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어머니와 아내
<1>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병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 벌써 49년이 지났다. 그해 8월에 엄청난 폭우가 내렸고, 집 앞으로 흐르는 도랑의 상류에서 못 둑이 터졌다. 그리고 떠내려온 아름드리나무와 쓰레기들이 도랑 하류의 시멘트 다리에 걸려서 물 빠짐을 방해했다.
그 홍수의 난리 통에 병규 동네에서는 아홉 명이 도랑을 건너게 되었다. 맨 앞에는 병규가 서고 두 번째는 어머니가 섰다. 그다음에는 아랫방 아주머니와 그 집의 아이들, 옆방 아주머니 등이 차례로 섰다. 맨 끝에 선 젊은 아주머니의 등에 업힌 갓난아기까지 치면 정확히 열 명이었다.
모두가 인간 띠처럼 손을 꼭 잡고 난간도 없는 시멘트 다리에 올라섰다. 그때 건너편 집의 블록 담장 위에 합기도 김 사범이 나타났다. 그는 도복 띠의 한쪽 끝을 병규에게 던졌으나 턱없이 짧았다. 주위를 살피던 김 사범이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도장으로 도복 띠를 더 가지러 갔을 때였다.
“발바닥 떼지 말고 끌면서 걸어야 됩니더. 천천히!”
병규가 뒤를 돌아보면서 일행들에게 외쳤다. 세찬 물살에 몸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병규가 생각한 것이었다. 싯누런 황토물이 삼킬 듯이 내려왔다. 일행은 난간 파이프도 없는 시멘트 다리를 조금씩 건너고 있었다. 다리 위에 섰을 때 가슴 정도의 수위였지만 다리 아래의 도랑 깊이까지 합하면 꽤 깊었다. 물살이 하도 세니까 되돌아가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병규와 어머니는 계속 앞으로 나가자고 했다. 본래 뒤에서는 남은 거리가 멀어 보이고 앞에서는 되돌아가는 것이 멀어 보인다.
가자거니 말자거니 하는 잠깐 사이에 대형 드럼통이 떠내려 왔고, 행렬의 중간쯤에서 누군가 피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 바람에 대열이 흐트러졌고 모두 떠내려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규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순간 병규는 간밤의 꿈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소복 차림으로 산발한 채 칼을 입에 물고 말했다. 무엇을 입에 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데, 꿈속에서는 똑똑한 음성으로 들렸다. 그것도 꽤 무거운 식칼인데 말이다.
“병규야, 너그 아부지가 부른다. 내캉 같이 가자.”
“싫어예. 난 안 가예.”
병규는 울면서 도랑다리를 건넜고 신작로 반대편의 큰집으로 숨었다. 잠시 후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칼을 입에 문 채로 죽어 있었다. 엎드린 자세였다.
병규는 물에 떠내려가면서도 그 꿈이 생각났다.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친 병규는 그 짧은 순간에 이상한 것을 보았다. 싯누런 뻘물 속에서 눈을 뜨니 도랑 바닥의 자갈이 다 보이는 거였다. 마치 수돗물처럼 맑은 물속에서 구슬만 한 자갈까지 깨끗이 보였다.
병규는 죽을힘을 다해서 화물차 주차장 옆의 블록 담을 잡고 나왔다. 바로 옆에는 꺼먼 돼지가 너덧 마리 들어있는 돼지우리였다. 도랑에는 조금 전까지 손을 잡고 건너던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갓난아기까지 아홉 명이 떠내려갔고 병규 혼자만 겨우 땅 위에 섰다.
“큰아부지예! 엄마가 물에 떠내려갔어예.”
병규는 큰집으로 뛰어가서 알렸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다. 병규는 도랑 주변을 뛰어다녔으나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 한참 후에 소문이 들렸다. 어머니의 시신을 명산목욕탕 뒤쪽의 다리 난간에서 건졌다는 것이다. 병규는 울면서 뛰어갔다. 가마니로 덮어둔 어머니 시신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는 헝겊이 감겨있었다.
아까 새벽에, 물이 마룻바닥까지 올라오기 전에 어머니는 무슨 서류와 장부들을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둘렀다. 그리고 간장과 고추장 항아리들을 큰방 다락으로 다 옮겼다. 병규가 빨리 피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그냥 살림을 챙겼다.
어머니는 급하게 옮기던 항아리를 마룻바닥에 떨어뜨렸다. 애초부터 맨발로 서둘던 어머니는 깨어진 항아리 조각에 발가락을 베었다. 병규는 입고 있던 러닝셔츠의 아랫부분을 뜯어서 어머니의 엄지발가락에 묶어드렸다. 지금 가마니 아래로 삐져나온 어머니의 엄지발가락이 바로 그것이다.
병규는 가마니를 걷어내고 어머니의 시신에 엎어져서 통곡을 쏟았다. 어머니의 얼굴과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연두색 상의와 꽃무늬 몸뻬를 그대로 입고 있었으나 허리에 감았던 보자기는 없었다. 비는 서서히 그치고 있었지만 병규의 눈물은 그치지를 않았다. 두 여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그날부터 비 오는 날만 되면 떨리기 시작한 것이 수십 년이나 계속되었다.
5년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서른다섯에 늑막염으로 별세했고, 이제 어머니마저 서른다섯에 하늘로 떠났으니 부부가 합해도 칠십밖에 못 살았다.
물 빠지고 집에 돌아가보니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어른들 말로는 이 동네의 피해는 십 년 전의 사라호 태풍이나 노라호 태풍 때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수해 현장에 나온 읍장의 멱살을 흔들며 항의했다. 못 둑이 터지고 시멘트 다리가 막힌 것이 주원인이니까 읍장이 다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규는 어머니가 살림 챙기느라 빨리 피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피한 사람들은 다 살았지 않은가?
병규는 온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살림 잔해들 속에서 원목 책상을 찾아서 햇볕에 말렸다. 그것은 중학교 시험에 붙었다고 어머니가 사주었던 것인데 단 하나의 유산이 되고 만 것이다. 책상의 흙을 닦고 있는데 합기도 김 사범이 와서 말했다.
“이제 네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 실력을 길러라. 그 외에는 믿을 게 없다.”
병규는 그 말을 깊이 생각했다. 실력을 길러서 동생들을 책임져야지, 지금부터는 그것만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병규는 말이 적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울기 바빴고 나중에는 살기 바빴다. 두 여동생과 세상에 남겨진 병규는 외로움에 떨고 서러움에 울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병규를 귀여워해 주던 친척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병규는 멸시와 배신을 당하면서 분노와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날개 꺾인 참새처럼 발발 떨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받치면서 얻어먹거나 주워 먹은 날도 많았고 굶은 날도 더러 있었다. 병규에게는 물질이든 정신이든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죽기 살기로 앞만 보면서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2>
아내의 병은 자꾸만 깊어간다. 이제는 통증이 심해서 조금씩 걷는 것도 힘들어한다.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을 늘려도 잘 듣지 않는다. 7년 전에 유방암을 수술했고 5년 정도는 상태가 무척 좋았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6개월 간격으로 5년 동안 모두 열 번의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2년 동안 식당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것이다. 식당이란 손님이 많으면 몸이 지치고, 손님이 적으면 마음이 지치는 직업이다. 아내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장사는 잘 되었다.
그러다가 같이 일하던 사람이 아파서 나갔다. 다른 사람을 얼른 못 구해서 일시적으로 아내에게 일이 몰린 것이다. 그때부터 옆구리가 아프고, 등이 아파서 바로 눕지도 못했다.
아내는 힘들어도 잘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다. 엄살이나 요령을 부릴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할 일에만 몰두하는 편이다. 병규는 매주 월요일마다 식당을 쉬면서 병원이나 한의원으로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검사를 했다. 대학병원, 종합병원, 한의원 등 아홉 군데의 의료기관에서 열한 명의 의사들이 검사했다. 그러나 유방암 재발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모두 늑간신경통이나 근육통, 척추측만증 같은 진단만 내놨다.
5년 동안 열 번이나 검사했던 아산병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검사했기에 이렇게도 몰랐나? 대구 파티마병원에서는 동위원소 핵 사진을 다 찍었는데 뼈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암세포가 뼈로 전이되었는지 집중적으로 확인하는 검사에서 완전히 놓친 것이다. 경북대 병원에서는 복강 내에 아무런 병변이 없으니 근육통이라는 진단으로 주사만 놓았다. 병규는 의사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불친절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의사들에게 욕을 퍼붓기도 했다.
결국에는 해운대 자생한방병원에서 암세포가 뼈로 전이되었다는 소견을 밝히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날 밤에 바로 상경하여 서울역에서 구급차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처음 수술했던 아산병원에서의 정밀검사 결과는 유방암이 재발하여 척추와 갈비뼈로 암세포가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병규는 고생하는 아내에게 제일 미안하고, 세 아이에게도 미안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처형과 처제들과 작은 처남에게도 죄인이 된 느낌이다. 자신의 무능에서 비롯된 결과라서 심한 자책감에 몸을 떨었다.
되돌아보니 아내의 존재감이 그렇게 클 수가 없다. 융통성 없고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와서 평생을 힘들게 살았다. 남편의 사업을 거들면서 헐렁한 쌀 봉지 탈탈 털어 아이들과 먹고살았다. 그 가운데도 세 자녀를 반듯하게 잘 키웠다. 두 명의 시누이들을 출가시킬 때는 어지간한 친정어머니 이상으로 정성을 기울였다.
병규는 생각할수록 깊은 자책감에 시달렸다. 아내를 차에 태우고 수없이 병원으로 다니고 2년 넘도록 치다꺼리를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짐이 줄어들지 않는다. 자신도 혈당이 많이 오르면서 몇 가지의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힘들고 아파도 그걸 내색할 수는 없다. 늘 죄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3>
병규는 어머니 기일에 술잔을 올리며 말했다.
“어머니, 애들 엄마가 너무 힘드니까 내년부터는 제사를 줄이겠습니다. 아버지 기일에 같이 모실 테니 사월 스무아흐렛날 오십시오.”
병규는 절을 하면서도 아내가 얼른 털고 나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온 마음을 다 모아 빌었다.
그날 밤 꿈에 어머니를 만났다. 20여 년 전에 꿈을 꾼 이후로 어머니 꿈은 처음이다. 어머니는 제사를 합치기로 한 것에 대하여 괜찮다고 했다. 지금까지 제삿밥 잘 얻어먹었고 앞으로도 며느리 밥 더 얻어먹고 싶다고 했다. 며느리가 착하고 부지런해서 다행이라 했고 아이들도 잘 키웠다고 칭찬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누이들도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했다.
20년 전의 꿈은 옛날 살던 기와집 마당에 하얀 쌀이 가득 있었다. 사람 키의 두 배가 되도록 엄청나게 많은 쌀이 포대나 가마니도 없이 그냥 쌓여 있었다.
“병규야. 이 쌀 아무도 주지 말고 너그 식구만 먹어라.”
어머니의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4>
병규는 원자력병원에 아내를 입원시켰다. 항암 주사와 방사선까지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려면 입원하는 게 낫다고 병원에서 권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매일 통원하는 것은 환자에게 무리하니까 당연한 결정이다.
병규는 아내 곁에 있으려고 했으나 아내가 원치 않았다. 여자만 있는 2인실이라 옆의 환자가 불편할 수도 있고, 병규에게도 잠자리와 씻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게다가 병규는 혈당이 심하게 올랐으니 집에서 잡곡밥과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한다.
애들은 모두 객지에 살고 아내 없이 혼자 집에 있어 보니 허전하고 영 이상했다. 직접 청소와 빨래를 하는 것도 어색하고, 밥이나 반찬을 만드는 일은 서툴기 짝이 없었다. 혼자 어설픈 살림을 살아보니 아내 생각이 간절했다. 36년 동안 이런 살림을 다 하면서 학원을 운영하고 나중에는 식당까지 했으니 그 고생이 오죽했으랴. 시누이 둘을 시집보내고 세 자녀까지 반듯하게 키웠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규는 거실 청소를 하면서 생각을 모았다. 처음에는 사랑해서 결혼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이제는 미안해서 못 견디겠다. 자꾸 눈앞이 흐려졌다. 자신이 무능한 탓이라는 자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혼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만 어깨가 처진다.
<5>
병규는 월요일 오전에 아내 옷과 과일을 좀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갑자기 천둥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다. 조금 전까지 쨍쨍하던 하늘에서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처럼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차의 앞유리에 부딪히는
빗물이 소방차의 물대포처럼 강했다. 앞이 잘 안 보여서 시속 30Km 정도로 감속 운전을 했다. 조금 가다 보니 흰색 승용차가 화물차 뒤에 처박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빗길에 추돌사고가 일어났구나 생각하면서 갓길에 차를 댔다.
보온병에서 커피를 꺼내 마시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빗줄기가 조금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며 라디오를 켰다. 약간의 잡음을 뚫고 아나운서는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의 화재사고를 속보로 알렸다. 병규는 갑자기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아, 가스 불! …… 껐나? 안 껐나?’
요즘은 이런 일이 잦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또 다른 걱정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가만있자. 창문을 닫았던가? 비가 엄청나게 오는데…….’
창문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나올 때는 하늘이 맑았으니 비 생각을 안 했을 거야. 만일 창문이 열려있다면 엉망일 텐데……. 병규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사는 동생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는다.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로 세상에서 비를 제일 겁내던 병규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갑작스러운 폭우, 자동차 사고, 아파트 화재까지 모두가 병규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아내에게 좀 늦겠다고 전화해 놓고 다음 요금소에서 차를 돌렸다. 동네에 도착한 병규는 숨이 차도록 골목길을 뛰었다. 그런데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가스 밸브도 꼭 잠겨있다. 헛걸음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병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차 속에서도 계속 생각했다.
‘이상하다. 너무 더워서 창문을 안 닫았을 텐데 누가 닫았을까? 가스 밸브도 그래. 나는 불만 끄고 밸브를 안 잠그는 습관 때문에 아내에게 늘 잔소리를 듣는데…….’
병규는 아내에게 옷가지와 용품들을 전하고, 팔다리를 좀 주물러준 후에 병원에서 나왔다.
차에서 라디오를 켰다. 어떤 박사가 건강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암 환자의 수술 후 관리에 대한 내용이다. 쑥뜸과 생강차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 소나무가 많은 숲에서 산책하는 것, 좋은 음식을 잘 먹는 것, 자신감을 갖고 미움과 원망의 마음을 없애는 것 등인데 이미 책에서 보았거나 다른 방송에서 들었던 내용이 많았다.
<6>
집에 돌아온 병규는 입이 딱 벌어졌다. 식탁 위에 낯선 밥상보가 보였기 때문이다. 신문지 한 면 정도 크기의 분홍색 밥상보를 들춰보니 네 가지의 새로운 반찬이 있었다. 긴 호박을 얇게 썰어서 달걀 묻혀 구운 것, 더덕구이, 콩잎 김치, 무시래기 넣은 된장찌개가 있었다. 모두 병규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도대체 누가 이걸 차렸을까?
병규는 큰 동생에게 전화했다. 혹시 집에 와서 반찬 해놓았는지 물었으나 모르는 일이란다. 작은 동생은 아파서 움직이기도 어렵고, 처형은 일이 바빠서 오지 않았다고 한다. 병규는 배가 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었다. 그런데 음식이 모두 입에 잘 맞았다. 모처럼 맛있게 먹었다.
병규는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면서 처제들, 사촌 형수, 친구 부인까지 전화했지만 모두 아니란다. 또 그들은 모두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들어올 수도 없다. 비밀번호를 아는 세 아이도 역시 집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누가 말도 없이 이런 일을 했을까?
설거지에 이어 샤워할 때까지 궁금증이 그치지를 않았다.
‘대체 누가 다녀갔을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방 청소를 하면서 또 한 번 놀랐다. 다른 날은 물걸레 청소포가 새카매지는데 오늘은 깨끗하다. 마치 조금 전에 누가 청소를 한 것처럼 방바닥이 깨끗하다.
병규는 피곤했지만, 수수께끼 같은 일을 생각하느라 새벽에야 설핏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주방에서 전기밥솥의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거 밥 되는 소린데, 누가 왔지?’
병규가 주방에 가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애호박 넣은 갈치 찌개만 끓고 있었다. 식탁에는 방금 만든 것으로 보이는 콩나물 무침, 봄동 김치, 연근 조림, 구운 김, 멸치 볶음이 차려져 있었다. 이것도 모두 병규가 좋아하는 반찬들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손길에 대해서 답답하기만 했다.
병규는 외출 준비를 했다. 옷장을 열어보니 와이셔츠 석 장이 말끔하게 다려져 있었다.
‘어? 이거 누가 다렸지? 내가 그저께 그냥 처박아뒀는데……. 틀림없이 누군가 들어왔을 거야.’
이제 병규의 마음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서 충격과 무서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잠근 병규는 골목 입구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에 올랐다.
‘그래, 여기서 지켜보자. 누가 집에 들어가는지.’
병규는 그때부터 끈기 있게 기다렸다. 라디오를 듣거나 잡지를 뒤적이다가, 또 친구와 전화도 하면서 지켰지만, 아무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2시간 만에 잠복을 포기한 병규는 전에부터 가고 싶었던 절에 갔다. 법당에서 향을 올리고 절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내의 회복을 빌었다. 의사는 1년 정도 살 거라고 했지만 병규는 30년을 더 살리고 싶었다. 미국의 록펠러도 1년 남았다고 했지만 43년이나 더 살았다고 하지 않던가?
병규는 등줄기에 땀이 흐르도록 오래 절했다. 주지 스님이 차 한 잔 하자고 했으나 급한 약속을 핑계로 합장만 하고 나왔다. 집에 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병규는 마당에 들어서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난간에는 이불이 널려있고 빨래건조대에는 속옷과 양말과 수건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무시래깃국이 있고 시금치나물과 양파 볶음과 계란찜, 깻잎 김치가 있었다. 그리고 아침 먹고 싱크대에 그냥 넣어뒀던 그릇들이 깨끗하게 씻겨져 있었다. 냉장고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나중에 치우려고 미뤄두었던 휴지통도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병규는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어제저녁부터 세끼의 음식이 모두 입에 딱 맞고 맛있다. 게다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그런데 지금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변화의 결과만 알 뿐이고, 그 과정은 전혀 모르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닥의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7>
“얘, 병규야. 들어가도 되겠니?”
병규는 분명히 들었다.
‘아! 이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야. 그래,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이 된 후로는 방문 앞에서 늘 이렇게 말했지.’
그렇다. 노크는 정이 안 느껴진다며, 그것은 남의 사무실이나 화장실에서나 하는 거라고 했었다.
“어, 어머니. 어떻게 여기에?”
“왜, 엄마가 아들 방에 오면 안 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걱정하지 마. 이젠 엄마가 널 도와줄게. 애들 어미가 아파서 속 많이 상하지? 아이고, 내 아들 얼굴이 반쪽이네. 왜 이리 야위었어?”
어머니는 병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럼, 음식이랑 빨래를 어머니가 다 하셨어요? 청소도요?”
“그래. 내가 다 했어. 왜 싫어?”
“아뇨. 그게 아니라 어머닌… 49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네가 걱정되어서 잠깐 온 거야. 그렇지만 이제 가야 해. 옥황상제님께 이틀만 허락받고 왔거든.”
어머니는 병규의 어깨를 세 번 토닥여주고 방을 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가지 마세요!”
병규는 고함을 지르면서 깼다. 아, 꿈이었구나. 새벽 세 시에 깨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신 병규는 방금 그 꿈을 되짚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거의 20년 만에 꾼 어머니 꿈이다. 꿈 생각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은 소고기 장조림, 콩자반, 갓김치, 숙주나물로 차려져 있고 미역국은 데우기만 하면 되었다. 역시 입에 잘 맞아서 맛있게 먹었다.
나가려고 신발장을 열어보니 구두까지 깨끗하게 닦아져 있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는 닦으려고 생각했었다. 뭐든지 병규가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병규는 이 일을 아내는 물론이고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병규 자신도 믿기 어려운 이 일을 누가 믿겠는가?
<8>
암 병동은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2인실이지만 옆 침대의 새댁은 밖에 나갔는지 아내의 신음만 낮게 들렸다. 며칠 만에 더 야윈 모습에 마음이 시렸다. 병규는 잠든 아내의 손을 잡고 속으로 사죄했다.
‘정말 미안하오. 내가 못 나서 당신이 너무 고생했구려. 그 고생의 흔적이 이렇게 모진 병이라니… 내가 죄인이오.’
병규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어금니 악물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얘, 병규야. 그만 울어.”
“어? 이건 어머니 목소리…….”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어머니와 대화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대화도 남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 엄마야.”
“어머니, 어떻게 또 오셨어요?”
“응, 옥황상제님께 외출 허락을 더 받았어. 그건 그렇고 지금 병실에 가서 에미의 손이라도 좀 주물러 줘.”
“왜요?”
“아픈 사람은 옆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단다. 화장실에서 훌쩍거릴 시간이 어딨어?”
병규는 얼른 가서 아내의 야윈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내는 희미하게 웃었다. 아픈 웃음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팔다리의 근육이 무척 아프다고 했다. 같이 아파줄 수는 없지만 주물러줄 수는 있으니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것 같다.
아내가 집에서 요양할 때는 모든 치다꺼리를 병규가 다 했으나, 입원한 후로는 병원에 많이 맡기는 셈이다. 또 아이들이 교대로 다녀가거나 처제들이 번갈아 오기 때문에 병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온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이런 충고를 듣게 된 것이다.
마침 오후에 아들이 왔다. 그런데 침대 옆의 작은 탁자에는 방금까지 없던 커피가 한 잔 놓여 있다.
“병규야. 이제 선호가 왔으니 넌 좀 쉬어라. 커피 마셔. 너 블랙으로 마시지?”
어머니의 목소리에 병규는 빙긋이 웃으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맛이 입에 딱 맞았다.
“아빠, 커피는 어디서 났어요? 방금 없었는데…….”
“어, 이거? …… 글쎄. 부처님이 보내셨나?”
병규는 어머니와의 비밀이 재미있어서 밝은 기분이 되었다.
“병규야, 선호는 카푸치노를 마시지? 에미는 키위 주스가 좋겠고.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네.”
그 말과 동시에 카푸치노와 키위 주스가 한 잔씩 탁자에 놓여졌다. 아내와 선호는 마시지 못하고 한참 동안 쳐다만 봤다.
병규는 마음속으로 어머니와 대화를 계속했다
“어머니. 선호는 내년 봄에 대학교 졸업하는데 요즘은 취업 준비로 바빠요.”
“그래? 요즘 청년들 취업이 어렵다고들 하던데… 하지만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 원서 내라고 해. 똑똑한 녀석이니 내가 도와주마. 잘 키웠어.”
“네, 알겠어요.”
“그리고 선영이는 시집 잘 갔구나. 신랑도 그만하면 백 점이야. 아기가 없어서 속을 태우던데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삼신할미에게 부탁하면 될 거야. 그런데 선영이는 운동을 좀 많이 해야겠더라. 걔 신랑도 운동 좀 해야겠고.”
“네, 어머니. 잘 알았어요.”
병규는 휴게실로 옮겨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머니, 둘째 선미도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는데 요즘 일이 재밌대요.”
“알고 있어. 걔도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더구나. 이제 앞으로는 괜찮을 거야. 남자도 곧 생길 거고. 내가 손주 사윗감 고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아이고, 어머니. 고맙습니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 애들 에미가 새끼들 잘 키워줘서 고맙지. 나야 제삿밥만 얻어먹고 너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어머니, 그래도…….”
“오냐, 알았어. 내가 이제부터 밥값 할 테니 넌 네 일이나 잘해. 너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돼.”
병규는 산을 개발하여 아내와 산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월든 호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고 싶으며, 아내는 타샤 튜더처럼 살게 해주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다. 어머니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5년 전에 사두었던 그 산은 정남향이라서 일조량이 넉넉하고 좋아요. 다른 것과 달리 방향은 빌려올 수도 없잖아요? 그 산은 공기도 맑고 물도 좋아요. 소나무와 흙이 좋아 활용도가 상당히 높아요. 그러나 길이 없어서 무척 불편한 맹지였어요.”
“그래서 내가 작년에 군수에게 시켜서 임도를 만들어줬잖아?”
“아, 그거 어머니가…….”
“그럼 그게 저절로 됐겠어? 대통령이나 장관은 옥황상제님이 관리하지만, 시장과 군수 정도는 내가 관리하지.”
아닌 게 아니라 넓은 임도가 생기니까 산의 입지가 무척 좋아졌다. 어머니는 그 산에서 산나물과 약초를 직접 길러서 먹으라고 했다. 대신에 산에서 크게 농사지을 생각은 버리라고 했다. 이제 애들 다 키웠으니 그냥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여유 있고 건강하게 살라고 했다. 돈 욕심부리면 몸 상한다고 일렀다.
“이 어미 봐. 옛날에 살림 욕심부리다가 일찍 죽었잖아? 잘 기억해.”
병규도 아내에게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었다. 산에서 과수원이나 농사에 매달릴 생각은 없다고 했다. 산에서는 그냥 느린 호흡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낮에는 부부가 먹을 정도의 텃밭만 가꾸며 쉬는 듯이 살자고 했다. 밤에는 동화 쓰고, 글감 막히면 책 읽고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었다.
물욕을 조금 버리면 별로 어렵지 않다고 했었다. 경쟁도 스트레스도 없이 자연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했다. 야생화를 많이 심어서 아내가 꽃 속에서 살도록 해주고 싶다는 희망을 항상 말했었다.
“어머니. 애들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의사는 앞으로 1년밖에 못 산다고 해요.”
“그래. 알고 있어. 하지만 의사들 말이 다 옳은 건 아니야.”
“그렇죠? 어머니. 더 살 수 있죠?”
“의술로 1년 살리면 가족들의 정성으로 30년 살릴 수 있어. 또 에미의 마음 씀씀이도 참 좋더라. 차차 좋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산에 황토방을 만들어서 솔잎 깔고 뜨끈뜨끈하게 자면 좋아. 쑥뜸도 꼭 해야 하고, 그 산에서 키운 생강과 마늘을 많이 먹여. 산도라지와 토란, 더덕도 몸에 좋고, 돌미나리와 어성초는 피를 맑게 해 주지. 비료는 멀리하고 농약은 절대 쓰지 마.”
“네, 어머니. 그런데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한데요.”
“아, 그거? 내가 그 한의학박사에게 방송하라고 시킨 거야.”
“아하, 그러세요? 어쩐지…….”
“그리고 너는 오가피, 엄나무, 산초나무처럼 가시 많은 걸 자주 먹으면 좋아.”
“안 그래도 산에다 그런 걸 많이 심고 싶어요.”
어머니의 말씀도 그렇지만 실제로 병규 자신도 산 생활이 병원보다 훨씬 유익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아내가 병원에서 급한 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을 잡아야 하고, 그동안에 병규는 산에다 둥지를 만들 생각이다.
<9>
병규는 아내 침대 옆의 간이침대에서 자려고 했으나 아내는 자꾸 집에 가라고 우겼다. 잠자리가 불편한데 한 사람이라도 덜 아파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제 몸이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병규는 선호를 태워준다며 차에 올랐다. 그런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하네. 배터리 방전인가?”
병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조등과 실내등을 켰다. 그런데 불이 모두 들어오는 거였다.
“어, 이상하네. 배터리는 정상인데…….”
“얘야, 내가 그랬어. 지금 운전하지 말라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병규는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요? 선호 빨리 데려줘야 하는데…….”
“아니야. 10분 후에 출발해, 이유는 나중에 알게 돼.”
병규는 10분쯤 지나서 출발했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국도변 공사장에 대형 크레인이 넘어져 있었다. 크레인 밑에 깔린 승용차를 시작으로 버스, 화물차 등이 일곱 대나 연쇄 추돌을 했다. 구급차와 경찰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바쁘게 오가는 중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네가 출발했으면 저 승용차처럼 됐을 거야.”
“어머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얘야, 아직도 모르겠니? 엄마 눈에는 곧 다가올 미래가 보인단다.”
“아, 네.… 그렇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스마트폰으로 친구와 통화하는 선호를 데려다주고 병규는 집으로 왔다. 배가 고팠다.
“얘야, 얼른 씻어라. 엄마가 짜장 라면 끓여줄게.”
“짜장 라면이라고요?”
“그래, 너 어릴 적부터 짜장면 좋아했잖아?”
그랬다. 중학교 입시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병규에게 어머니는 짜장면을 사줬었다. 난생처음 먹는 짜장면이 너무나 맛있어서 병규는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우리 엄마,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 이런 걸 사주시다니.’
병규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다 씻고 나오니 식탁에 짜장 라면과 물김치가 있었다.
“어머니, 고마워요.”
“고맙긴.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제삿밥 차려준 너희가 고맙지.”
“근데 어머닌 안 드세요?”
“오냐. 나는 며느리가 차려주는 제삿밥만 하면 충분해.”
서른다섯의 어머니는 환갑 지난 아들을 보면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끝- 원고지 78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