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의 땅을 향하여

쿠시나가르(Kushinagar)

by 영 Young

아침 햇살이 룸비니 동산의 연꽃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성스러운 숲을 뒤로하고, 우리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인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룸비니에서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쿠시나가르까지는 약 130km. 자동차로 4시간 반에서 5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네팔 베리야 마을을 지나 인도 국경 소나울리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국경을 넘자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네팔 시골의 고즈넉한 들녘과 아이들이 물소옆을 뛰어노는 한가로운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도로 들어서자마자 풍경은 급격히 바뀌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시장길, 자전거에 쌀자루를 싣고 바삐 움직이는 상인들, 손으로 빚어 만든 흙벽돌이 쌓인 골목이 지나쳤다. 여기도 시간이 멈춘 듯 보였다. 오래도록 불교의 숨결과 함께해 온 땅, 그 기운이 피부로 전해졌다.


오후 늦게 도착한 쿠시나가르는 조용하고 단정했다. 도시는 크지 않았지만, 짙은 정적이 깊게 깔려 있었다. 이곳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80세에 열반에 드신 땅이다.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은, 그 후 45년간 설법의 여정을 이어오셨고, 마침내 이곳 우파바타나(Upavattana) 숲, 두 그루의 사라수 나무 사이에 사자와 같은 자세로 오른쪽으로 누우신 채, 고요히 열반에 드셨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하파리니르바나 사원(대열반당)이었다.

열반당 와불당

길이 6미터에 이르는 황금빛 와불상이 안에 누워 있었다. 부처님은 오른쪽으로 몸을 뉘시고,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을 향하고 계셨다. 오른쪽 다리는 왼쪽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었다. 열반의 순간을 형상화한 그 모습 앞에서, 우리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불교에 깊이 심취한 누나는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신앙심이 유별나지 않았던 나와 아내도 마음이 벅차올라,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서 온 단체 참배객들은 '석가모니불'을 염송 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더했다. 모두가 신발을 벗고 향을 피운 뒤, 조용히 눈을 감고 석가모니불을 읊조렸다. 그 모습은 말이 필요 없는 침묵의 기도였고, 시대와 언어를 초월한 공경이었다.


열반당 뒤편에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유언을 남긴 장소가 있다. “제행무상, 모든 것은 변하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 짧고 간결한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림을 준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벅차오르는 슬픔과 고요가 온몸을 감쌌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부처님께서는 대장장이 춘다가 올린 마지막 공양을 받으신 뒤 심한 병을 앓으셨고, 결국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제자들이 만류했지만, 부처님은 춘다의 정성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그 공양을 가장 큰 공덕이라 하셨으니, 육신은 병들어도 마음은 자비로 충만했던 그분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라마바르 스투파

다음으로 향한 곳은 라마바르 스투파였다. 부처님의 유골이 화장된 곳으로, 현재는 붉은 벽돌로 된 폐허 같은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역사적 진실이 서려 있었다. 순례객 몇몇이 향을 피우고,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화장 후 남은 사리는 여덟 지역에 나눠졌고, 기원전 3세기 아쇼카 대왕이 그것을 다시 발굴하여 84,000개의 스투파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국사, 조계사, 통도사 등에 봉안된 부처님 진신사리의 유래 역시 이 쿠시나가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시 곳곳에는 일본,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한국 등 각국에서 세운 국제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우리는 한국의 대한사를 찾았다. 웅장한 대웅전에 참배했다. 비치된 방명록에는 한국 순례자들이 남긴 마음의 흔적이 한글로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순례자들의 표시가 참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해가 저무는 저녁,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머무르셨다는 카쿠타 강가에 이르러 우리는 마지막 합장을 올렸다. 머리를 숙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물음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할 것인가.”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다시 길을 나섰다. 문득 ‘모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로마의 명언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에 사로잡혀 산다.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해가 떨어진 저녁 7시경, 숙소를 찾아 쿠시나가르 시내를 돌았다. 여러 템플스테이와 게스트하우스를 들렀지만 모두 만실이었다. 이 지역을 찾는 방문객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띈 작은 간판, ‘SAGURYA GUEST HOUSE’. 넓은 대지 위에 자리한 꽤 큰 규모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정원에는 망고나무와 야자수가 어우러져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건물은 단층 시멘트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소박한 구조. 객실 앞에는 먼지가 앉은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마당엔 빨랫줄이 느슨히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부는 청결하지 못했다. 시멘트 바닥, 고장 난 샤워시설, 삐걱거리는 침대, 낡은 이불이 놓여있었다. 방 안에서는 도마뱀과 바퀴벌레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조차도, 부처님의 고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먼저였다.


그날 밤, 방 안에서 준비해 간 전기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작고 소박한 한 끼였지만, 그것은 내게 있어 깊은 위로이자 작은 행복이었다. 불 꺼진 방, 조용한 침상 위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되새기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 이 여정은 단지 한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비워내고 돌아보는 하나의 수행이었다.


[쿠시나가르 주요 유적지 정리]

마하파리니르바나 사원: 부처님의 와불상이 안치된 열반의 장소

라마바르 스투파: 부처님의 유골이 화장된 곳

카쿠타 강가: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머무르신 강가

열반당 유언지: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전해지는 곳

공양터(춘다의 공양): 마지막 공양이 올려진 장소

각국 국제사원: 한국 임제선원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불교 사원

열반당.와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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