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의 땅을 떠나, 자비의 땅으로

바이샬리(Vaisali)

by 영 Young

부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쿠시나가르를 떠났다. 누구나가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는 허무한 감정이 차올랐다. 부처님의 열반이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모든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난, 가장 완전한 자유였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요와 평화가 내 안에 번졌다.

이제 우리의 여정은 자비의 성지, 바이샬리로 향했다. 쿠시나가르에서 약 230km 거리.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7시간 가까이 달렸다. 인도의 시골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창밖으로 흘러갔다. 수확을 마친 황금빛 논밭, 흙먼지를 일으키는 비포장 도로, 유유히 걸어가는 물소 떼, 길가에서 난을 구워내고, 짜이를 끓이는 허름한 식당들이 나타났다. 이 소박한 풍경이 어쩌면 가장 진한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짜이 찻집에 들러 따뜻한 짜이 한 잔을 마셨다. 향신료와 우유가 어우러진 그 한 모금에 온몸이 풀리는 듯했다.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내게 주어진 이 하루도, 이 한잔의 티도, 모두가 감사할 일이다.

바이샬리에 가까워지자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고대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 땅의 깊은 시간을 알렸다. 바이샬리는 과거 마가다국의 일부였고, 부처님 시대에는 리차비 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가진 도시였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출가 후 처음 고행주의자 발가바 선인을 만났던 곳이다. 그러나 고행이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달으신 부처님은 다시 길을 떠나 왕사성과 가야를 거쳐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그 뒤 다시 이곳에 돌아와 법을 전했고, 열반에 이르기 전 아난다와 마지막 안거를 보내셨던 땅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이야기다. 부처님이 바이살리에 머물던 중, 자신의 열반이

가까웠음을 암시하자, 아난다는 매우 슬퍼하며 "오래 더 머무시어 세상을 이롭게 하시고, 중생들을 위해 법을 더 설해 달라"라고 간청했다. 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집착 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열반에 드셨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아쇼카 석주였다. 붉은 사암으로 된 기둥 위에 네 마리 사자가 우뚝 서 있었다. 긴 세월 동안 풍화를 견뎌낸 이 석주는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총길이는 14.6미터로

밑으로도 상당히 깊게 묻혀있다.


이어서 죽림정사터에 들렀다. 한때 대나무 숲이 우거졌던 이곳은, 부처님께서 비구니의 출가를 처음 허락하신 역사적인 장소다. 지금은 고요한 들판과 돌기단만 남아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 깊은 자비의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바람에 실려오는 속삭임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려왔다.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여성을 차별하던 전통의 벽을 넘어서셨다. 자비란 단순한 연민이 아닌, 시대를 뚫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용기임을 그 자리에서 배웠다. 진정한 자비란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부처님 진신사리탑터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터였다. 지금은 붉은 벽돌더미와 무너진 원형 기단만 남아 있었지만, 그 자리에 서 있으니 묘한 고요함이 마음을 감쌌다. 새들이 지저귀고, 멀리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모든 것은 순환하고 이어진다는 자연의 진리를 실감했다. 부처님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가르침은 우리 삶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 여정에서 깨달았다.

"자유란 내려놓음이다." 쿠시나가르에서 나는 처음으로 열반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꼈다.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삶은 가벼워진다. 자비는 경계를 넘는 용기다. 바이샬리에서의 깨달음은 부처님이 전하신 자비는 연민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 무너진 사리탑 앞에서 나는 알았다. 진정한 영원은 형체가 아닌 뜻으로 남는다. 부처님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거 같았다.


이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내면의 길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동안, 내 안의 번뇌와 탐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성지는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마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길거리에서 먹은 인도 대표 음식 ‘사모사’ 때문이다. 함께 간 누나가 “한 번만 맛보고 싶다”라고 해서 말렸지만, 결국 사 먹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몇 시간 뒤부터 배탈이 나 화장실을 계속 들락거려야 했다. 며칠간은 아무것도 먹지 못 먹고 고생했다. 한국에서 챙겨 온 배탈약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인도에서는 물과 음식이 낯선 여행자에게 쉽게 탈이 날 수 있다. 조심하라는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직접 겪고 고생하고 나서야 후회를 했다. 인도 여행자에게 드리는 팁이 있다면, 길거리 음식은 가급적 피해야 된다. 그리고 생수도 반드시 봉인된 것을 마실길 바란다.


이기서 머문 숙소는 스리랑카 절에서 운영하는 도미토리형 시설이었다. 식사까지 제공되는 규모 있는 공간이었지만, 단체 생활 특유의 불편함도 있었다. 무엇보다 모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불살생을 지키는 수행처답게 모기약을 한 방울도 뿌리지 않았다. 밤이 되면 모기들이 까맣게 모기장 밖을 뒤덮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 또한 수행이라 여기고 인내했다. 숙박료는 무인 보시함에 각자 성의껏 넣는 방식이다. 돈보다 마음이 우선인 공간이었다.

이 여행은 내게 단지 옛 자취를 더듬는 순례가 아니고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이샬리 주요 성지들]

아쇼카 석주: 부처님과 아난다의 마지막 대화의 흔적이 서린 곳

죽림정사터: 비구니 출가가 허락된, 자비의 혁신이 이뤄진 자리

진신사리탑 터: 부처님의 육신 대신 뜻이 머문 공간

망고동산: 원숭이가 꿀을 공양한 자비의 일화가 전해지는 곳

운후봉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자리가 남아 있음

바이샬리 왕궁터와 고고학 박물관도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였다.

죽림정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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