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인도 부처님 성지순례길에 나섰는가

프롤로그 (나를 찾는 여정)

by 영 Young

살다 보면 문득,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은 어느 날, 바쁜 일상 속에서 불쑥 올라왔다. 홍수처럼 마주하는 사건. 사고 뉴스, 인간관계의 불신, 탐욕과집착, 분노, 가족부양 책임 등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닌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조용히 물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인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나를 만나러 가야겠다.”


그렇게 해서, 나는 떠나기로 했다.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질문들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나섰다.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다시 만나는 여정의 ‘성지순례’였다.


인도 땅을 밟으며 나는 다섯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진정한 자유는 가능할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뭘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보드가야, 바이 살리, 사르나트, 쿠시나가르, 룸비니. 라즈기르 부처님의 삶이 남겨진 그 길 위에서 나는 묻고, 듣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곳은 과거의 흔적만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말보다 깊은 침묵이 있었고,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었다.


그 길에서 나는 감동했고,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아이처럼 웃기도 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욕심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를 얻고 싶어 떠났지만, 오히려 내려놓음으로써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이 기록은 길 위에서 마주한 나의 속마음, 스쳐간 인연들 속에서 느낀 따뜻함, 그리고 잠깐의 침묵 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담았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주었다.


삶은 직선처럼 곧게 뻗은 길이 아니었다. 돌고, 멈추고, 때로는 길을 잃으면서 더 깊어지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순례는 결국 ‘진짜 나’를 향해 걷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독자의 마음에도 조용한 울림이 되길 바란다. 언젠가 자신만의 순례길에 오르기를 권한다. 꼭 인도가 아니어도 괜찮다. 마음이 향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충분하다. 그리고 이 작은 이야기가, 그 길 위에서 순례자를 비추는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도 성지순례 준비 과정]


▷ 주요 일정

델리 출발(야간열차) → 곤다역 도착(2일 차)

사르나트 녹야원(3일 차)

룸비니(4일 차)

쿠시나가르 열반당(5일 차)

바이샬리(6일 차)

죽림정사, 부다가야(7일 차)

라즈기르, 칠엽굴, 나란다불교대학, 영축산, 기원정사(8일 차)

바르나시 경유 사르나트 → 델리 복귀(9일 차)


▷ 동행: 아내, 누나 ▷ 안내 및 운전: MR. GUMA (현지 불교 신자) ▷ 이동 수단: 4인승 개인택시


성지순례 여정

1월 초, 저녁 무렵 델리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16시간을 달려 곤다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서는 사전에 예약한 승용차와 운전기사 MR. GUMA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인도인 불교 신자로, 성지순례를 전문으로 안내하는 숙련된 기사였다.


30분가량 이동 후, 순례의 첫 목적지인 쿠시나가르에 도착했다. 이곳의 한국 사찰 녹야원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시설이 깔끔하고 텃밭 채소로 자급하며, 김치 등 순례자들이 남긴 한국 음식도 있었다. 숙박비는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율보시로 운영되며, 우리 일행 3명은 미화 150달러 정도를 보시금으로 올렸다.


3일째 아침,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하신 사르나트를 둘러보고, 기원정사가 있는 한국 절에서 점심 공양을 받았다. 이후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를 향해 이동했다. 네팔과의 국경 지역인 소나울리에 늦은 밤 도착해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네팔 비자를 발급받아 룸비니로 입국했다. 이곳에서 유명한 한국 사찰 대승석가사, 마야데비 사원, 부처님이 자라신 카필라성과 쿠단, 그리고 아쇼카 석주 등을 참배했다.


그날 저녁, 다시 인도로 돌아와 쿠시나가르에 도착했고, 대한사 인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했다. 5일째는 열반당과 화장터를 참배하고, 부처님 출가지로 알려진 바이샬리로 향했다. 짙은 안개로 인해 춘다의 공양터는 들르지 못했지만, 바이샬리의 아쇼카 석주와 진신사리탑은 둘러보았다. 고요한 풍경은 마치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고풍스러웠다.


6일째는 부처님께서 오래 머무신 라즈기르로 이동하여, 죽림정사, 칠엽굴, 빔비사라왕 감옥터, 그리고 영축산에 올랐다. 이곳은 『법화경』 등 수많은 경전의 배경이 되는 신성한 산이다.


7일째는 부다가야에서 보리수나무 아래 정각터와 대탑, 그리고 약 11km 떨어진 수자타 공양터, 우루벨라가섭터, 수자타 아카데미, 전정각산 등을 순례했다.


8일째는 다시 사르나트와 바르나시를 거쳐 델리로 귀환했다. 사르나트에서는 미얀마 사찰에 머물며 숙식을 해결하고 약간의 보시금을 올렸다.


순례의 의미와 정리


이 여정은 4대 성지 외에도 라즈기르(왕사성), 카필라바스투, 죽림정사, 기원정사를 포함한 총 6대 성지를 순례한 일정이었다. 부처님은 생애 대부분을 이들 성지 인근에서 보내셨으며, 오늘날까지 불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총경비는 3인 기준, 택시 렌트비 약 800달러,

식음료 및 기타 경비 약 900달러, 총 1,700달러가량 지출되었다.


절마다 숙박시설은 열악했지만, 사찰과 게스트하우스 중심으로 실속 있는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라즈기르 영축산 정상에서 부처님의 숨결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순간, 이 모든 순례가 참으로 값진 시간임을 깨달았다.


인도 이해하기


[ 인도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는 기원전 약 2,500년 경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국가 중 하나다. 수많은 정복과 침략 속에서도 인도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오늘날까지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이어오고 있다.

‘신비의 나라’, ‘요가와 명상의 발상지’, ‘3억 3천만 명의 신을 모시는 땅’, 그리고 ‘부처님의 고향이자 불교가탄생한 나라에서 불교가 사라지다시피 한 아이러니한 나라’로 불린다.


전 국민의 약 80%가 힌두교도로,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윤회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죽음은 곧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 믿는다. 외지인 눈에는 느리게 살아가는 듯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주어진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낙천적이다. 불행을 탓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모든 삶과 운명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이들은 60세 전후가 되면 삶의 자리에서 물러나 자녀에게 생업을 맡기고 수행의 길을 떠난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보시하며, 공덕을 쌓는다. 이는 다음 생에 보다 나은 삶으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다. 길거리의 거지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음식과 용돈을 나누는 것도 이런 신념에서 비롯된다.


종교, 인종, 언어등 다양한 생활풍섭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기 동안 아시아 대륙과는 차단된 특수성으로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이루고 있다.

카스트제도가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아직까지 은연중에 상존되고 있다. 약 14억 명의 세계최고 인구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 GDP순위는 2024 기준 5위를 기록하고 있다. IT산업강국이며 힌디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자료) 코로나 19 이후 인도사장 미리 준비하라(양창병저), 코트라 해외시장정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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