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다, 지혜의 길을 걷다

나란다(Nalanda) 불교대학

by 영 Young

바이샬리를 떠나 순례의 다음 목적지인 나란다(Nalanda)로 향했다. 자동차로 약 5~6시간이 걸리는 길은 낙후되고 험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인도의 진짜 얼굴을 생생히 만날 수 있었다. 황톳빛 들판, 맨발의 아이들, 소를 모는 농부들, 곳곳에 흩어진 작은 사원과 불탑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땅의 삶과 신앙이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이 길을 맨발로 걸으셨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늦은 오후, 붉은 석양 속에 물든 나란다 유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도시는 온통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폐허였다. 이곳은 5세기 굽타 왕조 시기에 창건된 ‘나란다 마하비하라(Nalanda Mahavihara)’, 세계 최초의 불교 종합대학이었다. 700여 년간 철학, 논리학, 의학, 천문학, 문법 등 다양한 학문이 꽃피웠던 지성의 요람이었다.


최전성기에는 1만 명이 넘는 승려와 학생이 거주하며 배움을 이어갔다. 중국의 현장 스님은 이곳에서 오랜 기간 수학하셨다. 우리나라의 혜초 스님 역시 이곳을 다녀갔을 거라고 전해진다. 나란다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불교 사상의 심장부이자 아시아 문명 교류의 중심이었다.

나란다(Nalanda) 불교대학 터

그러나 이 찬란한 문명도 역사의 흐름 앞에 무너졌다. 8세기경 이슬람 세력의 침입, 이어진 아프가니스탄계 무슬림의 침공으로 나란다는 무참히 파괴되었다. 긴 시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1861년 한 영국인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

현재 유적은 전체의 약 10분의 1 정도만 복원되었다. 법당과 기숙사, 도서관의 넓은 터, 정돈된 회랑, 돌계단, 벽에 새겨진 부조와 불상들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그 폐허 속에서 나는 그 옛날 불교대학의 향기를 느끼면서도,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이 초래한 비극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침략자들의 악행이 없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 널리 퍼져 이 세상이 불국정토가 되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겠지만,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유적지 인근의 나란다 고고학 박물관도 방문했다. 불도(佛頭), 청동 조각, 부조 패널, 문서 도구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관세음보살 청동상 앞에서는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 자비로운 미소에서 깊은 평화와 위안을 느꼈다.

붉게 물든 석양 아래, 나는 생각했다. 쿠시나가르에서는 ‘무상(無常)’을, 나란다에서는 ‘지혜(智慧)’를 배웠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새로 생겨난다. 지혜는 그 흐름을 꿰뚫어 보는 눈이다.”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의 여정 속에서, 내 인생철학도 더욱 또렷해졌다.

모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며 삶을 존중하고, 카르페 디엠

(Carpé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그리고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성지, 라즈기르(Rajgir)로 향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배움’의 흔적을 가슴에 품기 위해서다.


주요 유적지 안내

나란다 불교대학 유적지 (Nalanda Mahavihara)

고고학 박물관 (Nalanda Archaeologic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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