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학점은행제를 시작했을 땐
단순히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학위가 꼭 필요하다거나,
경력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는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 학기, 두 학기씩 학점을 쌓아가고
학위 요건이 채워졌을 때,
나는 비로소 이 공부가 내 커리어에도
분명한 의미를 남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건축공학 학점은행제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자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건설기술인 경력수첩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종이 한 장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승급 절차를 밟고 나니
‘학력지수’라는 항목에서
내가 채운 학점들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동안의 공부가 단순히 시험 준비가 아니라,
내 경력을 끌어올리는 발판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경력수첩 등급이 올라갔다고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다.
현장은 여전히 거칠고,
도면은 여전히 복잡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내 마음가짐이다.
예전엔 ‘나는 아직 자격이 없다’며
늘 한 발 물러서 있었는데,
이제는 작은 회의 자리에서도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학문적 근거를 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 말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었다.
경력수첩 승급은
단순히 종이 위의 등급 변화가 아니었다.
공부가 경력으로,
경력이 다시 공부의 동기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장에서 배운 걸 다시 강의 속 지식과 연결하고,
강의에서 배운 걸 현장에서 실험해보는 과정.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건축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점은행제 덕분에
나는 내 삶의 또 다른 설계도를 손에 쥐게 됐다.
경력수첩이라는 결과도 얻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앞으로 이걸 어디에 쓸 것인가’였다.
건축은 늘 미완성이고,
삶도 늘 수정선 위에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계속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게 지금의 나를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