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버지 마음

by 구민성

단편소설 -아버지 마음

<1>

“여보, 경희 엄마. 눈 떠보소.”

조일우는 아내의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배영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편을 올려다봤다.

“와예?”

“이거, 병원 앞 죽 집에서 샀는데, 한 그릇 먹어 보소.”

“그기 뭔데예?”

“어, 전복죽이오.”

“그 비싼 걸 뭐 할라꼬 샀어예?”

배영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청구를 놓았다.

“비싸긴, 뭐……. 이거 먹으면 힘이 좀 날 거요. 그래야 약 효과도 좋지.”

조일우는 아내를 일으켜 앉히고는 숟가락을 들려주었다. 배영분은 병원 밥을 계속 먹었으니 질릴 만도 했고, 더구나 운동량이 없어서 입맛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모처럼 잘 먹는다. 조일우는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여보, 돈 걱정은 하지 마소. 내가 우짜든지…….”

남편의 말을 자르면서 배영분이 말했다.

“경희 아부지 마음 압니더. 하지만 인자 돈을 더 쓰지 마이소. 어차피 지는 오래 못 살아예.”

“그기 무슨 소리요? 와 그래 약한 말을 하오?"

“의사 선생님이 어제…….”

“그케, 의사가 뭐라 카든, 나는 당신 못 보내요. 내 말 믿고 마음 굳게 가지소. 죽이라도 마이 묵고…….”

배영분이 깨끗이 비운 죽 그릇을 보면서 말했다.

“죽이 참 고소하고 맛있네예. 고맙심더.”

배영분은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조일우는 아내에게 보리차를 건네면서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하오. 서울 큰 병원이나 외국 병원에라도 가고 싶지만, 내가 무능해서…….”

“아입니더, 경희 아부진 충분히 했어예. 당신 마음은 제 가슴에 다 담고도 넘칠 정도니까예.”

배영분은 진심으로 고마워했지만, 조일우는 마음 깊이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모처럼 기운이 좀 나아지고 정신도 맑아진 배영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경희 아부지, 나중에 지 정신이……흐려지기 전에 미리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두이소.”

배영분은 말을 잠시 멈추고 보리차로 입술을 적셨다.

“무슨 말인데 그러코롬 뜸을 들이오?”

<2>

조일우는 아내의 대답을 은근히 졸랐다.

“지가… 죽더라도… 우리 애들, 육 남매를 절대 흩이지 말고 당신이 다 챙겨서 키워주이소.

“…….”

“우리 애들… 다 착합니더. 당신 닮아서 어질고 순하지예. 그런 애들은 부모가 없으면 세상 살기 어렵습니더. 엄마가 없으면 아부지라도 같이 있어야 합니더. 그라니까 당신이 다 데리고 사이소.”

“아, 그럼 당연하지. 내가 애들을 어떻게 흩뜨리겠소? 걱정 말고 당신 몸이나 잘 챙기소. 밥심으로 산다카는데 제발 밥 좀 마이 묵으소.”

조일우는 오랜만에 기운이 좀 회복된 아내와의 대화가 좋았다. 하지만 중환자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해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라고… 경희 아부지는 지 죽은 후에 새 장가 가이소.”

병실 밖 전깃줄의 제비 두 마리는 어깨가 닿을 것처럼 가까이 앉아 있다. 그걸 보고 있던 조일우는 아내의 방금 그 말에 흠칫 놀랐다.

“그기 무슨 소리요? 아니, 환자라 카는 사람이 성한 사람 새 장가보낼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나 참!”

“새 장가는 당신보다 애들을 위해서 필요합니더. 딸자식들은 홀아부지가 키우기 힘들어예. 아이들에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래서 당신이 빨리 나으믄, 그기 제일 좋은 엄마 손길이잖소?”

조일우는 아내의 말이 어쩐지 유언 같다는 생각에 언짢아졌다. 오늘 기운이 좀 회복된 것도, 처음에는 전복죽 덕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중환자가 운명하기 직전에 초인적인 힘을 보여준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조일우는 마음이 급해져서 담당 의사에게 가서 물어봤다. 그러나 의사는 그 정도로 위급한 것은 아니고 일시적인 변화일 뿐이라 했다. 조일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실로 들어서며 벽시계를 보는 조일우에게 배영분이 물었다.

“당신, 지금 가야 되지예?”

“어, 내일은 최 동장 과수원에 퇴비 준다고 캤으니…… 지금 가서 준비 좀 해야 되는데…….”

“그라믄 퍼뜩 가이소. 오늘 전복죽 고마웠어예.”

“고맙긴, 뭐……. 잘 묵어줘서 내가 고맙지.”

“참,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더.”

배영분의 말에 조일우는 겉옷을 챙기다가 멈췄다.

“부탁이라니?”

“다음에 올 땐 우리 연희 한 번 데리고 오이소. 막내가 제일 보고 싶네예.”

“그라지 말고 애들 다 데리고 올까?”

“뭐 할라고 그랍니꺼? 차비만 마이 들고… 큰 애들은 학교도 가야 되고…….”

“알았소. 연희만 데려오겠소.”

배영분은 늘 막내에게 미안해했다. 막내 낳고 얼마 안 되어서 자궁암을 진단받고 바로 큰 수술을 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막내에게는 젖도 제대로 못 먹였으니 더 안쓰러웠다.

<3>

조일우는 최병호 동장의 과수원에서 퇴비 작업을 했다. 배꼽 친구 최병호는 사과 과수원이 워낙 커서 종종 일을 부탁한다. 남보다 기운이 세고, 제 일처럼 해주는 조일우에게 일삯도 넉넉히 쳐주는 사람이다.

“여보게, 일우. 쪼매 쉬었다 하세. 이리 와서 목이나 축이고 하자구.”

최병호는 막걸리 병을 따면서 조일우를 불렀다.

“어, 이것만 끝내고.”

주인이 쉬자고 하는데 일꾼이 계속하자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잠시 후, 두 친구는 원두막에 앉아서 막걸리를 나누었다.

“그래, 경희 엄마는 좀 어떠신가?”

“늘 그렇다 아이가. 진통제로 살면서 힘들다 카지.”

“일우 자네도 고생이 많네. 사흘이 멀다 하고 부산까지 다니면서 농사도 다 지으니, 참말로 대단하데이.”

산내면에서 시외버스로 터미널까지 가서는 시내버스로 바꾸어 타고 밀양역에 간다. 완행열차로 부산역에 내려서 또 시내버스 타고 병원까지 간다. 이렇게 하면 족히 4시간이 걸린다. 당일로 왕복하자면 빨라도 8시간 이상의 이동 시간이 걸린다.

“내가 뭘 한다고. 마누라가 고생이지 나야 뭐…….”

“아이다. 애들 여섯까지 다 돌보면서……. 나는 말만 들어도 힘들데이.”

“누구나 닥치면 다 할 수 있는 기라. 사람 일인데 뭘 못 하겠노?”

최병호가 정색하면서 말을 이었다.

“여보게, 일우. 내 말 곡해하지 말고 들어보레이. 저기… 큰딸 경희가 올해 몇 살이고?”

“열여섯 살 아이가. 각중에 그건 와 묻노?”

“저기, 우리 외삼촌, 그 와 자네도 알제? 황 부자라고 밀양읍내에서 아이스케키 공장하던 어른…….”

“아, 그래. 알지. 우리 어릴 때 공장에 가서 아이스케키도 얻어묵었제.”

조일우는 목소리 크고 무서워도 아이스케키는 많이 주던 황 부자가 생각났다.

“그 외삼촌이 올해 일흔인데……. 경희를 그 댁에 보내면 어떻겠노?”

“경희를 그 댁에 보내다니? 그기 무슨 말이고?”

조일우는 의심의 눈으로 최병호를 바라보았다.

“응, 우리 외숙모가 마이 아프고…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나갔거든… 그래서 그 어른이 무척 힘든 모양이데이. 일흔 노인이 빨래, 청소, 음식까지 다 하기도 어렵고, 외숙모가 아직은 살아있으니 재혼도 못 하고…….”

“그럼 사람 쓰면 안 되나? 부자니까 얼마든지…….”

“안 돼. 그 양반은 남을 잘 믿지 못해서 견디는 사람이 없어. 그런데 경희는 자네가 잘 가르쳐서 착하잖아. 가서 살림을 도와주면 야간 학교도 보내주고 월급도 마이 받을 거데이. 그 양반은 부자라서…….”

“그래서… 우리 경희를 그 댁에 식모살이 보내라는 말이가, 시방?”

“아니, 그기… 그라이까… 식모가 아이고… 자네가 부인 병원비도 마이 들고 어려우니까… 또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그래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최병호는 무척 난처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고만두레이. 도움 되지 않으니께.”

조일우는 자기 귀에도 냉정하게 들릴 정도로 잘라버렸다.

“아, 그래. 미안하네. 어려울 땐 입 하나라도 줄이면 낫고, 또 경희가 월급을 받으면 병원비도 보탤 수…….”

“어허! 고만두래도 자꾸 그러네. 내 팔다리를 봐.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어린 자식을 식모살이 보내라고?”

조일우는 참나무처럼 강인한 팔과 다리를 걷어 보였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팔뚝에서 꿈틀거렸다. 누구의 값싼 동정심도 거부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종아리에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4>

“어, 자네 기분 상했다면 유감일세. 미안하데이.”

최병호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또 두 사람은 이 정도의 일로 심각하게 틀어질 사이는 아니다.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고, 말이 나온 김에 나도 부탁이 하나 있데이.”

“그래, 뭐꼬? 이야기 해보레이.”

최병호는 막걸리 묻은 입술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조일우를 보았다.

“가만 보니까 다른 일꾼보다 내 인건비를 마이 주는 것 같던데…….”

“아, 그거? 그거는 당연하지. 자넨 다른 사람보다 일을 훨씬 마이 하니까 당연히 더 줘야지.”

“아니, 내가 일을 쪼매 더 하는 건 친구의 집이라서…….”

“맞아. 자네가 일을 더 하는 것이나 내가 인건비를 더 주는 것이나 같은 이치 아이가. 힘센 사람이 짐 마이 들고, 짐 마이 들믄 밥 더 묵어야지. 이거는 능력급이라 칸데이.”

최병호는 당연한 이치를 말했지만 조일우는 선의의 차별에 부담을 느꼈다.

두 친구는 해가 질 때까지 술잔을 주고받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특히 조일우의 생활 문제에 집중했다. 최병호는 전에 자기가 권했던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조일우를 나무랐다.

“와 그때 보험 안 들었노? 내가 몇 번이나 말했제? 우리 처남 있제? 읍내에서 주유소 하는 변정길 말이야. 그 사람은 내가 권하는 보험에 들었는데 대장암 수술비에 입원비까지 다 받았다 아이가. 지 마누라캉 애들도 모두 보험 들었는데 진짜 든든하다 카더라.”

“그래. 나도 지금은 후회하고 있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우짠지 돈을 뺏기는 느낌이 들더라고. 속는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야. 실제로 보험 아줌마들의 사기 사건도 뉴스에 마이 안 나왔나.”

“우쨌기나 지금의 입장은 치료비, 입원비 모두 생돈을 다 내니까 자네가 그만큼 힘들제?”

“할 수 없지, 뭐……. 열심히 일해서 해결해야지.”

최병호는 친구를 걱정했고, 조일우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되새기는 술자리였다.

<5>

조일우는 일분일초를 아끼면서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논과 밭에서 왕성하게 일했고, 집 옆의 축사에는 소를 네 마리 키웠다.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서 지게로 날랐다. 저녁에는 가마니를 짜고 새끼도 꼬았다. 팔풍 장날에는 땔나무와 가마니와 새끼도 팔았다.

시골 사람들은 비가 오면 술이나 화투놀이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조일우는 비 오는 날이면 도랑에 가서 미꾸라지를 잡아 팔았다. 그래도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온 동네를 다니며 부엌칼과 낫을 갈아주었다. 아낙들은 조일우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주문이 몰렸다. 농한기에도 남들이 다방이나 이발관에 모여 싱거운 말장난으로 킬킬거릴 때 조일우는 남의 과수원에서 퇴비 작업을 하거나 땔나무를 모았다.

조일우는 마치 전쟁처럼 치열하게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 아니, 힘은 들지만 참을 수 있었다. 타고난 강골 체질이기도 했지만, 아내를 살리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아내의 곁에 매일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배영분은 그런 남편을 더 걱정했다.

“지가 넘어지면 업고 갈 사람은 당신뿐인데, 몸조심하고 일도 좀 적게 하이소.”

아픈 아내가 성한 남편을 안쓰러워하는 말이었다.

조일우는 연희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집에서 새벽밥 먹고 출발해도 병원에 도착하면 점심 나절이 되어버린다.

배영분은 주사를 맞고 잠들어 있었다. 조일우는 아내를 깨우지 않고 푹 자도록 조용히 했다.

바로 그때, 연희가 빼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기는 병원 냄새가 싫었든지, 아니면 병원 환경이 낯설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몇 달 만에 만나는 엄마에게 인사라도 하는 것일까.

“당신, 언제 왔어예? 깨우지 않고…….”

“어, 일어났소? 더 잘 낀데 연희 때문에 깼구려.”

“지는 됐고예, 얼라 기저귀부터 퍼뜩 갈아 주이소. 우는 거 보이 쉬했네예.”

배영분은 아기 울음소리로 배가 고픈지, 용변을 봤는지, 놀랐는지, 아픈지 따위를 구별했다. 조일우는 기저귀를 바꾸고 연희를 아내에게 안겨 주었다.

“아이고, 우리 막내 공주 왔구나. 엄마 알겠제?”

“옹알옹알…….”

연희는 엄마에게 인사라도 하듯이 옹알이를 했다. 배영분은 연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볼을 비볐다.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더니 이내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도 그리웠던 막내인데 막상 품에 안고 보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연희의 작은 코에, 입술에, 귀에, 머리에 뽀뽀하고 어루만졌다.

‘아, 이게 내 딸의 냄새구나. 연희야, 미안하데이. 젖 한 모금도 못 먹이는 엄마를 용서하거레이.’

배영분은 연희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작은 입술을 보면서 끓어오르는 오열을 삼켰다.

“그만 하소. 연희 얼굴에 눈물 떨어질라.”

“연희에게… 너무 미안해서예. 젖배를 곯리고 있으니…….”

배영분은 말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계속 흘렸다.

“어허, 얼라 안고 울면, 엄마도 안 좋고 얼라 정서에도 나쁘다 카이!”

“여보, 우리 연희 불쌍해서 우짭니꺼? 젖배 곯은 아이는 크면서 마이 아프다 카던데…….”

“괜찮소. 언니들이 분유나 암죽을 잘 멕이니 걱정 마소.”

“분유에 엄마 냄새가 납디꺼? 암죽에 엄마 숨결이 있던가예?”

배영분은 여과되지 못한 서러움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당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인자 그만하소.”

“우리 막내가 너무 불쌍합니더. 엄마 젖도 못 먹고, 엄마 사랑도 마이 굶었어예. 햇볕 못 받는 음지 식물 같습니더. 이 아이 하나 키우기가 위에 아이들 다섯보다 더 힘들지도 모릅니데이.”

<6>

배영분의 걱정과 눈물은 간단히 그치지를 않았다.

“그만 하소. 얼라 듣는데 나쁜 말하면 당신이나 얼라한테 다 나빠요. 당신이 자꾸 그라믄 앞으로는 막내를 안 데려오겠소.”

조일우의 말에 배영분은 아랫입술만 씹었다.

어른들이 뭐라 하든지 연희는 방긋방긋 웃었다. 엄마를 위로하는지 아버지를 달래는지 연희는 밝게 웃었다.

“여보, 지가 죽으면…….”

“어허! 얼라 듣는데 자꾸 그런 소릴!”

조일우가 말을 막았으나 배영분은 멈추지 않았다.

“들어보이소. 지가 죽으면 당신 꼭 재혼하이소. 새엄마라도 있어야 우리 연희가 잘 큽니더.”

“난 재혼 같은 거 몰라요. 행여 당신이 떠난다 캐도, 아부지 있고 언니 오빠가 다섯이나 있는데 연희 하나 못 키우겠소?”

조일우는 병원에 몇 번이나 왔지만, 오늘처럼 강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없었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아내의 손을 다른 날보다 더 오래 잡아주었다.

경부선 군용 열차는 같은 완행이라도 더 비좁다. 빈 좌석이 없었는데 어떤 청년이 자리를 양보해 주어서 연희를 안고 겨우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연희가 울기 시작했다. 쉬했나 싶어서 헤쳐 본 기저귀는 그냥 보송보송했다. 비좁은 객차 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온갖 지저분한 냄새들이 뒤섞여서 공기가 탁했다. 어른도 답답한데 연희가 얼마나 힘이 들까 싶었다.

조일우는 연희를 안고 객차 밖으로 나갔다. 이토록 답답하고 힘든 세상을 연희가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낙동강 수면에는 서쪽 하늘의 노을이 비쳤다.

조일우는 생각에 잠겼다. 작년부터 이태 동안 농사는 흉년이었고, 반복되는 노동의 피로는 어금니가 두 개나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아내의 병원비, 아이들 학비, 생활비까지 생각하니 걱정이 겹쳐졌다. 수면에 일렁이는 붉은 노을빛이 그의 슬픈 감정을 자극했다. 순간 조일우는 건강한 판단력을 잃고 무서운 생각에 빠졌다.

‘연희를 잘 키우기 어렵겠다. 이 애 하나 키우기가 위에 아이들 다섯보다 힘들 거라고 했지. 눈 딱 감고 밖으로 던져버리자.’

조일우는 옆에 사람이 없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른팔로 아이를 안고 왼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손에는 땀이 났다. 조금 긴장하면 늘 이랬다. 가슴에는 방망이질이 심했다. 누가 오기 전에 얼른 던져야 한다.

바로 그때, 강물에 물오리 다섯 마리가 날아왔다. 네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 오리 뒤를 졸졸 따르며 헤엄쳤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아, 미물도 제 새끼들을 끌고 다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화들짝 놀라며 순간적인 망상에서 빠져나온 조일우는 품에 안긴 연희를 보았다. 공기가 맑아져서 기분이 좋은지 연희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눈이 참 예뻤다.

연희의 맑은 눈동자에 아내의 모습이 비쳤다. 연희의 옹알이에 아내의 단아한 음성이 묻어 있었다. 이 아이는 육 남매 중에서 제 엄마를 가장 많이 닮아서 아내의 분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잠깐 바보 같은 생각을 했구나. 내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이 아이를 잘 지켜주고 예쁘게 키우자. 아이를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조일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연희의 볼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7>

병원에서는 거의 포기를 한 상태였다. 배영분은 통증이 심했지만, 남편에게 집에 가자고 졸랐다. 집에 가서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조용히 하늘의 부름을 기다리고 싶어 했다.

담당 의사는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라서 더 이상의 집착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너무나 힘들 것이라고 했다. 자궁암의 수술 후에도 깨끗이 사멸되지 않은 암세포가 여러 장기로 전이된 것이다. 복수가 많이 찼으며 다른 후유증도 속수무책이었다.

조일우는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100일 전부터는 하루도 빼지 않고 마지막 기차로 부산까지 갔다. 아내 곁을 지키다가 이튿날 새벽 첫 기차로 밀양에 왔다. 그러면서 집안일과 농사일을 다 했다. 왕복 차 중에서 쪽잠을 자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다. 정상적인 체력보다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다.

최병호와 이웃 사람들은 나날이 지쳐가는 조일우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말렸지만,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마치 세상에서 자신이 할 일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묵묵히 감당했다.


퇴원하여 집에서 4개월 정도 버티던 배영분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여보, 지가… 죽은 후에… 한 아이도… 남 주지 말고… 당신이 다 키우고… 결혼시키고… 약속… 하이소.”

“그래요. 내가 잘할 테니… 애들 걱정은 하지 말고… 먼 길 편히 가소.… 부디 저 세상에서는… 아프지 말고… 날 기다리시오.”

조일우는 아내의 귀에다 대고 한 마디씩 밀어 넣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잠시 후 배영분은 숨을 거두었다.

그날은 하늘마저 통곡을 쏟는 것처럼 세찬 비가 내렸다. 조일우는 우산도 쓰지 않고 밀짚모자만 쓴 채 마당에 나갔다. 그리고는 비닐 포대기 여러 장을 마당에 깔았다.

“여보… 경희 엄마. 발 빠지지 말고… 먼 길 편하게 가소. 다 털고 가소.”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조일우의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빗물이 함께 흘렀다.

마침 그날은 시오리 밖에 살던 배영분의 친정 큰 오빠도 세상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남매가 같은 날 저승길 길동무가 되었다고 혀를 찼다.

그때 배영분은 서른아홉의 젊은 아낙이었고, 조일우는 갓 마흔의 순박한 시골 남정네였다. 네 살박이 연희는 아버지와 언니, 오빠들의 우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울었다. 식구들을 따르던 검둥개도 우우하고 서럽게 울었다.

<8>

조일우는 아내가 떠난 후부터 모든 관심을 육 남매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끌어가는 목적인 듯이 집착했다.

애들은 모두 착하고 순했다. 아버지 말을 잘 따랐고 자신들의 할 일을 잘 찾아서 했다. 특히 맏딸 경희가 두 살 세 살 터울로 내려가는 다섯 동생들을 살뜰히도 챙겼다.

큰아들 상규는 열네 살답지 않게 의젓하고 속이 깊었다.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집에서 일을 돕는 시간이 더 많았다.

차남 종규는 여섯 중에서 가장 영리한 아이였다. 공부, 미술, 서예, 노래, 글짓기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부문에서 항상 1등일 뿐 아니라 붙박이 반장이었다. 시골 학교였지만 군 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다.

종규는 아버지에게 가장 큰 희망이었고, 형제들에겐 부러움과 자랑의 대상이었다. 조일우는 종규가 상을 받아오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과자나 통닭 파티를 열어줬다. 아이들의 처진 어깨를 가장 싫어하는 조일우는 기를 살려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더라도 육성회비나 학교 납부금 따위를 미루지 않았다.

조일우는 밥상머리 교육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고 친구들에게 양보 잘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쳤다. 물론 형제끼리도 모두 의좋게 지내도록 세심하게 가르쳤다.

그가 형제의 우애를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조일우의 형제는 삼 남매인데 윗대의 재산이 별로 없어서 가난하게 살았었다.

그런데 누나인 조일선이 아주 예뻤다. 조일선은 산내면의 제일 부자인 최 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조일선의 남편은 처가의 생활이 어렵다고 조일우에게 논과 밭을 조금씩 주었다. 그 전답으로 겨우 먹고살던 조일우는 동생 조일도를 결혼시킬 때, 전답을 모두 주었다.

본래 욕심이 적었던 조일우에게는 목수였던 동생이 더 가난해 보였기 때문이다. 조일우 자신은 기운이 세니까 열심히 일만 하면 잘 살리라 믿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모두 양보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일도는 결혼하자마자 자기 아내를 형수에게 더부살이시키고 혼자 부산으로 갔다. 장장 8년이나 혼자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명절이나 제삿날 큰집에 오면 제사 비용으로 달랑 일만 원을 내놓았다. 그러면 이튿날 조일우는 동생에게 차비하라며 이만 원을 주었다.

그렇게 아내까지 형수에게 맡겨 놓았던 조일선은 형수가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문병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조일우의 처남이 화를 내면서 자형과 사돈을 비난했다.

“자형, 사람이 우째 그렇습니꺼? 사돈이 정말 안 오면 나도 자형을 안 볼랍니더. 알아서 하이소.”

처남의 서슬에 조일우는 동생에게 차비까지 준다면서 제발 한 번만 문병 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결국 조일도가 문병 오면서 처남은 좀 누그러졌지만, 조일도는 형이 주는 차비를 사양 한 번 안 하고 받아갔다.

조일도는 여섯 명의 조카들에게 사탕 값 십 원 한 장도 준 일이 없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얼음처럼 냉정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배를 곯아서 그런지 큰집에 오기만 하면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조일우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동생 원망도 했지만, 육 남매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양보하고 베푸는 사람은 자식들의 심성도 좋아진다고 믿었다.

조일우는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가시나, 이놈아 저놈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매질도 안 했다. 생활 태도에 대해서 엄마 있는 집의 아이들보다 더 반듯하게 가르쳤다.

<9>

하루는 경희가 순희에게 빗자루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순희는 바로 아래의 명희에게 시키고, 명희는 또 막내인 연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하지만 연희가 싫다고 버티었다. 경희는 세 여동생을 불러놓고 빗자루로 손바닥을 한 대씩 때렸다.

연희는 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께 울면서 일러바쳤고, 조일우는 경희를 불러서 크게 꾸짖었다. 하지만 조일우는 우는 맏딸을 그냥 두지 않았다. 가까이 오게 해서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꼭 잡으면서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경희야, 엄마 대신으로 니가 고생하는 거 아부지가 다 알고 있데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동생들 아껴 줘라. 곧 우리도 잘 살게 될 끼다. 알았제?”

경희는 난생처음 혼났지만 크게 서럽지는 않았다. 그만큼 조일우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조일우는 다섯 살짜리 연희를 업고 1시간이나 걸어서 처가에 갔다. 아내가 죽으면 처가 걸음이 뜸한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사람의 인연을 무척 소중히 여겼다. 장인과 장모의 기일에는 언제나 정갈한 한복 위에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입고 갔다. 아내 없는 처가 나들이에 막내딸만 업고 가는데, 연희는 그런 날이 좋았다. 오가는 동안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히는 것도 좋았고, 두루마기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참 좋았다. 외삼촌이 제 손을 잡고 우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맛난 것을 많이 챙겨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조일우는 아이들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육 남매에게는 논밭의 일도 시키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모두 자신이 감당했다.

조일우는 남의 소를 배내기로 더 키웠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일했다. 아내의 병원비를 대느라 빚이 늘어났다. 논과 밭을 팔지 않고 온전히 지키면서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썼기 때문이다. 그가 워낙 성실하니까 말만 하면 이웃들이 돈을 잘 빌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최병호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그는 조일우에게 이자도 받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이라도 최하 월 2부인 사채 이자는 평균이 2부 5리였다. 좀 비싼 사람은 3부도 받고, 급전이면 5부까지 받는 사람도 있었다.

최병호는 조일우에게 언덕처럼 미더운 친구였다. 그런 까닭에 조일우도 돈이 생기면 최병호의 돈부터 먼저 갚았다. 비싼 이자부터 먼저 갚고 싼 이자를 뒤에 갚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조일우는 최병호의 무이자 빚부터 갚았다.

최병호는 차용증조차 받지 않았다. 처음에 조일우가 남들에게 써주듯이 차용증을 써 줄 때 최병호가 말했다.

“자넬 못 믿으면 이따위 종잇조각을 우째 믿겠노?”

최병호는 웃으면서 차용증을 찢어버리고는 조일우의 손을 힘껏 잡았다.

“자네 이 손이 진짜배기 차용증인기라.”

최병호는 선량한 미소를 지었고 조일우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10>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낫 갈고 있는 조일우에게 최병호가 찾아왔다.

“여보게, 일우. 자네 말이야. 혹시 새장가들면 어떻겠노?”

“아니, 난데없이 그기 무슨 소리고?”

두 눈이 커진 조일우에게 최병호가 말했던 것은 소위 재혼 권유였다. 애들에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면서 진지하게 권했다. 이제 마흔두 살이니까 남은 세월을 혼자 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일우는 아내의 발병 이후 5년 동안이나 어떤 여자와도 잠자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상대를 찾아본 적도 없었다. 오직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몸 아끼지 않고 일만 했다.

하지만 그도 힘들 때는 쉬고 싶었으며, 허전할 때는 누군가의 위로도 받고 싶었다. 더구나 그는 더운 피가 흐르는 건강한 남자였고, 지금 간곡히 권하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죽마고우 아닌가?

“내 먼 친척 중에 민소정이라고 혼자 사는 여자가 있데이. 처음 결혼에는 실패했다네. 얼라를 못 낳아서 소박맞았다 안 카나. 그런데 얼라를 못 낳으면 자네에겐 더 좋지 않겠나? 자네 애들에게도 물론 좋을 거야.”

그렇게 시작된 중매 이야기가 몇 차례 더 오간 끝에 조일우는 최병호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다만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서둘지 말자고 했다. 서로가 재출발이니까 신중하게 하자면서 일단 동거에 들어갔다. 다행히 민소정은 싹싹해서 아이들과도 잘 융화되었다. 요리나 바느질 같은 살림도 야무지게 하는 편이었다.

연희가 여섯 살 되던 봄날이었다. 언니 오빠들은 모두 학교에 갔고 연희는 새엄마와 집에 있었다. 민소정은 좁은 마루에 앉아 봄볕을 받으면서 연희를 자신의 무릎에 뉘었다. 그리고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기 시작했다. 연희는 기분이 좋아져서 그냥 귀를 맡기고 있었다.

잠시 후, 연희는 미간을 찡그렸다. 누구라도 귀를 후비면, 심지어 제 귀를 자기가 후벼도 반사적으로 찡그릴 수 있다.

하필 바로 그 순간에 조일우가 들어온 것이다. 대문에 들어오면서 보니 연희가 찡그리고 있는데 방금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이 보였다.

“뭐야? 당신 지금 애한테 무슨 짓하는 거요?”

조일우는 평소와는 전혀 딴판으로 고함을 질렀다. 어린 막내딸을 학대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과잉반응을 보인 것이다. 민소정은 너무 당황했다.

“아니, 귀 후벼준다고… 조금…….”

그렇게 시작된 일이 심각한 다툼으로 확대되었다. 연희는 아버지가 이렇게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겁을 먹었다. 집이 떠나가도록 크게 울었다. 민소정은 너무 억울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얘 연희야. 내가 귀를 찔렀나? 피라도 났나? 울지만 말고 대답해 보라 카이!”

하지만 연희는 대답을 못 하고 더 크게 울었다. 조일우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불쌍한 아이를 이렇게 학대하다니, 당신이 인간이가?”

<11>

그렇게 집이 떠나도록 벌어진 소동을, 중간고사 마치고 일찍 집에 온 상규가 보았다. 상규는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코밑이 거뭇해지고 체격도 다부진 아이였다. 불 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 자지러질 듯이 울어재끼는 연희를 본 상규는 평소의 침착성을 잃어버렸다. 앙칼지게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민소정에게 달려들어서 밀고 때렸다. 민소정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고 같이 엉켜서 몸싸움을 벌였다.

가까스로 조일우가 말려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으로 조일우와 민소정의 관계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민소정이 날을 세우니까 육 남매가 모두 피하면서 집 분위기는 살얼음판처럼 바뀌었다.

조일우는 며칠 후에 최병호를 찾아가서 막걸리를 나누었다.

“그 여자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야. 미안하데이, 친구.”

두 달 동안의 동거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연희는 항상 기운이 없었다. 이모들은 연희가 어릴 때 젖배를 곯아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연희는 젖배보다는 마음의 그늘이 더 심각했다. 봄에 귀 후빌 때, 아프지도 않았고 피도 안 났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아버지와 새엄마가 안 싸웠을 텐데 하고 혼자 속앓이를 했다.

토요일 일찍 집에 온 종규에게 연희가 살짝 말했다.

“작은 오빠야는 편지 잘 쓰제?”

“편지는 와?”

“어, 내가 초코파이 두 개 줄게… 새엄마에게 편지 좀 써줄래?”

“난데없이 그기 무슨 말이고? 새엄만 저그 집에 갔다 아이가?”

“으응, 사실은 귀 후빌 때 안 아팠는데……. 내가 말을 못 해서 아부지랑 새엄마가 싸웠다 아이가? 그래 갖고 새엄마가 가뿌렸고…….”

연희의 눈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달렸다. 종규는 연희를 달랬다.

“괜찮다. 벌써 다 끝난 일인데, 뭐…. 그라고 우린 새엄마 없어도 살 수 있데이.”

종규는 중학교 1학년이라도 생각이 깊고 조숙했다.

“작은 오빠야. 우리 엄마는 나를 낳다가 병 걸렸고, 새엄마는 내가 말을 안 해서 가뿌렸고…….”

“그런 거 아이데이. 택도 없는 걱정 말고 밥이나 마이 묵어라.”

종규는 연희의 가녀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하지만 연희는 시름시름 자꾸 약해졌다. 입맛이 없어서 밥을 피하고, 배가 고프니까 과자를 먹었다. 과자를 먹으니 또 밥을 안 먹고,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12>

연희가 열 살 때였다. 혼자 집에 있다가 과자 생각이 났다. 큰방 선반 위에 있는 저금통을 내린다고 의자 놓고 올라갔다. 돈을 꺼내어 과자를 사 먹을 요량이었지만, 잠깐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심한 통증과 무서운 생각에 집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그때 마침 돌아온 조일우는 연희의 팔이 단순 골절인 줄 알고 접골원에 데리고 갔다. 하지만 남자 세 명이서 뼈를 맞추는 무허가 접골원에서 두 개의 뼈를 더 부러뜨리고 말았다. 집에 오던 버스 속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급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는 모두 세 군데나 부러졌다고 했다.

바로 입원하여 수술하고, 한 달 후에 퇴원했는데 이번에는 팔이 펴지지 않는 거였다. 조일우는 매일 더운물로 찜질을 해주면서, 자신의 오판으로 딸을 고생시켜서 무척 후회했다.

“연희야, 아부지가 잘못해서 니가 고생하는구나. 미안하데이.”

누구보다 강인한 조일우도 연희가 아프기만 하면 쩔쩔 맨다. 그러나 연희는 따뜻하게 찜질해 주는 아버지가 고맙기만 했다.

연희가 열세 살 겨울방학 때 경희가 결혼을 했다. 열두 살이나 많은 큰 언니가 엄마처럼 든든했었는데 시집을 가버리니 너무나 슬펐다. 언니를 데려간 형부라는 남자가 미웠다. 네 살에 엄마가 하늘로 가버렸고, 여섯 살에 새엄마가 싸우고 돌아갔고, 지금은 큰 언니도 가버렸다. 예민한 연희는 세 번의 아픈 이별로 마음에 큰 구멍이 생겼다.

그때부터는 밥을 먹지 못했다. 늘 굶고 울기만 했다. 큰 언니가 보고 싶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나 다른 형제들 몰래 뒤안에 가서 매일 울었다. 몸은 나날이 야위어 갔고 마음에는 먼지가 날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허약하던 연희는 열여섯 살부터 폐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너무 먹지 않고 마음의 상처와 싸웠으니 몸은 나날이 약해졌다. 보건소에서 약을 타 먹었지만, 삼키자마자 토했다.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서 바로 앉아 있기도 어려웠다.

매일 누워서 지내던 어느 날, 조일우가 연희의 몸무게를 달아보니 37kg에 불과했다. 여고 1학년인 딸의 체중을 확인하고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방에 누운 연희는 뼈에 껍데기만 붙어있는 해골 같았다. 눈만 꿈뻑꿈뻑했지 죽은 시체나 진배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희는 임파선 종양의 진단까지 받았다. 목에 아홉 개의 혹이 생겼다. 하지만 기본적인 체력이 너무 약해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급한 대로 보건소의 약을 먹으며 멀건 미음으로 연명했다. 숨만 붙어있었지 도무지 사람꼴이 아니었다.

조일우는 불안했다. 15년 전, 군용 열차에서 던져버릴 생각까지 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 내가 죄를 받는구나. 저 불쌍한 아이를 우째 할꼬? 내가 모진 생각했으면 나에게 벌을 주지, 하늘은 우째서 저 어린아이에게…….’

조일우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눈물만 줄줄 흘렸다.

<13>

그러던 어느 날, 세 언니가 모두 왔다. 언니들은 피골상접의 막내 모습을 보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며칠 못 넘기고 죽을 아이처럼 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네에서는 연희가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흘 후에 둘째 언니 순희가 다시 왔다. 제 동생을 살리겠다며 직장에 사표까지 내고 온 순희를 보자 조일우도 다시금 용기가 생겼다.

조일우는 개소주를 만들어 왔다. 어른들도 먹기 어려운 개소주를 열여섯 살 소녀가 먹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연희는 아버지의 거듭된 채근과 둘째 언니의 눈물 섞인 애원에 못 이겨서 억지로 먹었다. 그러나 목구멍에 채 넘어가기도 전에 다 올려버렸다. 처음 며칠은 먹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비린내가 입에 배면서 서서히 적응이 되었다.

연희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과 둘째 언니의 살뜰한 보살핌 덕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구러 개소주를 여섯 마리나 먹었다. 또 시커멓고 징그러운 오골계 백숙도 열 마리나 먹었다. 바닥까지 내려갔던 체력은 조금씩 회복되었다.

이십 리 밖 동네에서 점집을 하던 배 보살이 조일우와 연희를 불렀다. 배 보살은 조일우의 처형이고 연희의 둘째 이모였다. 그녀는 조일우를 보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말했다.

“제부 보이소. 시방 그 집에서 안 나가믄 연희가 죽습니데이. 빨리 이사를 해야 연희 살릴 수 있다 카이!”

조일우는 가슴이 철렁했다. 평생 살던 집을 떠나야 하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그런 충격은 1분도 가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더. 처형 말씀대로 하지예. 연희가 중요하지 그까짓 집이야 뭐가 중요합니꺼?”

조일우는 처형 집에서 나오는 즉시 밀양읍내로 집을 구하러 갔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내이동의 작은 주택 하나를 구입했다. 급한 대로 최병호를 찾아가서 돈을 좀 빌렸다. 그리고 또 나흘 후에는 이사를 했다.

이사 나온 그날부터 연희는 기적처럼 입맛이 되살아났고 약효도 좋아졌다. 1년 정도 지나서는 건강을 상당히 회복했다. 체력이 좋아졌기에 임파선 종양도 수술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건강은 급속도로 좋아졌다. 체중도 56kg으로 아주 튼실해졌다.

조일우는 건강해진 연희를 보면서 한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연희를 세 번 얻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출생이고, 두 번째는 군용 열차에서였고, 이번이 세 번째인 것이다. 막내는 아내가 제일 걱정하던 아픈 손가락이어서 더 애틋했다.

하루는 셋째 명희가 친구에게서 고양이를 얻어 왔다. 모두가 예쁘다고 좋아할 때 조일우가 들어왔다.

“이거 뭐꼬?”

“고양이라예. 너무 이뻐서 친구한테 얻어 왔습니더.”

“안 된다. 당장 돌려주고 오레이.”

“와예? 고양이가 우쨌다고 그랍니꺼?”

“니, 정신 있나, 없나? 고양이는 방에도 들어오는 짐승인데, 털 날리면 연희한테 해로운 거 모르나?”

그랬다. 조일우는 호흡기 약한 연희를 걱정했던 것이다. 결국 고양이는 그날 밤으로 되돌려 보내고 말았다.

<14>

조일우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비 부담도 비례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내의 병원비 빚은 몇 년 전까지 가까스로 갚았지만, 연희의 치료비와 수술비도 만만치 않았다. 경희야 시집을 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한창 돈이 들어갈 시기였다. 5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힘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어금니는 모두 빠졌지만 틀니 주문을 할 여유가 없었다.

조일우는 최병호를 찾아가서 의논했다. 시골의 농토와 소를 모두 팔아서 빚부터 갚을 생각이니 소개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최병호도 무척 섭섭해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음을 잘 안다.

조일우와 헤어진 최병호는 마을 회관 옆의 이발관에 갔다. 시골 이발관은 이발 외에도 온갖 정보가 교류되는 공간이다. 마을 남정네들의 놀이터와 사랑방이기도 했다. 최병호는 이발관에서 조일우의 농토와 소를 판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유달리 눈빛이 변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병호보다 세 살 아래인 김희동이었다.

김희동은 군대 시절에 수색 근무하다가 지뢰를 밟아서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다. 제대를 했지만 상이용사이며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농토는 본래 없었지만, 있다 한들 농사지을 몸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얼굴 통하는 사람들에게 얻어먹거나 빌려서 썼다. 하지만 처음에 불쌍하다고 적선하듯이 도와주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줄어들었다. 외상술도 꼬리가 길어지니까 술집에서조차 냉대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그는 급기야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작게 시작했던 좀도둑이 차차 큰 도둑으로 변하면서 교도소에도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다른 죄수들이 배우는 목공 기술 따위를 배우지 않았다. 그걸 배운다 해도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고참들로부터 도둑질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대문이나 현관 열쇠를 여는 방법을 배웠고 금고 다이얼 여는 방법도 배웠다.

출감해서는 여러 방법으로 자물쇠 여는 연습도 많이 했다. 본격적으로 도둑질을 하면서 그의 돈 씀씀이도 커졌다. 사람들은 그의 소행을 알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모른 척했다. 그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괜히 건드렸다가는 보복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희동은 다섯 번 성공하면 한 번 잡히는 정도로 성공률이 비교적 높았다. 이미 전과 6범인 그는 교도소에 또 들어가는 게 겁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교도소 안이나 밖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안에서는 술 담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기만 하면 혈색이 좋아졌고, 사람들은 그에게 ‘깜빵 체질’이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15>

그런 김희동이 장날 조일우를 찾아왔고, 습관대로 형님을 혀임으로 발음했다.

“혀임예, 살기가 힘들지예?”

“어… 그냥… 그렇지, 뭐.”

조일우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김희동이 반갑지 않아서 데면데면했다.

“혀임도 돈이 좀 필요하다 카데예?”

김희동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바짝 당겨 앉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혀임예, 나 하고 손잡으면, 아니 나를 쪼매만 도와주면 묵고 사는 걱정은 끝이 납니더.”

“손을 잡다니? 자넬 도와준다고? 그기 무슨 말이고?”

조일우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묻자 김희동이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 같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교도소 수감 회수가 많아질수록 언변도 좋아졌다.

“혀임예. 잘 들어 보이소. 읍내에 동성가구점 알지예? 그 가구점 정 사장이 직원들 월급 주는 날이 매월 15일인데, 하루 전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 금고에 넣어두거든예. 이튿날 월급 준다꼬…….”

“가만, 희동이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노?”

조일우가 단호한 목소리로 김희동의 말을 끊었다.

“어허, 혀임예. 그냥 들어보라 카이. 혀임, 술집 백설장 알지예? 정 사장은 매일 가구점 문 닫으면 백설장 양 마담에게 가거든예. 그 양 마담이 정 사장 애인이고, 정 사장은 마누라 죽기 전부터 양 마담과 연애했는데…….”

조일우는 약간 짜증스럽게 입술 끝을 비틀면서 김희동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정 사장은 알아도 양 마담은 모르는데…….”

김희동도 조일우의 말을 끊으면서, 그러나 목소리를 약간 더 낮추면서 말했다.

“맞습니더, 혀임은 알 필요 없지예. 이런 일은 정보가 중요한데, 나는 모든 정보를 철저히 수집하지예. 그건 내 전공이거든예. 내가 정보 수집을 다 하고 돈도 내가 다 빼냅니더. 빼내는 건 내 특기거든예. 나는 내 전공과 특기를 살려서…….”

“그라믄 전공과 특기를 살려서 자네 혼자 다 하지, 와 내한테 이런 말을 하노?”

“혼자 해도 됩니더. 그란데 성공률을 더 높일라 카이 혀임의 협조가 필요합니더. 내가 문 열고 들어가서 돈 빼나오는 시간은 한 5분이면 됩니더. 그란데 혹시 정 사장이 빨리 돌아오면 판이 깨지지예. 그라니까 혀임이 백설장 골목에 딱 숨어 있다가 그 양반이 나오면 빨리 와서 나를 탈출시키는기라예. 아무래도 그 양반의 발걸음보다 혀임의 오토바이가 몇 배나 빠르다 아입니꺼?”

<16>

김희동의 빠른 설명에 조일우는 큰 눈만 껌뻑거렸다.

“무슨 그런… 도깨비 같은 짓을…….”

“그라고 현장에 갈 때나 올 때나 오토바이로 날 실어주면 혀임의 역할은 끝나는 거지예.”

조일우는 손이 떨리고 목소리도 떨렸다.

“난, 안 돼. 한 번도 안 해봤고… 하여간 그런 짓은… 난 싫어.”

김희동은 조일우의 대답에서 희미한 가능성을 느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되겠다 싶었다.

“혀임은 위험부담이나 역할이 작지만… 빼낸 돈의 50%를 주겠습니더.”

“아니, 역할도 작은데… 절반이나 준다고?”

“아, 그건 내 마음이지예. 나는 홀몸이고 혀임은 자식들이 많다 아입니꺼?”

김희동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빼낸 돈의 액수를 조일우가 알 턱이 없으니, 김희동의 말마따나 ‘내 마음이다’라는 말은 아주 정확한 셈이다. 어깨를 뒤로 젖히면서, 10%만 줄 생각을 하는 김희동에게 이번에는 조일우가 당겨 앉았다.

“그래, 위험한 거는 아이가?”

“들통나면 혀임은 오토바이 타고 튀어 뿌리고, 교도소는 나 혼자 갑니더. 서로 비밀은 확실히 지켜야 하고예.”

김희동은 느물 느물 웃었지만, 조일우는 가슴이 쿵쿵 뛰고 입이 바싹 말랐다.

“그래… 언제… 할 거야?”

“아이고, 혀임예. 방금 말 했잖아예? 15일이 월급날이니 14일 밤에 한다꼬예. 이런 일은 집중력이 좋아야 하니 정신 차리이소.”

조일우는 딱 한 번만 하기로 작정했다. 김희동의 전공과 특기를 믿고 집중력만 좋으면 되리라 믿었다. 또 자신은 별로 어려운 역할이 아닌 데다 정 사장이 백설장에서 늦게만 나오면 아무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빨리 나오더라도 노인의 발걸음보다 오토바이가 몇 배나 빠르다는 김희동의 분석도 정확하다고 믿었다.

이 날 흥화춘 뒷방에서 두 사람이 먹은 간짜장은 너무 불어서 맛대가리가 없었다.

<17>

조일우는 집에서 기다리는 사흘 동안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평소와 달리 손에 땀도 많이 났고 식욕도 떨어졌다. 긴장이 될수록 자잘한 실수도 많아졌다. 예민해져서 짜증도 많이 부렸다.

13일 밤에 조일우는 아내의 꿈을 꾸었다. 사별 이후 세 번째의 아내 꿈이었다. 처음에는 민소정과 헤어진 것을 나무랐고, 두 번째는 경희 결혼을 잘 시켰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이날 밤의 꿈은 급박했다.

“경희 아부지, 내일은 절대 오토바이 타지 마이소. 그라고 연희한테 신경 좀 더 쓰이소. 혹시 나쁜 친구를 안 사귀는지 살펴보고예.”

조일우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김희동을 찾아갔다. 물론 오토바이는 집에 두고 20분이나 걸어서 갔다.

“이봐, 희동이. 내일 그거 말이야. 난 아무래도 못 하겠구먼. 자네 혼자 하게.”

“와예? 돈 필요 없습니꺼, 혀임?”

“어, 도저히 안 되겠네. 미안하데이. 그 대신에 비밀은 지켜줄게.”

조일우는 김희동에게도 그런 짓을 그만두게 하고 싶었으나 그 말은 삼켜버렸다.

“알았습니더. 나 혼자 하면 백 프로 다 먹고 좋지, 뭐. 들켜봐야 교도소에 가지 죽기야 하겠습니꺼? 별은 여섯 개나 일곱 개나 그게 그거고예.”

<18>

집에 돌아온 조일우는 연희를 기다렸다. 연희는 요즘 친구들이 집에 많이 놀러 오더니 외출도 부쩍 잦아졌다. 몇 년 동안이나 밥도 잘 안 먹고 크게 앓았으니, 그때 놀지 못한 걸 되찾기라도 하는 아이 같았다. 그래서 조일우는 별로 잔소리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어젯밤 꿈속에서 만난 아내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오늘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고 김희동의 유혹도 물리쳤지만, 늦게 들어오는 연희가 걱정되었다. 시간이 늦어지자 조일우는 골목 끝까지 나가서 서성거렸다. 연희는 거의 11시가 되어서야 들어왔다.

“어, 아부지. 여기서 뭐 합니꺼?”

“뭐 하긴, 우리 막내 기다렸지.”

“에이, 제가 뭐 어린앤가예?”

“어린애 아이고 다 큰 처녀라서 더 걱정이데이.”

조일우는 방에 들어가서 연희에게 말했다.

“연희 니, 친구들 몇 명이고?”

“친구들예? 한 서른 명… 아니, 오십 명쯤 될 거라예.”

“아니, 그런 건 그냥 아는 사람이고, 진실한 친구 말이야.”

“진실한 친구라면… 어떤 친구 말입니꺼?”

“좋을 때 함께 웃는 사람은 많제? 하지만 니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손 잡고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안 많데이. 그런 진실한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인기라.”

연희는 잠깐 생각해 봤지만 그런 친구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많이 아플 때, 죽었다고 소문내는 사람은 있어도 찾아와서 손 잡아준 친구는 없었다.

“연희야.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사람이데이. 앞으로 살면서 진실한 친구를 잘 사귀거라. 친구는 많다고 좋은 거 아이니까 꼭 기억해 두레이.”

조일우는 연희가 항상 걱정이었다. 엄마 사랑을 못 받고, 젖배도 골면서 오랫동안 아팠기 때문이다. 마음이 너무 여리고 남의 말을 의심 없이 따르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걱정했던 일이 스물네 살인 연희에게 일어나고 말았다. 온갖 감언이설로 따라다니는 남자가 생긴 것이다. 연희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해주는 사람을 잘 따른다. 난생처음으로 사랑의 고백을 받으면서 그 남자와 깊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순수하거나 아름다운 출발은 아니었다. 억지로 권하는 술을 몇 잔 받아 마시고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삼류 드라마처럼 덜컥 임신이 되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연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희는 세상을 너무 몰랐던 탓에 아기만 생기면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만약 엄마나 큰 언니가 함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장호근은 연희를 앞세우고 조일우에게 인사하러 왔다.

“내가 연희 씨 고생 안 시키고 잘 살겠습니더.”

연희는 깜짝 놀랐다. 어른께 자기 자신을 ‘제가’라고 하지 않고 ‘내가’라고 하다니. 그 자리에서만 세 번이나 버릇없는 말투를 듣고 기가 막혔다. 기본 교양이 없고 가정교육을 못 받은 장호근에게 크게 실망했다.

조일우는 당연히 장호근을 싫어했다. 우선 오 남매의 맏이라는 것이 걸렸다. 연희는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동생들 많은 집에서 맏며느리 역할을 하기에는 버거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라는 직업도 싫었다. 시골의 택시 기사는 당장의 생활도 어렵지만, 미래의 전망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또 일 자체가 위험해서 늘 걱정해야 한다. 몇 년 동안 벌어도 한 번의 실수로 휘청거릴 수 있는 직업이 운전이라고들 한다.

<19>

하지만 연희는 자꾸 불러오는 배를 몰래 만지며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저지른 일이야. 아기를 내가 책임져야 해.’

연희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지한 남편은 가르치면 될 것이고, 참으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아버지를 졸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했듯이, 결국 연희의 고집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 입장할 때 팔짱 꼈던 아버지의 굳은 입술을 보고 연희는 가슴이 아팠지만, 배속에 있는 새 생명을 위한 결심을 접을 수는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조일우는 술을 마시고 울면서 큰누이에게 말했다.

“누님예. 우리 막내 이뿌지예? 꼭 오로라 공주 같지예? 그런데 그 애가 앞으로 우째 살아갈지 걱정이 태산입니더.”

옆에 있던 오 남매도 우울해졌다. 형제들은 엄마 장례식날 말고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조일우는 품을 떠나는 막내딸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사위가 성에 차지 않아서 마음이 더 무겁다. 경희가 우니까 순희와 명희도 따라 울었다.


조일우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깔끔한 성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앞마당부터 말끔히 비질하고 방청소까지 꼼꼼하게 했다. 어른이 그렇게 하니까 육 남매도 모두 부지런하고 능동적인 태도를 본받았다.

조일우의 회갑을 얼마 앞두고 자식들이 모였다.

“아부지, 회갑 선물로 뭐 해드릴까예?”

경희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조일우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내 죽을 때 입을… 수의나 한 벌 해도고.”

그래서 육 남매가 십시일반으로 수의를 해드리고 냉장고도 좋은 것으로 바꾸어드렸다. 며느리, 사위, 손자들까지 대가족이 근사한 식당으로 가서 회갑 축하 파티도 모양 있게 했다.

조일우는 그때부터 한복용 박스 속에 수의와 마른 홍고추를 넣어 보관했다. 해마다 뒤집고 하면서 세심하게 관리를 했다.

연희는 혼자서 조금씩 모아 둔 적금을 탔다. 연희는 따뜻한 봄에 아버지와 작은 오빠를 함께 제주도에 보내드렸다.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먼저였고, 오빠에게도 심기일전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 당시 종규는 돈을 벌 때였지만, 주식을 해서 다 날려버린 탓으로 어깨가 처져 있었다. 또 연희는 아버지의 여행이라면 딸보다 아들의 동행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일우는 처음에 사양했지만, 연희의 끈질긴 설득으로 여행에 나섰다. 막내 덕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는 조일우는 무척 흥분되었다. 연희는 아버지와 오빠의 즐거운 표정을 보고 공중에 둥둥 뜨는 것처럼 행복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집에 돌아온 조일우는 여행지에서 경험한 이야기보따리를 즐겁게 풀었다. 연희에게 고맙다, 잘 다녀왔다면서 흐뭇해하는 조일우의 입은 웃었고 눈가엔 이슬이 촉촉했다. 연희도 자식으로서 가장 보람된 도리를 했기에 기분이 좋았다.

<20>

연희는 결혼 후 3개월 만에 아들 유민이를 낳았다. 처음에 조일우는 덤덤하기만 할 뿐 별 말이 없었다. 애초에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아기에게도 얼른 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연희가 유민이를 안고 자주 오니까 서서히 재롱이 보였다. 어떤 날은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것은 핏줄의 끌림이었다. 가만히 보니까 유민이가 귀엽기도 했지만 영리하기도 했다. 조금씩 자라면서 배꼽 인사를 하거나 노래라도 부르면 깨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유민이가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녀석을 안고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녀석이 다 먹을 수만 있다면 가게의 과자를 모두 다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연희는 유민이가 과자를 많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거식증과 허약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조일우는 어떤 일이든지 연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연희의 말이라면 맹목적일 정도로 다 들어주려고 했다.

하루는 연희가 유민이를 데리고 왔는데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연희야, 와 카노?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아, 아니예. 아무것도 아입니더.”

그러나 연희가 강하게 부정할수록 진심과는 반대라는 것을 조일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조일우는 연희를 살살 달래면서 물어보았다. 사실 연희는 결혼 생활을 무척 힘들어했다. 시어머니는 연희를 경계하거나 심한 말도 함부로 했다.

남편의 무지와 고집도 도를 넘을 정도였다. 연희보다 여섯 살 많은 장호근의 정신 연령은 턱없이 낮았다. 그는 무척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매사에 계획성이나 준비성이 없고 그냥 하루살이처럼 즉흥적으로 사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능력이 부족하면 아내의 말이라도 좀 들어야 할 텐데, 곧 죽어도 남자의 자존심은 있어서 큰소리만 땅땅 쳤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니, 이거 얼라 바지 아이가?”

“예, 유민이 바지 하나 샀어예.”

“무슨 소리고? 바지 있는데 또 샀나?”

“하나뿐인데 세탁하려면…….”

장호근은 아내의 말을 자르면서 질문을 날렸다. 아니, 따졌다.

“그래, 얼마 줬노? 좀 마이 깎았나?”

“만 오천 원 줬어예.”

“아니, 애들 옷이 와 그리 비싸노? 좀 싼 거 없더나?”

장호근은 자신의 벌이가 시원찮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물가는 택시값 빼고 모두 비싸다고 평소에 불평했다. 담뱃값 올랐다고 열흘이나 정부에 욕을 하는 위인이다. 연희가 그릇이나 주방용품 하나를 사 와도 왜 샀느냐는 둥 비싸다는 둥 입을 댔다. 연희는 남편이 너무 좀생이라서 미더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연희는 이따금 남편과 아버지를 비교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책임감을 잊지 않았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했다. 과묵해도 자애로웠다.

하지만 남편은 책임감이나 성실성도 없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할 줄 몰랐다. 또 형제와 어머니에 대해서는 과할 정도로 신경 쓰지만, 아내와 아들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냉담했다.

거친 행동도 종종 보였다. 어떤 날 아침에는 일하러 갈 시간이라고 깨웠는데, 화를 벌컥 내면서 밖에 가서 물동이를 들고 왔다. 그리고 물 한 동이를 이불 위에 다 부어버렸다.

연희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차차 많아졌고, 그렇게 누적된 불만이 아버지 앞에서 어두운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내색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오직 자식들만 생각하고 특히 연희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조일우가 그걸 놓칠 리 없다.

“얘, 연희야. 니 무슨 일 있제?”

“일, 일이라뇨?”

“아부지한테 말 해봐라. 뭐가 문제고? 장 서방이 힘들게 하더나?”

“아입니더. 그런 일 없어예.”

“그라믄 와 그래 힘이 없노? 젊은 애가 한숨이나 쉬고 말이지.”

“그냥… 조금 피곤해서예. 신경 쓰지 마이소, 아부지.”

연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은 아버지에게 안겨서 펑펑 울고 싶었다. 힘든 것을 다 일러바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까지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21>

다음 날 아침, 조일우는 집을 나서면서 중얼거렸다.

“자식은 부모 마음 다 몰라도, 부모는 자식 마음 다 알아. 장 서방을 만나보자.”

조일우는 장호근이 근무하는 택시회사 사무실로 갔다. 장호근은 마침 쉬는 시간인지 커피를 마시면서 동료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여보게, 자네 나 좀 보세.”

“아, 장인어른 오셨습니꺼? 잠깐만예…… 이거, 다 됐어예. 점심내기라서…….”

장호근은 찾아온 장인에게 의자를 권하거나 자판기 커피 한 잔도 대접할 줄 몰랐다. 자기는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바둑을 두면서도, 장인은 옆에 세워두는 사람이다. 사람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처자식을 보호하고 살아갈 것인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조일우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그냥 나와 버렸고, 장호근은 앉은 채로 ‘안녕히 가세요’라고만 말했다.

조일우는 연희의 아파트로 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결혼은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희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면 결혼 생활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이혼하는 사람도 많다. 포기하는 것도 선택의 한 방법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가 자식에게 이혼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일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아파트 앞에서 잠시 서성이던 그는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지.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참아보자. 오늘 사위에게 당했던 푸대접도 잊어버리자.’

조일우는 집에 와서 혼자 소주를 석 잔 마셨다. 저녁도 먹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자식들이 아프거나 힘들어할 때면 아내 생각이 더 간절했다. 수척한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내가 몹시 그리웠다.

<22>

아침에 늦게 눈을 떴다. 그것도 대문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깬 것이다.

“이 사람, 일우. 자네가 늦잠을 자다니,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보네 그려.”

“아, 최 동장 왔는가? 밤에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구먼. 그런데 그 강생이는 뭐꼬?”

“어, 이거? 내 동생 집에 해피가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거든. 그중에서 똘똘한 녀석을 내가 얻어 왔지. 자네가 적적할 거 같아서 말이야.”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추수 끝난 들판처럼 적적하고 허전하다. 눈빛 맞추고 말이라도 나눌 상대가 없어서 더 그렇다. 이제 막 젖을 뗐다는데 벌서 귀가 세모꼴로 쫑긋 선 수캉아지였다. 백설처럼 흰 털이라서 녀석의 눈빛이 더 또록또록해 보였다. 스피치 종류라서 다 자라도 많이 먹지 않고 똥도 적게 싼다고 했다. 그러니까 집에서 동무삼아 키우기에 딱 좋다면서 최병호는 자랑이 길었다.

최병호가 가고 난 뒤에 조일우는 사과 상자를 대충 손질하여 강아지 집을 만들었다. 예쁜 목걸이와 개줄을 사서 걸어주며 이름을 동동이라고 지었다. ‘동동아’하고 부르면 녀석이 동동거리며 뛰어오는 게 여간 귀엽지 않다.

조일우는 대문간을 드나들 때마다 동동이를 쓰다듬어 주었으며, 동네 식당에서 돼지갈비나 족발 뼈다귀도 얻어주었다. 경로당에 있다가도 동동이가 보고 싶어서 빨리 돌아오곤 했다.

서너 달 동안 흠뻑 정이 든 어느 날, 연희와 유민이가 왔다. 그런데 연희가 기침을 많이 했다. 조일우는 깜짝 놀랐다. 연희는 옛날부터 호흡기가 약하지 않았던가? 조일우는 자신의 부주의를 깨닫고 강아지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희가 반대했다.

“지금 이 기침은 며칠 전부터 감기에 걸려서 그래예. 우리 집에서도 기침했으니 동동이랑은 상관없습니더. 그라고 제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니잖아예?”

“우쨌든 강아지는 안 되겠네. 아부지가 니 생각을 깜빡 까 묵었네.”

하지만 연희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버지의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서는 동동이의 재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동동이는 매일 털을 빗겨주고, 가끔 목욕을 시켜주면 된다고 했다.

조일우는 간혹 오는 딸의 호흡기를 걱정했고, 연희는 매일 느낄 아버지의 외로움이 안타까웠다. 이러니 저러니 입씨름 끝에 조일우는 연희에게 또 한 번 항복하고 말았다. 대신에 강아지 털이 집에 남지 않도록 무척 신경 썼다. 집은 전보다 더 깨끗해졌다.

<23>

예순여섯이 된 조일우는 요즘 부쩍 아내 생각이 많이 난다. 어쩐지 식욕도 없고 가슴에는 큰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다. 가끔 만나는 최병호가 그래도 반갑고, 동동이와 산책하는 일이 그나마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산책을 마친 조일우는 내일이 어머니 기일이라서 집을 깨끗이 청소했다. 빗자루와 걸레로 온 집안을 반질반질하게 청소했다.

이튿날 어머니 기일에는 날씨가 참 좋았다. 꽃샘추위가 만만찮은 음력 2월인데도 마치 봄처럼 따뜻했다. 조일우는 툇마루에 앉아서 생전의 어머니 모습을 회상했다. 참 어질고 지혜로운 어머니였다. 도토리묵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 산나물로 반찬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 입은 무겁지만 가슴이 따듯하신 어머니, 비녀 꽂은 모습이 단아했던 어머니…….

문득 그리움의 시간이 멈춘 것은 큰 며느리가 왔기 때문이다. 이어서 딸들과 작은 며느리까지 온 것은 저녁나절이 다 되어서였다.

남자들, 그러니까 두 아들과 사위들은 일을 마쳐야 오니 항상 조금씩 늦다. 조일우는 손자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집에 생기가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님, 진지 잡수이소.”

방문 밖에서 큰 며느리가 부르는 소리였다. 거실로 나가보니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일우는 경희가 따러주는 술을 한 잔 마셨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술이 마지막 술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큰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던 잉어회를 준비해 왔다. 조일우는 잉어회를 맛있게 먹고 매운탕과 밥도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조일우는 화장실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마침 도착한 두 아들이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려고 했으나, 조일우는 곧 낫는다면서 좀 쉬겠다고 했다. 화장실을 여러 차례 들락거리던 조일우는 제사에 참석도 못 하고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식구들은 좀 주무시면 낫겠지 하면서 자손들끼리 할머니 제사를 모셨다.

제사 후에 모두들 내일의 일 때문에 돌아가야 했다. 상규는 아내에게 당부했다.

“아부지 몸이 안 좋으시니 내일 아침에 죽을 끓여드리고, 설사가 계속되면 병원에 모시고 가소. 며칠 걸리더라도 완전히 회복하신 걸 보고 집에 오소.”

그렇게 그날 밤은 끝이 났다.

이튿날 아침에 큰 며느리가 죽을 끓여 올리니까, 조일우는 조금 있다가 먹는다면서 다른 볼일 보라고 했다. 한참 후 점심때도 죽 한 숟가락 뜨지 않았다.

큰 며느리는 걸어서 5분 거리인 작은 집에 간장 얻으러 잠시 갔다. 거기서 숙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시아버지 방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죽을 데워서 시아버지를 깨웠는데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조일우는 한 명의 자손도 임종하지 못하는 시간에 조용히 하늘 문으로 들어갔다.

연희는 올케의 연락을 받고 친정으로 달려갔다. 아직도 아버지의 손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얼굴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그냥 잠결에 떠난 것이다. 연희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정신을 되찾은 연희는 언니들의 통곡소리를 듣고 사태를 재확인했다. 그때부터 연희는 꼬박 사흘 동안 아무 음식도 입에 넣지 못했다. 울다가 쓰러지고, 깨어나면 또 울었다.

연희는 아버지 생전에 효도하지 못하고 속 썩여드린 것만 떠올랐다. 막내의 건강을 밤낮주야 걱정하시던 아버지, 좋다는 약을 다 구해주시던 아버지, 반대하시던 결혼을 끝내 고집대로 해버린 불효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불쌍한 아버지, 자식들 편하라고 할머니와 기일까지 맞추어 떠나신 아버지, 육 남매 내외 열두 명이 있으나 단 한 명의 배웅도 받지 못하고 떠나시는 먼 길, 연희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에 온몸을 떨었다. 평생 흘릴 눈물을 사흘 동안에 다 쏟았을 것이다.

<24>

연희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오는 그날부터 극심한 환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온 집안에 아버지가 보이는 거였다. 방, 거실, 주방은 물론이고 화장실에까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에게 무서움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헛소리하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너무 무서웠다. 꿈에도 나타났다.

“아부지, 엄마한테 가이소. 인자 여긴 오지 마이소.”

하지만 조일우는 말없이 연희의 손만 잡았다. 눈빛으로는 마치, 연희 니가 제일 걱정이데이. 우리 막내, 아부지도 없이 우째 살겠노? 하는 듯했다.

연희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면서 깼다. 온몸에 비 오듯이 땀이 흘렀다. 두어 달 계속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얼굴이 많이 상했다. 연희는 큰 언니에게 이 일을 말했고, 경희는 전화로 민간 비방을 가르쳐주었다.

“집의 구석구석에 팥을 한 움큼씩 놓아 두레이. 그라믄 괜찮을 끼다.”

연희는 그날 당장 큰 언니의 말대로 했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결이 되었다. 연희는 이제야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넉 달 동안이나 밥을 먹기가 어려웠다. 목에 뭐가 꽉 걸린 것처럼 도저히 먹지를 못 했다. 억지로 조금이라도 먹으면 올려내기 바빴다. 그런데 이런 고통은 연희만 겪는 게 아니었다.

한동안 관심도 두지 않았던 동동이에게도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동동이는 주인이 안 보이자 밥이든 사료든, 심지어 소고기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도 탐스럽던 동동이의 모습이 꺼칠해졌다. 털도 많이 뭉치고 빠져서 보기에 흉했다.

어느 날, 연희는 동동이를 자동차 뒷자리에 태우고 집 근처 영천암에 갔다. 동동이는 밖에 두고 혼자 법당에 들어가서 향을 올리고 108배를 했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했다. 법당에서 나올 때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연희는 매일 한 번씩 꼬박 한 달 동안을 그렇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원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식욕이 되살아나고 몸에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다. 얼굴색도 좋아졌다. 뿐만 아니라 동동이도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새하얀 털빛이 다시 살아났고 활기도 넘쳤다. 연희는 동동이를 데리고 절 뒷길로 걸었다. 동동이는 이름처럼 동동거리며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연희는 상황이 이렇게 좋아진 것이 부처님의 가피인지, 혹은 아버지의 보살핌인지 몰랐다. 어찌 생각하면 그동안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축원하는 동안에 마음의 짐을 스스로 내려놓은 결과인 것도 같다. 어쨌거나 연희와 동동이는 건강과 활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주지스님과 상의하여 동동이는 절에서 키우기로 했으며, 연희는 영천암에 유민이와 자주 다녔다.

<25>

추석에 육 남매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상규가 입을 열었다.

“시청에서 공문이 왔는데, 아부지 어무이 산소를 이장하라 카네.”

“각중에 와 그라노?”

경희가 묻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지금의 산소는 조일우가 생전에 자식들의 성묘 고생을 줄여주겠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위치에 옮겨 놓은 것이다. 아내의 산소가 너무 멀고 험한 곳이라서 용포동으로 이장하면서, 겸해서 자신의 가묘까지 미리 만들어 두었다. 그 덕택에 자식들이 아주 수월하게 장례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용포동에 구치소가 들어선다고 이런 행정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상규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명원스님과 상의했다. 그 결과 이장보다는 수목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처음의 이장이지만, 어머니는 두 번째의 이장이라서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형제들은 선산에 수목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날을 잡아서 할아버지 산소 아래의 왕소나무 밑에 모셨다. 조일우의 장례식날처럼 오늘도 날씨가 쾌청하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 조일도가 화를 내면서 울어댔다. 자식이 여섯이나 있는데 무덤도 없이 소나무 밑에 버리냐고 큰 소리로 따졌다. 경희와 상규가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설명해도 수그러들지 않는 땡고집이었다.

그때까지 말이 없던 연희가 작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작은 아부지 마음 잘 압니더. 그런데 이 일은 작은 아부지의 마음이나 저희들의 편리성을 생각하면 안 될 거 같아예. 아부지 엄마가 편하시면 모든 게 다 좋습니더. 우리 형제들이 한 명의 반대도 없이 마음을 모았으니 부모님도 좋아하실 겁니더.

만약 수목장이 해롭다면 형제 중에 누구라도 반대했겠지예. 작은 아부지도 저희들의 일치된 마음을 이해해주이소, 네?“

조일도는 말이 없었다. 그냥 물끄러미 연희를 바라보더니 불쑥 물었다.

“막내 니는 요새 안 아프나? 너그 아부지는 평생 니 걱정만 했다 아이가.”

“예, 건강합니더. 이제 작은 아부지만 이해해 주시면 다 좋아집니더.”

연희는 부드러운 얼굴로 작은 아버지를 설득했다. 조일도는 어색하게 입맛만 다시고, 먼 산에서 구구대는 비둘기가 대답을 대신했다. -끝- 원고지 18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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