔 채 집에 왔다가 깜짝 놀라 고꾸라질 뻔했었던 일을 겪고 난 때문이었다. 머나 씨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잃을 뻔 한 손주 놈을 끌어안고 집에 당도하니 며늘아기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두 눈을 똑바로 치켜든 채 놀랐다는 표정을 들이민다. 놀랐을 테지, 머나 씨도 쓰러질 뻔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죄인이 되었다. 이제 달리 뾰족한 방안도 없는데 그놈의 손주를 어찌해야 하는지 다들 한숨이다.
"아니 그때 하필 전화가 오는 바람에 그리 된 거라니까"
항변을 해 보는데도 찝찝하다.
"내 이런 일이 자주 있나? 이번이 처음 아니냐고?"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은 해 보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자꾸만 깜박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심하기는 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차례 반복하며 기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중이다.
<손주 놈 실종사건>이 지나고 나니 일전에 전화통화로 그 사단을 일으키게 된 주인공(?) 미나 씨가 슬금슬금 떠 오르는 중이다.
모처럼 이웃사촌을 만나 신이 났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바람에 대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미나 씨! 잘 있었지요? 일전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준비물 사러 함께 가지 않을래요?"
마침 주민센터강좌가 코앞에 있다. 유화 그리기를 위한 준비물을 사야 하기에 겸사겸사 전화를 넣어봤는데 미나 씨의 반응이 쿨했다.
"미나 씨 우리 내일 만나서 점심도 함께하고 준비물도 같이 살까요?"
"거기 죽전역 AA몰 4층에서 오전 11시 반에 볼까요?"
"아, 네 죽전역 AA몰 4층 말씀이죠? 네 거기서 뵐게요"
다행이다. 그 사달이 나고 혹시라도 자기 전화 때문에 힘들어할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머나 씨는 조심스럽게 유치원의 손주 놈을 픽업하기까지 비어있는 시간을 채워 볼 요량으로 미나 씨와의 약속을 잡아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반드시 손주 놈을 지켜내고야 말리라는 굳은 다짐도 해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약속한 AA몰 4층 에스컬레이터 옆 의자에 당도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쇼핑몰 안은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였다. 머나 씨의 시선은 부지런히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쫒는다. 요즘의 옷차림은 왜 이렇게 다들 패셔너블한가? 모델들이 따로 없고 모두들 연예인 같다.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 시간을 한 움큼씩 쥐고 사라지는지 어느덧 약속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미나 씨의 모습이 안 보인다.
'혹시 정말 미나 씨가 단단히 삐진 거 아녀?'
염려에 고민을 더하고 있는 찰나에 그녀로부터 전화다.
"머나 씨! 지금 어디세요? 오시려면 아직 멀었어요?"
"네에? 저 지금 4층인데 미나 씨 안 보이는데요?"
머나 씨는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눈을 씻고 살펴봐도 미나 씨의 모습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저는 지금 SG식당 앞 의자에 앉아있는데 머나 씨는 안 보여요 대체 어디 계신 거예요?"
큰일이다. 약속이 어긋나 오늘의 손주전선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중이다. 도무지 그녀가 안 보인다.
'미나 씨! 도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성이 엄가요 이름이 머나 씨 <엄머나 >씨가 또 껀수를 올렸다. 알고 보니 미나 씨와 통화할 적에는 죽전역 AA몰 4층이라고 얘기해 놓고 본인의 기억 속에는 성복역 AA몰 4층을 집어넣어 두었다. 결국 미나 씨는 죽전역에서 기다렸고 머나 씨는 성복역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어머나> 이를 어쩐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