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성장한 궁궐터를 찾아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by 영 Young

사르나트를 떠나 우리는 부처님의 성장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땅, 카필라바스투를 향해 길을 나섰다. 덜컹거리는 자동차에 몸을 실은 채, 붉고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인도의 시골길을 달렸다. 포장되지 않은 황톳길 위로 먼지가 풀풀 날렸다. 길가에는 지붕이 내려앉은 오두막들과 흙집들이 이어졌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오래된 세월을 버텨온 집들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낙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바닥을 누비며, 손에 쥔 낡은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맑은 빛이 가득했다. 사탕수수 밭 가장자리에는 누더기 옷을 입은 농부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연신 잎담배를 피워 대며 허공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유리찻잔 속 짜이를 홀짝이며 무심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가에는 닭과 돼지, 황소들이 쓰레기 더미를 헤집으며 어슬렁거렸다. 오토릭샤와 오토바이, 삼륜차, 트럭들이 사람과 동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지나갔다. 길가 장터에서는 여전히 삶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인도의 겨울은 생각보다 선선했다. 12월의 아침저녁은 영상 10도 안팎으로 쌀쌀했으나, 낮에는 햇살이 내려앉아 25도 내외로 포근했다. 그러나 공기 중에는 짙은 안개와 먼지가 뒤섞여 있어 시야는 뿌옇고, 목이 칼칼해지는 답답함이 있었다.


망고나무 잎사귀는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사탕수수 줄기는 바람을 따라 일렁였다.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버려진 비닐봉지, 동물의 배설물, 썩은 음식물 찌꺼기와 휴지 더미가 뒤엉켜 악취를 풍겼다. 구정물 고인 웅덩이 위로는 "윙윙"똥파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고요함과 혼란, 아름다움과 낙후가 뒤섞인 기묘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인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오래된 삶의 냄새, 절망 속에 엿보이는 희망, 낙후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생명의 기운을 보았다.


그렇게 5여 시간을 달려 마침내 카필라바스투에 도착했다. 이곳은 부처님이 태자로서 성장기를 보낸 땅이다. 지금은 네팔 국경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시골마을로 남아 있다. 붉은 흙먼지가 깔린 들판 위, 바람결에 날리는 먼지 속에서 나는 문득 ‘이 길을 부처님도 걸었을까’ 하는 생각에 젖었다.


화려한 사원이나 웅장한 탑은 없었다. 오히려 소박하고 평탄한 유적터가 들판 한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 정비한 유적지에는 시간의 적막이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먼저 삐프리하와(Piprahwa) 유적지를 찾았다. 한때 궁궐이 있었던 터다. 회색빛의 돌기둥과 낮은 담벼락 사이를 걷었다. 어린 싯다르타 왕자가 맨발로 이 길을 뛰놀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연못가에 잠시 멈춰 섰을 때, “아기 싯다르타도 이 물가에서 연꽃을 보았을까?”, “이 돌길 위를 뛰놀며 천진한 웃음을 지었을까?”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바람결에 실린 먼지와 햇살이, 부처님의 고뇌와 웃음을 함께 담고 있는 듯했다.

카필라바스투는 단지 부처님의 유년 시절만을 상징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출가의 결단이 움튼 땅이다. 부처님은 아버지 정반왕의 극진한 보호 아래 궁궐에서 자랐다. 정반왕은 아들이 세상의 고통을 보지 못하게 하고자, 온갖 즐거움과 화려함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운명처럼, 싯다르타는 어느 날 궁궐의 네 문을 돌아다니며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교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에피소드, '사문유관(四門遊觀)'이다.

그는 동문에서 노인을, 남문에서 병든 자를, 서문에서 죽은 자의 시신을 보았고, 마지막 북문에서는 고요한 얼굴로 걷는 수행자를 만났다. 그 네 가지 장면:늙음, 병듦, 죽음, 그리고 진리를 향한 길은 싯다르타에게 되돌릴 수 없는 울림을 남겼다. 결국 출가의 결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29세의 어느 밤. 그는 아내 야소다라와 갓난 아들 라훌라를 뒤로 한 채, 조용히 궁을 떠난다. 이 장면은 '대출가(大出家)'로 불리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단 중 하나로 평가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향해 나아간 그 발걸음은, 이 유적터에 아직도 미세한 떨림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유적터 앞 돌무더기 앞에서는 한국과 미얀마에서 온 순례단이 목탁 소리에 맞춰 반야심경을 봉송하고 있었다. 구슬픈 염송의 음률이 유적지 위로 울려 퍼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유 없는 울컥함이었다. 백팔염주를 손에 쥔 중년의 남녀들은 간절한 표정으로 돌바닥 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부처님이 서 계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이곳은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는 땅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이처럼 흙마당에 뛰놀며 자랐고, 부모님의 따스한 시선을 받으며 성장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눈시울 붉히던 어머니의 얼굴, 고향의 초가집과 골목길이 떠올랐다. 부처님의 출가는 누군가의 고통을 짊어지기 위한 여정이었다. 나의 여행은 그 길을 따라 작은 깨달음을 얻는 여정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우리는 국경 근처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작은 마을

'소나울리(Sonauli)'에 도착했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저녁이 되자 근처 식당에서 치킨카레와 난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뿌연 먼지 가득한 거리. 그 한복판에서 오늘 하루의 깊은 감정을 되새겼다.

[주요 유적지 정리]

삐프리하와(Piprahwa, 인도): 카필라 성의 왕궁터

틸라우라코트(Tilaurakot, 네팔): 카필라 성터 유적지

쿠단(Kudan): 정반왕이 성도 후 귀향하는 부처님을 기다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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