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그 이름표의 무거움을 함께 덜 수 있기를...
40대 중반, 나와 동갑인 청년을 만났다.
중년이라고 불리기 시작할 나이이지만 아직 미혼이고 앳된 얼굴 이다. 중년이라 불리는 것이 어색했다.
아마도 동갑인 나 스스로가 중년이라 불리는 것이 싫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리라.
동행정복지센터에서 민원업무를 하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공무원들에게 무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반면 이 청년은 과도하게 공손한 말투와 자세로 이야기하여 당황스러웠다.
공업 고등학교 졸업 후 특별한 기술이 없어 기회가 되는 대로 일하였었다고 한다. 단기 아르바이트, 공장 생산직, 세차, 각종 서비스업에 등에 종사하다가 한 공공기관의 비규직 직원으로 2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그 기관에서의 일이 즐거워서 나름 성실히 일했고 계속 일하길 원했지만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6개월 전 그 기관을 그만두고 여러 단기 일자리들을 해오며 어머님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해 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 졌고 지금은 통장의 잔고가 거의 없다고 한다. 통신비 연체에 따른 신용불량으로 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보이스피싱 피해로 결국은 파산하게 되었고 현재는 공공요금도 연체되고 있었다.
긴급생계비 신청을 안내 했다. 긴급생계비를 지원 받는 석 달 동안 고용지원센터의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직업상담과 직업교육도 받아보시고 미래를 잘 계획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현거주지의 월세가 많이 부담되는 상황이어서 주거급여와 임대주택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드리니 매우 반가워했고 그동안 본인이 복지지원제도에 대해 너무 몰랐었다며 여러 가지 알려줘서 고맙다며 상담을 마쳤다.
이제 갓 50이 된 중년 남성이 있었다.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로 통보되어 가정을 방문했다.
이혼 후 자녀를 맡아 키우게 된 배우자에게 집과 재산을 대부분 내어주고, 혼자 월세집을 구해 지내면서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꾸리셨다. 그러다 일 년 전 출근하지 않은 날 개인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치료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회사의 근무환경도, 본인의 주머니 사정도 마냥 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회사에 출근하였으나 약해진 몸은 오랜 시간 운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회사에서도 사직을 권고했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장시간 무리하게 운전을 한 탓에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건강이 온전할 때도 근근이 이어가던 생계는 더욱 어려워져 월세를 내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분에게 긴급 생계비, 주거급여, 차상위 의료비지원 신청을 안내 해 드렸고, 결국 해당 서비스의 대상자로 판정되어 당분간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교통사고로 다친 몸이 언제 어느 정도 회복될지 알 수 없으나 최소 몇 년 간은 무리한 근로는 어려우실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신청하게 된 공공복지서비스들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의 시간을 보내면 다시 건강한 일상과 경제생활을 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되는 분이셨다.
50대 후반의 남성이 있었다. 얼마 전 출소한 분이셨다.
젊은 시절 여러 사업을 하여 돈도 많이 벌었었다고 한다. 그러다 무리하게 사업을 키워 파산 하였고 그 여파로 가정도 깨지게 되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하면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산으로 인해 정상적인 통장거래를 할 수 없었고, 통장거래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 결국 흘러 흘러 유흥업소에서 운전, 청소 등 허드렛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좋지 않은 일로 수감되어 시간이 흘렀고, 얼마 전 출소하였다.
자신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사람들에게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지낸 시간이 너무 마음 쓰려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고용센터와 서민금융지원센터에 연락하여 그분의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방문하여 상담하였다. 서민금융지원센터에서는 신용회복절차를 위해 필요한 안내를 자세히 받을 수 있었고, 다행히 신용회복절차를 개시하여 통장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고용센터에 구직신청을 하여 운전직을 소개 받아 근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간간히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어느 정도 생계를 꾸려 갈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악성채권이 불쑥 튀어 나와 다시 통장압류가 시작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시작... 할 수 있게 되었다.
60대 초반의 남성이 있었다.
본인 건강 악화, 경제적 빈곤, 아내의 우울증, 자녀의 희귀질환 등으로 많은 고난의 산에 둘러 쌓여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본인의 많지 않은 소득으로 4가족의 생계비와 모친의 병원비로 인한 부채를 감당해야 했다. 적은 급여의 일을 닥치는 대로 하다보니 늘 소득은 적었고 늘 피곤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근로 중 사다리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제대로 된 보상과 치료는 없었다고 한다. 통증도 있었으나 근로를 계속해야만 하기에 통증을 참고 일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많은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지만 본인의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버텨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러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자녀가 자살시도를 하던 날 본인 마음도 무너졌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만난 많은 중년 남성들은 “중년 남성” 이라는 무거운 이름표에 가족 부양, 질병, 경제적 빈곤 등 큰 삶의 무게를 얹어 살고 있었다. 헤쳐 가는 것도, 버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분들에게 해결책을 제시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당장 숨 돌릴 수 있는 약간의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사자는 눈앞에 닥친 과제들에 대처하느라 미쳐 살펴보지 못한 재기의 단서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정보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욱 귀 기울여 듣고자 한다. 본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함께 삶의 실타래를 풀어 갈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