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누른 국수는 손끝에서 시작됐다.
어릴 적, 우리 집의 대표 메뉴는 단연코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시던 누른 칼국수였다. 밀가루 반죽을 정성스럽게 밀고 썰어 만든 면발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허기를 채워주는 생계의 수단이자, 엄마의 사랑이 오롯이 담긴 한 그릇이었다.
입안 가득 면이 퍼지면, 그 안에 들어간 갖가지 채소들이 어우러지며 씹는 즐거움과 입안 가득 번지는 구수한 풍미가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곤 했다. 면은 밀가루에서 태어나지만, 그 맛은 정성과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엄마의 국수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들에서 함께 일하던 일꾼들의 세참, 혹은 저녁 식사로도 자주 올랐다. 신기하게도, 거의 매일 먹었지만 쉽게 질리지 않았다. 다음 날 또 국수가 나온다 해도 내심 기대되었고, 식사 시간이 기다려졌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 맛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집과 엄마의 품을 닮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엄마가 국수를 만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늘 흥미로운 일이었다. 큰 대야에 밀가루를 붓고, 물을 넣어 반죽을 치기 시작하면, 엄아의 팔과 손끝에선 숙련된 리듬이 흘러나왔다. 반죽이 알맞게 되면, 그 덩어리를 초석자리 위에 올려놓고 기다란 홍두깨로 수십 번 밀었다. 밀 때마다 밀가루 가루를 뿌려가며 반죽을 납작하게, 마치 종이짝처럼 얇게 만들어냈다.
이렇게 밀어낸 반죽을 접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큰 칼로 일정한 간격으로 싹둑싹둑 썰면, 드디어 칼국수 면이 완성됐다.
끓고 있는 가마솥의 멸치 국물에 그 면발을 넣고, 채 썬 푸른 호박을 함께 넣어 팔팔 끓였다. 국수 한 그릇의 맛을 결정짓는 양념장도 그냥 만들어지는 법이 없었다. 간장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참기름, 생고추, 부추, 다진 마늘, 파, 양파 등을 송송 썰어 넣어 정성껏 만들었다. 이 양념장을 한 숟갈 떠서 국수에 풀어 먹으면,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입안을 휘감았다.
여름이면, 마당에 솟아나는 샘물로 삶은 면을 헹궈내고 찬물에 식혀낸 뒤, 양념장을 올려 비빔국수로 만들어 먹었다. 숟가락이 필요 없을 만큼 젓가락질만으로도 목으로 술술 잘 넘어갔다. 때때로 고기가 곁들여지는 날이면, 그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어린 나에게 그날의 국수는 잔칫날 음식 못지않은 기쁨이었다.
이렇듯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내던 손칼국수는, 배고픈 시절 가장 가성비 높은 음식이었다.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 않았고, 밀가루만 있으면 넉넉한 한 끼가 마련되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겐 국수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하나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절약과 정성, 배려와 사랑이 한 그릇에 담겨 있던 시절의 추억 말이다.
한때 제주도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나는 엄마의 국수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제주에서 유명한 ‘돔배 국수’는 척박하고 가난한 시절, 사람들이 쉽게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고 한다. 제주산 돼지고기뼈를 푹 고아,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어 국수면을 넣었다. 그 위에 돼지 수육 몇 점을 올려 내놓는다.
국수와 고기를 입 안 가득 넣고 씹으면, 마치 세상의 모든 맛이 내 입안에서 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국수를 먹으며 나는 자주 엄마의 손칼국수를 떠올렸다. 비록 맛과 재료는 다르지만, 음식 속에 담긴 마음과 정성이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처럼 자주 국수를 먹는 일상은 아니지만, 유독 마음이 허하거나 쓸쓸한 날이면 나는 여전히 그 국수가 생각난다. 밀가루 냄새, 국물에서 피어오르던 향,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 먹던 그 순간. 가족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 나눠 먹던 그 한 그릇의 국수는, 그 어떤 고급 음식보다 따뜻하고 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