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은 거짓이고, 결국은 드러난다
살아오며, 나는 많은 ‘척’ 들을 보아왔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예쁜 척, 착한 척등이다. 처음엔 그럴듯해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은 어김없이 드러나곤 하였다. 나는 계속해서 그런 경험을 하면서, ‘척’은 거짓이며 결국 남을 속이고 자신까지 망치는 행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척’을 할까?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였다. 관심과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누구나가 잘났다는 말, 멋지다는 말,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넘쳐나 ‘척’이라는 가면을 쓰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면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심이 없으면 결국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관계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나는 또 다른 형태의 ‘척’을 보았다. 경제는 얼어붙고 모두가 힘들어하던 때, 명품 시장만은 예외였다. 오히려 더 잘 팔렸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명품을 통해 ‘나는 아직 괜찮아’, ‘나는 남보다 낫다’는 메시지를 주변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또한 일종의 ‘있는 척’이었다.
요즘 시대엔 SNS가 ‘척’을 부추기는 도구가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에는 맛집 사진, 명품 인증샷, 화려한 여행 사진들이 넘쳐난다. 그럴듯해 보이는 삶이지만, 그 속에는 “나 좀 봐줘”, “나도 잘 살아” 하는 내면의 소리가 담겨 있었다. 이런 과시형 ‘척’은 비교와 경쟁을 낳고,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척’은 사기꾼들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돈이 많은 척, 높은 사람과 가까운 척, 잘 나가는 척을 하며 사람들의 신뢰를 유도하였다. 겉보기엔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텅 빈 말뿐인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이런 ‘척’의 피해자가 된 적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 한 명이 있었다. 그는 큰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였고, 외제차를 몰며 여유로운 삶을 자랑하였다. 나는 그 말을 믿고 큰돈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회사는 서류상 존재만 할 뿐이었고, 외제차 역시 렌터카였다. 그는 ‘있는 척’, ‘성공한 척’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철저히 속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였다. 분하고 억울하였다. 무엇보다 겉모습에 속은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다짐하였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기로 했었다. ‘척’에 속지 않으려면,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보여주는 모습보다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세상을 살며 우리는 다양한 ‘척’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정직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익만 따지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오르는 사람일수록, 그가 보여주는 ‘척’이 진심인지, 가식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민을 위하는 척, 정의로운 척, 희생하는 척하며 실상은 사익만을 챙기는 이들도 보아왔었다. 그럴듯한 말과 이미지에만 속는다면, 결국 공동체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조직생활에서도 ‘충성하는 척’,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였다. 그들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태도를 바꾸고 등을 돌렸다. 진심 없이 관계를 맺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실망을 안겨주었다.
어느 날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존경하는 척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이 말을 듣고는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씁쓸함이 남았었다.
나는 오늘도 ‘척’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진실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조금 느릴지라도, 그 길이 결국 가장 바른 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더 이상은 ‘척’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기로 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