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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eker Apr 28. 2021

거친 삶을 걷는 그 사람을 듣다.

일상... 그 어려운 이름...

2016년 10월, 동행정복지센터 맞춤형 복지팀에서 약 3개월간 근무하며 위기개입의 순간이 많았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겪기 어려운 일들을 자주 겪게 된다.


 가구원 중 유일한 소득원인 일용근로자 가장의 갑작스러운 근로현장에서의 사고, 저소득 가정 가구원의 중증질환 발생, 독거 장애인의 자살 시도, 알콜 중독자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응급상황... 위와 같이 당사자에게는 매우 힘든...위기개입을 필요로 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역동적인  시기에는 짧은 기간의 위기개입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


  집중적인 지원으로 당사자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해서 최악이었던 위기상황에서 그나마 몇 발 빠져나온 것을 몇 주 만에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지원책을 찾기 위해 애썼던 순간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였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개입이 끝난 대상자들이 돌아간 일상이  그 시대의 중산층들의 시각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거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여전히 실업이고, 여전히 우울증이고, 여전히 알코올중독이고, 여전히 저소득 가구이고, 여전히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기개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위기에서 벗어난 후 돌아간 일상이 언제 다시 위기가 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 경우가 많다. 결국은 그분들의 일상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변화되어야 하는데 그런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때로는 환경을 바꾸기 어렵고, 때로는 당사자가 변화에 대한 욕구가 없다. 그럴 때 참 막막하고 힘들다.


일상... 누군가에게 일상은 그냥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노력해도 다다르기 힘든 삶이다. 의료, 교육, 주거, 복지 등 여러 사회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은 개인의 노력보다도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만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근로환경, 고용안정, 의료제도, 교육제도, 복지제도, 소득재분배 등이 불합리한 현실에서 개인이 열심히 하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의심 없이 할 수가 없다.


하루는 심적으로 매우 피곤했던 하루를 보냈다. 근무를 마칠 무렵부터 맥이 풀리더니, 집에 와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녘에 머리가 아파 깨서 진통제, 소화제, 코감기 약을 챙겨먹고서야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날 오전, 평소 술을 많이 마시고, 친구가 없다며 동주민센터로 전화해서 오랜시간 통화하던 B씨가 통화 중 자살해야겠다는 언급을 하였다. 워낙 자주 술을 마시고 자살언급도 농담조로 하던 B씨였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과음을 하였고, 최근 다량의 수면제복용으로 자살시도를 했던 B씨라 그냥 넘길 수 없어 집으로 찾아갔다. 근래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몇 명 접해서 그러한 언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익숙해 져서도 안 되겠지만, 자살시도를 언급하는 모든 사람에게 심도 있게 접근하는 것도 어렵다. 그 수가 너무 많다.


집으로 찾아가니 다행히도, 그리고 한편 역시나 B씨는 자살시도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말상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술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하는 것은 반갑지만, 자살을 언급하며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한 민원인과 이야기 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당장 처리해야할 신청서류들이 몇 가지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B씨 집에 도착한 후 5분정도 지나 만일을 대비해 동행 요청을 했던 경찰관이 도착했고, 위험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잠시 대기 후 돌아갔다. B씨는 경찰은 왜 불렀냐며, 자기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술 취한채로 말했다. 술 핑계로 반말을 내뱉는 B씨에게 반말로 이야기 하시지 말라고 한 후, 자활사업 사업 참여해보시라, 일해보시라, 이제 갓 취업한 자녀에게 모범이 되어 보시라, 그동안 술 충분히 마시지 않았느냐, 시간 그냥 죽이지 말고 본인에게 도움 되는 시간을 가져보시라... 잔소리를 하였다. 내말을 이해는 하고, 그런 말 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신경이 쇠약한 자기를 너무 극하게 몰아가지 말라는 B씨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 누그러져서 이야기 한 후 죽지마시라 이야기하고 집을 나왔다.


오후가 되니 친인척 관계가 아닌 손자뻘 되는 20대 후반의 정신질환자 C씨와 함께 사는 고령의 할머님 한분으로 부터 C씨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와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할머님 댁을 방문하였다. 그 할머니는 C씨의 친할머니와 어린 시절 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6.25사변 때 전장에서 함께 간호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C씨의 부친은 가정폭력과 음주가 심해서 일찍이 이혼을 했고, C씨의 친할머니와 부친이 사망한 뒤 C씨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왕따를 겪고 정신질환이 있던 C씨는 그래도 할머님과 함께 살며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하는 상황이었다.


할머님은 어린 시절 부터 지켜보아왔고 수년간 돌봐주었는데, 장성한 청년이 된 C씨로 부터 위협받는 것이 이제는 두렵다고 한다. 함께 생활하기가 겁난다고 한다. C씨가 본인과 함께 살고자 하면 함께 살 생각도 있지만, C씨가 따로 살고자 하면 이제 따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씀 하신다.


C씨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정신과 약이 줄어 자기통제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강한 어조의 할머님이 높은 언성으로 본인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들으면 자신도 감정이 주체가 안 되어 할머님께 위협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잔소리 해주는 할머님과 함께 사는 것이 자신에게는 좋지만, 자신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신이 할머님과 따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C씨는 다양한 정신보건 프로그램, 직업교육 프로그램, 자활프로그램을 이미 많이 참여해 보았다. 그러나 본인의 우울증으로 인해 의욕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지내면 안 되는 것을 알긴 하는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C씨가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다른 것을 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할머님의 언성은 다시 높아질 것이다.


이 두 가정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어려운 시절을 겪은 어르신들은 배부른 소리하고 있다고, 정부지원 받으니까 정신 못 차리고 그런 것이라고, 더 힘들어 봐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이 핑계가 되는 것도 평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록, 궁극적으로 함께 찾아야 할 것은 그 순간을 모면할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행복한 "일상"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남들 모두에게 행복해 보이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인의 우울감과 무기력에 대처할 수 있는,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일상"...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 만을 양분으로 하여 유지하는 일상이 과연 그 사람의 "삶" 일 수 있을까? 공공부조가... "행복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제공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혹 가능 하더라도 바람직한 것일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서, 연명이 아닌, 자기 삶을 살기 위해서... 누가, 무엇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답은 다를 것이다.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긴급지원제도, 사회구성원의 모두의 삶의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수준의 성숙한 사회제도, 자신의 타인의 일상을 행복하게 지키고자 애쓰는 개인들의 노력. 하나하나가 당연하지만, 하나하나가 쉽지 많은 않다. 남들이 보통 출발하는 시작점까지 가기가 너무 먼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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