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이는 잘 먹고 잘 쌉니다
절기상으로 오늘이 우수(雨水)입니다.
어제는 종일 부슬비가 내려 그런대로 절기(節氣) 이름값을 하는 듯하더니, 오늘은 구름 끼고 오후 들어 바람까지 불어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 치게 하는군요. 며칠은 또 추울 거라 하니 봄은 가까운 듯 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매화 꽃몽오리는 가득 부풀어 올랐고, 성질 급한 녀석들은 이곳저곳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거처가 마을에서 제법 올라가는 산자락이라 평지보다는 조금 늦겠지만, 열흘이나 보름 후에는 이곳 자미산방에도 매화향기가 집안까지 가득하겠지요. 많이 기다려집니다.
자미산방은 얼마 전 한식구가 된 ‘선돌이’ 덕분에 조용하던 일상이 조금은 수선스러우면서 활기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악양통신>에서 잠시 소개했습니다만, 선돌이는 한 달 전쯤에 모셔온(?) 진돗개 수놈 강생이입니다. ‘강생이’를 강생이 이름으로 이해하고 댓글을 다는 분들도 간혹 계셨지만, 강생이는 강아지를 이르는 경상도 말이지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으면 옛 어른들이 사랑스런 아이나 손주를 강생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을까요? 어릴 때 할머니가 저를 보고 “우리 강생이, 우리 강생이~”하고 불렀는데, 저는 그게 싫어 매번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강생이의 이름 ‘선돌’은 거처가 있는 입석(立石)마을 이름을 따서 지었고요, 지난해 12월 5일 태어났으니 아직 석 달이 안 된 아기입니다. 그런 아기가 집 주변 이곳저곳을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고 바짓단을 물면 걸음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힘이 장사입니다. 어미와 떨어져 이곳에 온 후 첫 며칠 동안 계속 낑낑거리며 울부짖는 통에 곁에서 보는 사람도 많이 힘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가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선돌이는 처음부터 바깥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분양해 주신 분께서 진돗개는 야성이 강하니 춥다고 집안에 들이지 말고 처음부터 밖에 두라고 하셔서 개집에 담요와 어한에 도움이 될 만한 헌 옷가지를 넉넉히 깔아놓았을 뿐입니다. 그 무렵 계속되는 추위에 어린 것이 괜찮을까 내심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만, 혹한을 잘 견디어냈고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쌉니다. 사료도 잘 먹지만 홍시와 호박 찐 것을 특히 좋아하고 요즘에는 무 배추도 잘 먹는군요. 시골 강생이답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덕분인지 이곳에 온 지 한 달 남짓 되었는데 덩치가 족히 두 배는 커진 것 같습니다.
똥을 하루에 5~6번 싸고 어떤 때는 10분 사이에 세 번 싸는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로는 자주 싸지 않는 대신 굵기가 아주 실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보는 앞에서도 똥을 누었지만, 지금은 부끄러운지(?) 보이지 않는 외진 데 가서 누고 오기 때문에 주기나 회수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가끔 구석진 데서 발견되는 무더기를 보며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지요.
선돌이는 가능한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할 생각입니다. 외출할 때면, 아직은 어려 혹시 주인 찾아 나섰다가 길 잃어버릴까 걱정되어 잠시 묶어둘 뿐, 그 외는 밤이고 낮이고 마음대로 뛰놀게 풀어놓습니다.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어 있는 도회지 아파트 반려견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개도 지각이 있을 텐데 어찌 갇히고 묶이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선돌이는 하루가 다르게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겁이 나는지 조심조심 집 주위만 왔다갔다 하더니 지금은 혼자서 제법 멀리, 그래봤자 채 100m도 안 됩니다만, 용감하게 나다닙니다. 같이 산책을 하다가도 틈나는 대로 오줌을 갈겨 영역?, 아니면 돌아올 길을 잊지 않기 위해 흔적을 남기고요. 어디를 가더라도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거나 무슨 소리가 들리면 주의력을 집중하여 경청합니다. 어제는 주둥이와 앞발로 흙을 파헤치고 뭔가 묻는 짓을 하길래 자세히 보니 어디서 물고 왔는지 나무에서 떨어져 곶감같이 말라버린 감을 파묻고 있었습니다. 진돗개는 고양이처럼 자기 똥을 파묻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먹이를 파묻어 저장하는 여우의 유전자가 남아있는 것일까요.
저는 개와 관련하여 고통스런 기억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1963년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라고 기억합니다. 집에는 제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양쪽에 한 마리씩 끼고 함께 가고 더불어 뒹굴며 노는 둘도 없는 동무였습니다. 그런 두 녀석이 하루 한 나절에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고 거품을 물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입니다. 그때는 나라에서 쥐 박멸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학교 과제에 쥐꼬리 몇 개씩 잘라 가져오는 것도 있었고, 개는 다 목줄 없이 키우던 시절이라 많은 개들이 독성 강한 쥐약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죽은 개를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던 유년의 기억은 종종 지금도 선명하게 되살아나 마음을 어지럽히곤 합니다.
선돌이를 새 식구로 맞으면서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저 어린 생명을 거두는 공덕으로 그때의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선돌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무탈하여 끝까지 동반자가 되고 자미산방을 수호하는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제 겨울의 끝자락입니다. 아직은 공기 속의 냉기가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지만 곧 봄입니다. 자미산방에도 머잖아 매화 만발하고 녹차밭도 연두색 윤기로 빛나겠지요. 늘 평화로우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