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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eker Apr 28. 2021

거친 삶을 걷는 그 사람을 듣다.

누가 가장 약자인가?

복합적인 문제를 가진 상황에 놓인 가정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름 갖게 된 한 가지 교훈이 있다. 그 교훈은 가장 약한 사람을 먼저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다른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동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여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복합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1인가구는 건강, 경제력, 취업, 인간관계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다인 가구는 위의 사유들과 더불어 양육, 간병, 가족 간 갈등 등의 어려움을 가진 경우가 많다. 

1년 반 가량 동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며 2건의 아동유기 의심사례를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신고하였다. 또 한 번은 치매노인,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 3인으로 구성된 가구에서 치매노인이 사망한 당일 정신질환자인 딸을 경찰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고 정신장애인인 아들도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는 것을 도운 후 사망하신 치매노인의 장제를 치룬 적이 있다. 

2건의 아동유기 의심사례 중 한 사례는 아이가 가족관계부와 주민등록부에는 존재하였지만 실제로는 가정에서 양육하지 않는 경우였다. 알고보니 재혼한 아이 아빠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가진 아이를 돌 무렵 공적절차를 거치지 않고 부적절하게 다른 가정에 입양을 보낸 가정이었다. 또 다른 한 가정은 가장이 출소한지 얼마 안 된 가정으로 장애가 있는 셋째 아이를 약 십년 전 역시 공적절차를 거치지 않고 부적절하게 입양 보낸 경우였다. 

아동유기를 의심하게 된 이유는 동행정복지센터로 저소득층지원서비스를 신청하러 와서 가구원을 확인하는 과정 중 아이를 확인 할 수 없어서였다. 수차례 반복적으로 질문을 한 끝에 아이 할머니가 아이 돌 무렵에 다른 가정에 키우라고 보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고하게 되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유기 신고 직후 경찰이 해당가정에 출동하여 샅샅이 집안수색을 하였다. 아동 유기 경위를 심문하는 일을 겪은 가정의 여성은 동행정복지센터를 지속적으로 찾아와 항의 하였고 시청에도 민원을 제기하여 감사부서에 가게 되는 등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아동학대 신고자 신상보호가 된다고는 하나, 당사자들은 신고자가 동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인지 빤히 아는 것이 현실이었다. 

갈등이 되었다. 피해아동도 부모도 모두 약자다. 위의 두 가정 모두 어린 시절 부적절하게 다른 가정으로 보낸 자녀 이외도 다른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장애가 있는 자녀도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입양 보낸 아동에 대한 사실 확인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가정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고, 더 양육환경이 나빠질 것이 예상되었다. 부부관계도 나빠질 것이다. 신고했다는 이유로 당사자들로 부터 받게 될 괴롭힘도 예상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 및 유기 관련 신고를 하면 경찰수사와 더불어 피해아동뿐 아니라 가해자인 부모의 현 가정상황을 고려한 통합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그러한 기능도, 경찰의 수사 이후 이루어지게 된다. 경찰의 수사과정을 겪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한편 잘못에 대한 책임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겪는 당사자와 가정으로서는 힘든 일일 것이다. 그만큼 신고자에 대한 원망이 커질 것이다. 그 원망이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될수록 선택이나 판단이 늦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겪을수록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경우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결정은 점점 빨라지게 되었다. 나의 신고가 늦어질수록 가장 약자인 아이가 고통 받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경우 중 한 경우는 입양한 가정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부적절하게 입양된 사실 자체를 모르고 현재의 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살고 있는 사춘기 소녀였다. 이번 일을 겪으며, 아이는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인지하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음에 같은 상황에 놓이면, 아마도 더 신속하게 아동유기 신고를 할 것이다. 아이의 안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정신장애인인 중년의 아들, 정신질환이 있는 중년의 딸과 거주하는 치매노인이 휠체어에 실려 동행정복지센터를 방문했다. 딸이 소유한 작은 아파트에 모친, 정신장애가 있는 기초수급자인 오빠가 함께 사는 가정이었다. 딸은 모친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동행정주민센터에 들렸다고 한다. 그 당시 정신질환이 있었던 딸은 자신의 정신건강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부터 치매노인에 대해 우려를 하는 이웃 분들이 있어 노인분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수회 가정방문을 갔으나 따님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 문 앞에서 노인분의 안부를 묻는 실랑이를 수 회 하였다. 노인의 안부가 걱정되던 차에 휠체어에 실려 동행정복지센터에 오게 되신 노인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노인의 건강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다음날 오전 가정방문을 갔다. 현관문 앞에서 노인분의 안부를 묻고 병원에 입원시키셔야 하지 않느냐, 그 부분을 돕고 싶다고 말했으나 여전히 따님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문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노인 사망 후 장제급여 수령 가능 여부를 묻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분의 현재 건강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딸이 잘 말하지 못했다. 위급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119에 신고를 하고 더 이상 이렇게 대화할 수 없으니 당장 문 열라고 이야기하니 딸이 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가서 119와 통화하며 노인의 몸을 만져보니 체온은 차갑고 몸은 이미 경직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얼마 후 도착한 소방관은 제세동기로 호흡을 살려보려 하였으나, 작동을 시작하던 제세동기는 곧 노인이 사망했다는 메시지를 알렸다.

이후 매우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소방서, 경찰, 형사, 정신병원 관계자, 장례식장 관계자 등이 현장을 오갔다. 결과적으로 딸은 경찰을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 하고, 오빠는 자의입원 하였다. 사망하신 노인은 인근에 사는 자녀에게 연락이 되어 장례를 치뤘다. 정신병원 입원 후에 딸은 인권위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 본인의 입원이 부적절하다는 투서를 보내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며 수 십 분간 전화통화를 하였다. 약 한 달 후 딸은 본인의 정신병을 인정하고 치료에 협조하기 시작했으며, 한 달 정도 치료 후 딸의 정신건강은 많이 호전되었다. 작은 주택을 소유하였으나 부채와 저소득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딸에게 병원비를 비롯한 다양한 지원책을 연계하였다. 오빠도 병원에서 치료와 적절한 식사를 통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이 건강해졌다. 퇴원 후 딸은 구청 사례관리사와 동 사회복지담당자에게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본인이 억척스럽게 굴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위 가정에 대한 위기개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오빠와 여동생은 여전히 경제적, 정신적으로 약한 상황이었지만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시점에서 더욱 생각이 드는 것이 있었다. 세 명 모두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던 가구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분이셨던 치매노인인 할머님에 대한 도움이 조금 더 일찍 이루어졌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할머님이 정신적으로 보다 건강해진 자녀들과의 시간을 갖고, 보다 안심하고 하늘나라에 가실 수 있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복합적인 문제를 가진 개인이나 상황을 접하게 될 때, 누가 가장 약자인가? 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될 것 이다. 강점강조와 empowerment를 중시하는 해결중심적 접근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개입방법이고, 궁극적으로 당사자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는 접근방법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약한 고리는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현명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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