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관계들 중, 진정한 친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친구는 우리가 외로울 때 곁에 있어주고, 길을 잃었을 때 나서서 방향을 잡아준다. 이해와 신뢰, 그리고 함께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우정은 물질적인 그 어떤 것보다도 깊고 값지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박영욱. 잘생긴 외모에 유도 유단자답게 체격도 좋았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고, 서로를 ‘우’와 ‘정’이라 부르며 평생 우정을 약속했다.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감나무 아래에서 인생을 이야기하던 그 밤들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웃음이 많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독서를 즐겨 지혜로운 말을 자주 건넸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겸손했고,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는 품성을 가진 이었다. 방학마다 고향에 내려오면, 우리는 늘 붙어 다니며 새벽녘까지 그의 집 앞 감나무 밑에서 인생과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대학 재수생시절, 대구에서 서울구경을 위해 그의 하숙집을 찾았다. 당시 나는 낯선 환경에 주눅이 들어 어리버리했다. 그때 정이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돼지 저금통을 꺼내어 내 앞에서 깨뜨리며 말했다. “이 돼지 잡아서, 너 서울 구경시켜 줄게.” 그 돈으로 그는 나를 명동과 경복궁 같은 서울 명소에 데려가고, 맛있는 것도 사주었다. 당시 그의 행동과 말투는 아직도 내 귀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내게 형 같은 존재였고, 든든한 멘토였으며, 인생의 동반자였다.
뉴질랜드 근무를 마치고 귀국을 한 달을 앞둔 시점이었다.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어느 주말, 그는 가족과 함께 전주 처갓집에 들르던 길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비보였다. 그의 가족을 태운 회사 픽업 차량은 빗길에 미끄러진 5톤 군용 트럭에 뒤에서 들이 받혔다. 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운전대 잡은 자기 쪽으로 꺾었다.
그의 차량은 앞차 트럭 뒤 공간에 처박혔고, 그는 차량에 끼여 현장에서 숨졌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선택으로 그의 아내와 두 아이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가 핸들을 자기 쪽으로 꺾지 않았더라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와 뒷좌석의 두 아이도 치명적인 충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했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그의 아내가 나중에 전해준 말은 또 한 번 나를 울게 했다.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에서 귀국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정이는 새로 신차를 주문해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 나올 계획이었다고 했다. 바로 그 차를 인수받기 며칠 전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의 빈자리를 절절히 느꼈다. ROTC전역 후 그가 창업한 남영동의 회사를 찾아갔을 때, 정문에 붙어 있던 그의 손글씨 ‘직원 모집’ 광고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는 여전히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대하고 있었구나. 그 흔적을 보며 나는 한참을 그 종이를 쓰다듬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내 인생의 든든한 등대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일찍, 너무 소중한 자산 하나를 잃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따뜻한 우정과 기억은 여전히 내 삶 속에 살아 숨 쉰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가 준 마음은 영원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의 체온, 그와 함께한 밤, 그가 건넸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빛난다.
친구, 정이. 나는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네가 그립다. 너는 내 인생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이름이다. 훗날,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