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Lumbini)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로 향하기 위해 우리는 인도와 네팔을 잇는 대표적인 육로 국경지대인 벨히야(Belahiya)에 도착하였다. 인도 측 소나울리(Sonauli)의 국경 출입국사무소에서 현장 도착 비자(on-arrival visa)를 발급받았다.
15일 체류 기준, 수수료는 미화 30달러였다.
입국 수속을 마친 뒤 룸비니까지는 약 25km 거리. 포장도로는 비교적 평탄했다. 차량으로 약 30분 만에 우리는' 마야데비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도 델리에서 시작된 긴 순례 여정의 흐름 속에서, 마침내 불교 4대 성지 중 첫 번째인 부처님의 탄생지에 이른 것이다.
룸비니는 네팔 남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기원전 623년경, 고타마 싯다르타, 훗날 부처님이 이곳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 국경을 넘자마자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인도의 복잡하고 활기찬 도심과 먼지바람 대신, 네팔의 들판은 넓고 고요했다. 낮은 숲길과 깨끗한 평원이 펼쳐졌고, 그 한가운데 룸비니는 성스럽고도 차분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마야부인은 친정으로 가던 길에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잠시 머물렀다가 산통을 느꼈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을 낳았다. 지금의 마야데비 사원이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불교 설화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기 부처님은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내디뎠다. 그 발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이는 윤회의 고리를 벗어난 존재, 해탈의 상징이었다. 아기 부처님은 걸음을 멈춘 뒤,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에도, 땅 아래에도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이 외침은, 모든 존재가 고귀하고 해탈은 오직 스스로 이뤄야 함을 뜻한다.
이어 그는 말했다. “삼계 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세상은 모두 고통이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 부처님은 탄생의 순간부터 세상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셨다. 이 장면은 곧 불교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출발점이 되었다.
이 탄생의 순간을 둘러싼 전설은 더욱 환상적이다.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새들이 노래했으며, 흰 코끼리가 울고, 온 우주가 진동했다고 한다. 두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향기로운 물을 부어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겼다고도 전한다. 하나는 차가운 물, 다른 하나는 따뜻한 물이었다고 한다. 이는 자비와 지혜, 연민과 이성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전설은 지금도 살아 숨 쉰다. 오늘날 부처님 오신 날, 모든 사찰에는 '관욕의식(灌浴儀式)'으로 어린 부처님 상에 물을 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고타마의 놀라운 탄생을 목격한 신하들은 그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아시타(Asita) 선인을 찾아갔다. 선인은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말했다. “이 아이는 전륜성왕이 될 수 있다. 또는 세속을 버리고 붓다가 될 수도 있도다. 그러나 나는 늙었고, 그 진리를 듣지 못한 채 죽을 것이기에 슬플 뿐이다.” 그의 말에는 두 가지 위대한 운명, 그리고 그것을 지켜볼 수 없는 한 인간의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룸비니 성역의 중심에는 아쇼카 대왕이 세운 석주가 우뚝 서 있다. 기원전 3세기, 불심 깊은 아쇼카는 이곳이 부처님의 탄생지임을 증명하고자 이 석주를 세웠다. 2천 년 세월을 품은 석주는, 햇빛 아래 묵묵히 순례자들을 맞고 있었다.
마야데비 사원 내부에는 석가모니 탄생을 묘사한 부조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한 손으로 가지를 잡고, 다른 손으로 불러오는 생명을 감싸고 있는 마야부인이다. 그 아래, 아기 부처님은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시간은 멈춘 듯했고, 그 순간은 지금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룸비니는 단순한 성지를 넘어 세계 불교의 중심지다. 넓은 대공원 중심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따라 각국의 불교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얀마 사원은 금박으로 찬란했고, 태국과 라오스는 남방불교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인도 사원은 거대한 붓다 동상으로 장엄했다. 중국과 대만은 화려한 연등과 처마로 장식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곳은 한국 사찰인 ‘대성석가사’였다. 2,000평 규모의 부지 위에 현대식으로 건축된 이 사찰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관세음보살을 염송 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사찰에는 한꺼번에 5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온돌방과 샤워실,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어 외국 배낭여행객들도 부담 없이 머무를 수 있다. 1박에 7~8달러 수준으로 장기 체류도 가능하다.
우리 일행은 잠시 대웅전 한편에 자리 잡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먼지와 소음, 카메라 셔터 소리마저 사라지고, 아주 오래전 숲의 냄새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마야부인이 꽃을 보고 멈춰 섰던 그 숲, 그곳에서 부처님이 첫울음을 터뜨렸던 순간이었다. 그 땅이 지금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참 평온해졌다.
룸비니는 단순한 성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의 자리’였다. 고통을 깨달음으로 바꾸기 위한 위대한 여정의 출발점, 인간으로 태어난 붓다가 세상과 처음 마주한 눈부신 새벽의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운전기사 꾸마 씨의 안내로 인근 민간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꼭 대성석가사에 머물며 템플스테이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 비용마저 따뜻했다.
[룸비니 주요 유적지 정리]
마야데비 사원: 부처님 탄생지, 성스러운 숲의 중심
아쇼카 석주: 부처님 탄생을 기념한 역사적 기둥
대성석가사(한국사찰): 한국 불교의 중심지, 템플스테이 가능
룸비니 대공원 운하: 국제 불국토를 연결하는 평화의 중심
각국 사찰들: 미얀마, 태국, 중국, 라오스, 인도, 스리랑카 등 각국의 불교문화 집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