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롯데마트 출입구를 지날 때마다 익숙하게 들리는 목소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단정하게 청바지와 야구모자를 착용한 그는 겉모습만 보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건장한 체구와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린 피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올해로 79세가 된 김금원 팀장이다.
10년 전 그를 처음 만났다. 롯데마트 입구에서 신문을 홍보하던 그는 항상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신문을 권하며 "십만 원 가져가고 무료로 1년 보세요!"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누구든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강렬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열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 악수를 청했을 때 그의 손에서 느껴진 단단한 굳은살은 그가 지나온 고단한 삶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 50년간 신문 구독 영업을 하며 쌓아온 노동의 흔적이었다. "이 손이 당신을 말해주는군요"라고 말하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손등을 살짝 감췄다.
김 팀장은 20대에 신문 영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이다. 그는 신문을 팔며 세 아이를 홀로 키웠다. 아이들은 이제 각자 가정을 꾸렸고, 손주만 10여 명이다. "평생 노동으로 먹고살 만큼 저축도 했고, 강남에 집도 샀다"는 그의 말은 자부심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격려처럼 들렸다.
그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재혼한 부인의 식당 일을 돕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신문을 판다. 저녁에도 식당 일을 돕느라 손을 놓지 않는다. 하루 네 시간 남짓 잠을 자며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그는 불평 대신 "손자들 용돈 주고 학원비 보태주는 게 내 낙"이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 고된 일상을 고스란히 감당해 왔다. 지난해 그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관절염 수술 때문이었다. 한쪽 무릎이 심하게 망가져 걸음마저 힘들어졌지만 그는 수술 후 채 회복되지 않은 다리를 이끌고 다시 출근했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마음이 더 아파요. 몸이 힘들어도 일을 해야 제정신도 건강해져요"라는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 사고까지 겪었다. 새벽에 부인의 식당에 납품할 재료를 나르던 중이었다. 갈비뼈 열 개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는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퇴원 후 보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죽으란 법은 없더라고요. 다행히 살아서 이렇게 또 신문을 팔 수 있으니 고맙죠"라며 담담히 웃어 보였다.
그의 끈기와 노동에 대한 태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연세도 있으신데 이제 좀 쉬시고, 여행도 다니시고 하시면 좋겠어요"라고 조심스럽게 건네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나라는 노인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공짜로 먹고살 수 있지요.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싫어요. 나라 돈으로 빈둥거리는 사람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나요. 할 일은 많고, 일할 수 있는 몸인데 왜 가만히 있나요? 난 땀 흘리는 게 좋습니다."
그의 목소리엔 단호함과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의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었다. 요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수입은 예전보다 훨씬 줄었지만 그는 매달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벌며, 그 수입을 손자들과 가족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또한 10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며 치매 예방 상담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강의를 듣기 위해 서둘러 일어섰다. "오늘은 첫 강의 날이에요. 앞으로도 열심히 배워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김강수 팀장은 평생 노동으로 쌓아온 굳은살로 자신의 삶을 증명해 왔다. 그의 굳은살은 단순히 몸에 남은 흔적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 그리고 건강한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은퇴 후 놀고먹으며 시간을 허비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의 굳은살처럼 나도 내 삶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에너지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