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황혼 연애

by 구민성

단편-- 황혼 연애

<1>

토요일 오후의 일이다.

“어머니, 주용준이라는 사람이 누구예요?”

현관에 들어서던 성순조는 명하의 느닷없는 물음에 뜨끔했다.

“아, 아니.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어머니 폰으로 여섯 번이나 전화가 왔었어요.”

순간 성순조는 아차 싶었다. 집 근처 마트에 갈 땐 종종 전화기를 두고 가는 버릇이 있다. 식탁이든 문갑이든 별로 주의하지 않는 것은 혼자 살면서 생긴 버릇 중의 하나다. 전화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카톡 내용이다. 남녀가 나누는 솔직한 사랑의 대화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명하 너, 혹시… 카톡도 봤니?”

“에이, 어머니. 저 그렇게 몰상식한 아들 아닌데요.”

성순조는 명하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명하는 직장에서 휴가 받아 어제저녁에 집에 왔다. 늦잠 자고 일어나 보니 마트에 다녀오겠다는 어머니의 메모가 식탁에 있었던 것이다.

명하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냉장고 위에서 어머니의 스마트폰 진동음이 들렸다. 명하는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성순조 여사님 폰입……”

“…….”

상대방은 이쪽의 목소리를 듣고 끊어버렸다. 가만 보니 여섯 번이나 부재중 전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잠깐 샤워하는 동안에 연속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이렇게 계속 전화를 했다면 아주 급하거나 중요한 용무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명하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바로 알려드리는 것이다.

성순조는 삼계탕 재료와 반찬거리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명하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폈다.

“어머니, 커피 드세요. 연하게 탔어요.”

명하는 제 형과는 달리 잔정 표현이 많고 곰살맞은 편이다. 특히 무슨 부탁이 있거나 주제를 갖고 말을 걸어올 때는 마실 거리를 항상 준비한다. 성순조는 아들의 습성을 알기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어머니, 주용준 씨가 누구예요?”

“어, 으응. 그냥 좀… 아는 사람인데…….”

“그냥 좀 아는 사람이 10분 동안에 여섯 번이나 전화해요?”

“아니, 근데 얘가… 왜 남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파고드느냐, 그 말씀이죠?”

명하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서 눈은 어머니를 살폈다. 이것도 그의 버릇이다.

“그래. 왜 그런 걸 파고들어?”

“궁금하니까요. 아들로서 걱정도 되고 또…….”

“알았어. … 그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야. … 그냥 동창생이야.”

그러나 차분한 말과는 달리 가슴이 저릿했다. 처음 데이트 신청받던 날의 떨림은 얼마나 컸던가. 산에서 마신 와인 한 모금, 나뭇잎 마술 이벤트와 달콤한 입맞춤, 가슴을 울리던 쿵쾅거림이 떠올랐다.

명하는 어머니의 손을 슬그머니 잡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머니는 거짓말하시면 금방 표가 나요. 제가 30년 이상 관찰한 결론이거든요.”

“거짓말이 아니고…….”

“어머니. 저에게는 다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저 벌써 서른두 살이잖아요?”

명하는 어쩐지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성순조는 입이 말랐다.

“글쎄, 그 … 뭐, 자꾸 전화를 하네. 그 사람이…….”

“어머니는 싫다고 하시는데 그 사람이 자꾸 전화를 해요?”

“아니, 그 … 뭐, 그렇다기보다는 …….”

“됐어요. 제가 좀 생각해 보겠어요.”

모자간의 어색한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나고, 명하는 이튿날 저녁에 서울로 올라갔다.

<2>

성순조는 주용준에게 전화했다. 밤마다 카톡과 통화를 계속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았다. 그만큼 말이 잘 통하고 즐거웠다.

이틀 후 두 사람은 순천만 정원에 꽃구경을 갔다.

무르익은 봄이라 예쁜 꽃들이 만발했다. 한참 즐겁게 구경하던 두 사람은 놀부식당에 들어갔다. 평일이면서 점심이 조금 지나서인지 식당 안은 비교적 조용했다.

꼬막정식을 시켜서 맛있게 먹던 주용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성순조가 물었다.

“왜? 뭐 나쁜 거 씹었어?”

“아, 아니. 그냥……. 신경 쓰지 마.”

주용준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순조의 어깨 뒤로 보이는 남자에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건너편 먼 테이블에 앉아 이쪽으로 보는 남자는 욕쟁이 오윤근이다. 짙은 선글라스와 초록색 모자를 썼지만 풍겨오는 분위기는 그가 틀림없다. 잠시 후에 그는 주용준을 바라보면서 여체의 곡선미를 상징하는 콜라병 모양을 양손으로 그려 보였다. 빠른 속도로 그린 다음에 혀를 날름 내기도 했다. 예순 넘은 초로의 사내가 저렇게 천박한 행동을 하다니, 하지만 주용준은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오윤근은 60년 지기 배꼽 친구로서 무척 별난 사람이다. 우선 그는 입이 걸다. 한 문장에 욕설이 한 번 이상씩은 꼭 들어간다. 그에게 시옷은 양념이고 지읒은 액세서리다. 국민학교 때부터 그랬다. 말이 거칠고 몸동작이 큰 것은 남들이 얕잡아 볼까 싶어서 강한 척하는 무기였다. 그런 보호색 같은 버릇은 환갑 진갑이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는다. 아니, 고칠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다. 자기 입을 ‘걸레’라고 스스로 말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양기가 입에만 남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항상 오른쪽 주먹이나 손목에 붕대를 감고 다녔다. 왼쪽 어깨를 위로 추켜올리고 껌을 소리 내어 딱딱 씹었다. 모자는 삐딱하게 쓰고 앞니와 송곳니 사이로 침을 찍찍 뱉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그가 남과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였다. 또 더 신기한 것은, 아무도 그를 겁내지 않는 거였다.

나팔바지로 길거리를 쓸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복의 맨 위쪽 단추 하나를 채우지 않고 다녔다. 특히나 3년 동안 한 번도 교련 선생에게 안 걸린 것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위대한 업적’이다. 그는 눈치와 손놀림이 귀신처럼 빨랐다.

그렇게 껄렁한 그를 주용준이 싫어할 수 없는 것은 이유가 있다. 불량스러운 그의 오버액션은 일종의 자위 수단이었고, 실제로는 여리고 속정이 많은 친구였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남 먼저 돕는다.

욕을 해서 그렇지 규칙도 잘 지키는 편이다. 두어 달 전에는 머리가 허연 그가 역 대기실 앞에 웅크리고 앉아 구두칼로 껌딱지를 떼고 있었다.

“어, 자네 윤근이 아닌가? 거기서 뭐 해?”

주용준이 놀란 눈빛으로 말을 거니까 그는 독설을 쏟아냈다.

“아니, 어떤 놈들이 껌딱지를 버려서 말이야. 이거 버린 놈들 잡아서 조져야 돼. 껌딱지 같은 놈들!”

“몰래 껌 버린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잡아?”

“아니, 지기미. CCTV 있잖아! 그거 보면 다 나와. 마음만 먹으면 전국적으로 다 잡을 수 있다구.”

“잡아서 콩밥 먹여?”

“콩밥도 멕이고, 벌금도 왕창 때리고, 제 손으로 껌딱지 뜯어서 5분 동안 씹도록 하면 싹 고쳐져. 국회의원들이 그런 법도 안 만들고 뭐 해? 등신 새끼들!”

좋은 일을 하면서도 험한 말을 해대는 그는 확실히 괴짜다.

<3>

순천만에서 돌아온 오윤근이 이튿날 주용준에게 좀 보자고 했다. 두 사람은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시켰다.

“어이, 주 선생. 어제 순천에서 그림 좋던데? 그 여잔 누구야?”

“으, 응. 그냥 조금 아는 사람…….”

“그렇지. 아는 사람이겠지. 그럼 모르는 년이랑 밥 처먹는 놈이 어디 있겠어?"

“야, 너 말 좀 가려서 해.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그래?”

주용준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오윤근은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마저도 장난처럼 보였다.

“그래. 상처한 지 일 년도 안 된 남자를 유혹하는 년은…… 여인은 누구지?”

“…….”

“주 선생. 별세한 자네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어?”

오윤근이 딴에는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주용준도 그런 오윤근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우리 집사람… 지금 집에 없어… 1년 전부터."

잠깐 대화는 끊어졌다. 짜장면 먹기에만 집중하던 오윤근이 뚜벅 물었다.

"그 여자와는 어떤 관계야? 순천까지 여행을 갔다면 단순히 아는 사이는 아닐 텐데?"

"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주용준은 송판에 못 박듯이 명료하게 대답했다.

“이야. 주 선생 대단하네.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왜? 배우자 있는 사람들도 바람피우는데, 싱글끼리는 사랑하면 안 되나?”

“싱글끼리? 여자가 독신주의? 아니면 이혼녀?”

“사별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서로…….”

"좋아. 그럼 자네 아이들은… 그 여자 알고 있어?"

오윤근은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지금 애들 허락받고 연애해야 하나?"

"아니, 허락이라기보다… 그 뭐냐……. 말이 안 떠올라, 지기미!"

"그럼, 애들에게 보고라도 하고 여자 만날까?"

주용준이 예상외로 퉁명스럽게 말하자 오윤근은 식탁 위의 파리를 잡느라고 두 손바닥을 잽싸게 마주쳤다. 말문은 막혔지만 파리는 잡았다. 역시 오윤근은 순발력이 빠르다. 물티슈로 손바닥을 닦으면서 오윤근이 말을 바꿨다.

"어, 그 뭐냐. 안 그래도 자네 외로울까 싶어 내가 괜찮은 여자 친구라도 하나 소개해줄까 했는데……."

"노 땡큐. 내 친구는 내가 만들 수 있어."

주용준이 무 자르듯이 말했다.

"그럼 나중에라도 여자가 필요하면 말해. 자네라면 짜장면 안 사줘도 특별히……."

오윤근은 중간에 말을 멈추면서 주용준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됐어. 어제 그 사람이… 내 마지막 여자야."

"어메, 그 정도야? 끝까지 간다는 거야? 심각한 사랑병이네."

오윤근이 어깨를 들썩 올리면서 두 손바닥은 위로 향했지만 좀 어색했다.

"그래. 난 지금 사랑병에 걸렸어. 진짜 사랑하거든."

"어이, 그러지 말고 대충 즐기다가 싫증 나면 바꿔. 세상에 여자는 많아. 절반이 여자잖아?"

오윤근이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빈정거렸다.

"이봐, 윤근이. … 내가 자네 같은 줄 알았어?"

"뭐, 내가 어쨌다고 그래?"

"아무 여자나 기웃거리고 심심하면 갈아치우잖아? 난, 그런 짓 못 해. 진실한 사랑이 아니면……."

"그래, 너 잘났어. 진실한 사랑 실컷 해봐. 젠장! 난 말이야 여자란 소모품이라고 생각해."

"소모품 아니야.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격체야."

"어이, 도덕군자님. 넌 진실하게 사랑하지만 난 화끈하게 즐기는 거야. 그게 우리 차이야, 씨팔!"

주용준은 오윤근의 입에 쌍말이 걸리면 대화가 싫어진다.

"이제 이런 이야기 그만하자."

"그래. 짜장면 얻어먹었으니 소문은 안 낼게. 자네 아이들에게도 비밀로 해주지. 됐어?"

"……."

중식당에서 나온 그들은 길 건너편의 커피점으로 옮겼다. 아메리카노 커피가 짜장면 값과 비슷하다면서 툴툴대던 오윤근이 말머리를 돌렸다.

"근데 하나만 물어보자. 그 여자랑 진짜 언제까지 갈 거야?”

"열심히 연애 중인 사람에게 끝을 왜 물어?"

"네가 말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거, 그 종말이 어떨지 궁금해서 말이야."

주용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말했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기 전까지야."

"왜? 그 여자 바람끼 많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보다 더 좋은 사람 생기면 내가 비켜주는 게 좋지."

"아이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사랑하면서 왜 비켜? 자네가 말하는 진실한 사랑은 원래 그런가?”

"나는… 그녀에게 2분의 1이 되기는 싫어. 삼각관계는 절대 안 돼. 올 오어 낫싱이야."

"올 오어 낫싱? 그러니까… 전부 혹은 제로라는 뜻이야?"

오윤근은 모처럼 아는 영어가 나와서 약간 상기되었다.

"맞아. 온리 원! 1이 아니면 차라리 0을 택할 거야."

"이야, 주 선생. 생각보다 깔끔하구먼."

"그게 깔끔인지는 몰라도 내 솔직한 마음이야.”

“아니, 나는 애인이 둘이라도 괜찮던데. 마누라까지 셋이라서 좀 바쁘긴 하지만.”

“자네 부인은 자신이 셋 중에 하나란 걸 알아?”

“당연히 모르겠지. 모르게 하는 게 기술이잖아.”

오윤근이 의자를 뒤로 젖히면서 대답했다.

“난, 아니야. 내가 먹는 밥그릇에 남의 숟가락 들어오면 싫다구.”

주용준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오윤근은 느물 느물 웃었다.

<4>

명하가 돌아가고 2주 후에 큰아들 종하가 집에 왔다.

“어머니,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다니, 뭘?"

“명하한테 들었는데요, 그 남자분…….”

“잠깐, 종하야. 엄마가 남자 친구 만나는 거 그렇게도 싫어?”

“그분은 그냥 친구가 아니잖아요?”

“그래, 맞아. 그냥 친구가 아니고 사랑하는 연인이야. 그게 왜?”

성순조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종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전 사실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어요.”

“맞아. 나도 상상하지 못한 만남이었어.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엄마는 평생 네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았어. 헤어지는 날까지 남편에게만 집중했어.”

“그러면 왜…….”

“그런데 지금 네 아버지는 하늘로 가셨잖아? 엄마는 슬프고 외롭고 힘들었어. 내색은 안 했지만 겨울철 빈 들판처럼 황량한 나날이었어. 그러던 중에 그 사람을 만난 거야.”

“언제부터 아셨어요?”

“물론 학교 동창이라서 50년 가까이 되었지만, 따로 이야기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러니까 언제부터, 어떻게… 사랑하게 되셨어요?”

말 떨어지자 질문이 재빨리 들어오는 것을 보니 유능한 수사관처럼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다.

성순조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남편이 떠난 후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식사와 수면은 엉망으로 뒤틀렸고 실어증 환자처럼 말이 없어졌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정도로 침울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시든 콩나물처럼 흐느적거릴 때, 동창생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우연히 주용준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의 글은 매력적이었다. 간결하고 쉬우면서도 주제가 분명했다. 독특한 반전으로 울림이 컸다.

성순조는 차츰 그의 글에 끌려서 1:1 카톡을 시작했다. 댓글은 대부분 밝고 재미있게 달아주었다. 주용준의 짧은 시에 예쁜 그림도 입혀주었다. 그렇게 시와 그림이 몇 차례 오가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신뢰의 싹이 텄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남편이 하늘로 떠나고 두 아들도 서울로 갔다. 남자들 셋이 시끌시끌하던 활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여자 혼자 댕그라니 남으니 황량하기만 했다. 퇴근해도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소름 돋게 싫었고 침묵의 시간이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 적막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준 것이 스마트폰이었다. 마음 통하는 몇몇 친구들의 안부 전화가 고마웠고, 특히 주용준의 글은 읽을수록 좋았다.

<5>

그해 여름, 주용준의 아내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녀는 10년 가까이 암 투병을 해서 무척 지쳤지만, 큰 고통은 없이 비교적 편안하게 하늘 문을 열었다.

성순조가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본 주용준은 방금 쓰러질 사람처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며칠 후, 성순조는 카톡을 보냈다.

-내 코도 석 잔데 니가 더 걱정이다.-

주용준은 이 쉽고 짧은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큰 위안을 얻었다.

배우자를 먼저 사별한 성순조는 주용준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연민과 위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서로를 찾고 기다리는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서 차 마시고 식사도 했다.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카톡으로 시와 그림과 사진이 오가면서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이 오히려 기다려졌다. 스마트폰은 소통의 수단으로 최고였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요? 어머니의 러브 스토리가 감동적이네요.”

종하가 나무토막 던지듯이 불쑥 말했다.

“…….”

“그것이 아버지를 배신해도 되는 명분인가요?”

종하는 약간 빈정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배신…이라고? 얘, 종하야. 너 말이 조금…….”

“지나치지 않느냐, 그 말씀이시죠? 제가 보기엔 어머니의 사랑이 조금 지나친 거 같아요.”

“…….”

종하의 빠른 말에 성순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거죠? 결혼하실 건가요?”

“결혼이라니? 무슨 그런 말을……. 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

“안 하신다고요?”

“그래, 안 해. 다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사랑만 할 거야.”

“어떻게요?”

종하가 뚱한 눈빛으로 물었다.

“뭐… 서로 생각하고, 전화하고, 시와 그림을 나누고…….”

“그 정도예요?”

“가끔 등산을 하고… 식사하고, 그러는 거지, 뭐.”

“그래서야 어디 행복하겠어요?”

“물론이지. 행복은 함께 사는 것보다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하는 시간에서도 찾을 수 있어.”

“그래도 결혼해야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죠.”

“아니야. 결혼해도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건 그렇지만…….”

“또 나에게 너희 형제가 있듯이 그 사람에게도 자녀들이 있어. 괜히 재혼해서 이복형제니 재산 문제 따위로 복잡해지는 건 싫어. 그런 건 황혼 연인들에게 성가신 걸림돌이야.”

종하는 모처럼 동의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머닌 그분과 언제까지 사랑하실 건가요?”

“끝은 생각하지 않아. 다만 한 가지 경우에는… 내가 끝낼 거야.”

“한 가지 경우라면…….”

“그건… 네 아버지가 되살아오면 내가 그를 떠날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이세요?”

“궤변 같지만… 내 진심이야.”

<6>

할매메기탕집은 저녁인데도 조용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어디가 그렇게도 좋아?”

“…….”

오윤근의 뜬금없는 질문에 주용준은 즉답을 피했다.

“돈이 많아? 잠자리 매너가 좋아? … 뭐, 예쁘기는 하더라만…….”

“그런 거 아니야. 난 너랑 달라.”

“또 나와 다르다네, 떠그랄! … 사람을 어찌 보고…….”

“아, 미안해, 오해하지 말고…….”

“좋아, 내가 이해할 테니 대신 그 여자를 간단히 소개해봐.”

“음… 뭐랄까? 따로 있으면 보고 싶고, 함께 있으면 가슴 덥고, 보내면 이내 그립더라… 뭐 그 정도로 할까?”

“아이고, 시를 쓰시네! 그럼, 함께 여행하면 어떻고? 막 뜨거워져?”

주용준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단호히 말했다.

“마음 맞는 상대와 여행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 배우자 있는 너희들도 몰래 다니는데, 우린 거짓말할 배우자도 없잖아?”

“흥! 골키퍼 없어서 좋겠네, 젠장!”

그때였다. 오윤근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는 사람은 이봉규였다. 그는 시청 총무과장으로 정년퇴직한 이후로 여기저기 남 간섭이나 하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다. 말로는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겨워서 주리를 틀며 지낸다.

“이야, 오 사장 오랜만인데. …어, 이쪽은 주… 용준이지? 야, 이거 얼마 만인가?”

이봉규는 계 모임을 마치고 나가다가 구석 쪽에 앉은 두 사람을 본 것이다. 그는 다른 일행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아예 여기에 합석을 했다. 술잔을 나눌 수만 있다면 원수라도 마주 앉을 사람이다. 그의 별명은 ‘개뿔’이다. 걸핏하면 ‘개뿔’을 말의 앞이나 뒤에 걸친다. 습관이 굳어져서인지 심지어 시장실에 결재받으러 가서도 그랬다.

“총무과장님, 금년의 재난 대비 상황은 어떻습니까?”

학교 선배이기도 한 시장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개뿔이나 예산이 있어야 일을 하지요.”

하여간 그런 막무가내가 합석했으니 자리는 이내 어수선해졌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어?”

“응, 용준이 이 친구… 사랑 이야기야.”

이봉규가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오윤근이 대책 없이 실토해 버렸다.

“개에뿔! 사랑은 무슨……. 이 나이에.”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품위도 없고 체면도 없었다. 화제의 중심인 주용준은 약간 졸았고, 두 술꾼은 죽이 맞아서 떠들어댔다.

소주 석 잔에 취기가 오른 주용준은 잠도 깨울 겸 화장실에 갔다. 고양이 세수를 할 때 카톡 음이 울렸다. 성순조였다.

-뭐 해?-

-응. 친구들이랑 술집에 있어.-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이 무슨 술집이야?-

바로 그 순간, 언제 왔는지 이봉규가 휴대폰을 홱 낚아챘다. 그리고 카톡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돋보기가 없어서 그런지 멀리 떼고 떠듬떠듬 읽었다.

“야! 이리 내.”

“가만 좀 있어 봐. 조금만 읽어보게.”

마침내 두 남자는 씨름처럼 엉켰다. 밀고 당기고 하다가 주용준이 이봉규의 가슴을 떠밀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술에 취한 이봉규는 비틀거리다가 뒤로 넘어졌다. 세면대에 뒷머리를 부딪쳐서 말 한마디도 못하고 쓰러졌다. 몸을 약간 뒤틀더니 축 늘어졌다. 이번에는 개뿔 소리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주용준은 휴대폰만 주워 들고 뒷문으로 나왔다. 주차장까지 뛰어가면서는 다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차를 몰고 가면서 온몸에 땀이 팥죽처럼 흘렀다. 죽었을까? 무서움과 막막함이 엄습했다. 눈물과 땀 때문에 운전도 어려웠다.

인적이 드문 강변에 차를 댔다. 잠깐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경찰차가 메기탕집 방향으로 급히 달려갔다. 주용준은 입이 바싹 말랐다.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에는 오윤근의 이름이 떴다. 받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성순조의 카톡이 왔다.

-어디야? 오늘 영화 보러 갈래?-

-지금은 안 돼.-

-왜? 바빠?-

-일이 좀 생겼어.-

-무슨 일? 비밀이야?-

주용준은 카톡이 답답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순조 씨, 나 지금 일이 좀 생겼어.”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야?”

“응… 저……. 안 되겠어. 잠깐 만나.”

<7>

성순조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택시로 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머나! 이 땀 좀 봐.”

놀라는 성순조에게 주용준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덜덜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다 들은 성순조는 의외로 침착했다. 살인 사건이라고 예단했지만 크게 흔들리는 눈치는 아니었다.

“용준 씨, 마음 크게 먹고 자수해.”

“자수하라고? … 안 돼! …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가면…….”

“외국에 여행이라면 몰라도, 도망 다니면 매일매일 피가 마를 거야.”

“그래도 자수하면…….”

“그래, 자수하면 벌이 좀 적을 거야.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고 우발적인 사고니까, 과실치사가 될 거야. 더구나 용준 씨는 초범인 데다 성실하게 살았으니 정상 참작이 될 거야.”

“내가 감옥에 가면… 날 떠날 거지?”

주용준은 힘없이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배신과 이별의 아픔을 몇 번이나 겪었고, 지금까지도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무슨 소리야? 떠나긴 누가 떠난다고 그래?”

“아니야. 떠날 거야. 그리고… 그리고 떠나도 괜찮아. 감옥살이하는 놈 기다릴 필요 없어.”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나는 떠나더라도… 니가 출감하면 허락받고 떠날 거야. 알아?”

성순조는 주용준의 떨리는 어깨를 쓸어주었다.

“… 아니, 나 없을 때… 떠나도록 해. 나는 이제 희망도 없잖아.”

“아니야. 희망은 있어. 한시라도 빨리 자수하면 희망이 있어!”

확신에 찬 성순조의 눈이 빛났다. ‘내 확신으로 이 남자에게 희망을 만들어줄 수 있다’ 하는 눈빛 같았다.

그때 주용준의 휴대폰에서 카톡 음이 울렸다. 오윤근이 보낸 것이다.

-용준아. 봉규 지금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빨리 연락해라.-

아! 주용준의 입에서는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봉규… 봉규가 안 죽었어. 치료받는 중이래. 아, 하나님…….”

“정말 천만다행이야. 지금 당장 자수해. 우선 전화로!”

주용준은 전화로 먼저 자수하고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8>

성순조는 남편의 후배였던 신경호 변호사의 도움으로 피해자 측과 합의했다. 법적 문제와 도의적 문제를 다 처리하느라고 피곤했지만 옥중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견뎠다.

면회 가는 날 아침에 머리 손질을 할 때였다. 낯선 사람의 전화가 왔다. 아파트 앞 커피점에서 만난 건장한 젊은이는 주용준의 아들 주영우였다. 그는 성순조에게 꾸벅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버지에게 다 들었으며,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 외람되지만… 아버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진 정말 선량하시고…….”

“됐어요, 아드님. 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리고 어른들 문제는 어른들이 알아서 하니까 걱정 말아요.”

“합의금과 경비도 많이…….”

“그것도 어른들이 알아서 해요. 누나들이랑 면회나 자주 가세요.”

주영우는 성순조의 단아한 이마와 부드러운 미소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런 분이라서 우리 아버지가 푹 빠졌구나. 그 깐깐한 양반이.’

주영우는 어제 만났던 오윤근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무리 효자 효녀라도 자식들이 못 하는 효도가 있지.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죄의식 느끼지 말고 아버지의 황혼 연애를 덮어주게.”

천하의 걸레라도 친구 아들에게는 쌍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잘 알겠습니다. 저는 같은 남자로서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합니다. 그분은 엄마가 하늘에서 보내주신 아버지 친구일 것입니다.”

주영우는 그렇게 말해놓고 뿌듯했다. 남쪽 하늘의 하얀 달이 엄마처럼 웃고 있었다.

주용준의 사건은 비교적 수월하게 종결되었다. 초범인 데다가 성실한 생활인이었고, 피해자가 합의도 잘해주었고 게다가 자수까지 했으니 신 변호사가 쉽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정의 벌금형과 집행 유예를 받고 마무리되었다.

주용준은 나오자마자 오윤근과 함께 병원부터 찾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이봉규를 보자 콧등이 시쿰해졌다.

“이 과장, 정말 미안하네.”

“개에뿔! 미안하기는……. 아, 살았으니 다행이지 뭐. 솔직한 말로 내가 죽었으면 난 귀신이 되어 널 죽였을 거야.”

이봉규는 하얀 붕대 아래서도 밝아 보였다. 침대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던 오윤근이 나섰다.

“원, 이 상황에도 농담이 나오나? 이 개뿔 친구야!”

세 친구는 한바탕 웃다가 휴게실로 옮겨서 수다판을 이었다.

“어이, 개뿔. 자네 혈색 좋아졌구만. 병원 체질인가?”

“정말 그렇네. 환자 얼굴 아닌 거 같네.”

오윤근의 말에 주용준도 거들었다.

“야, 이제 개뿔 그만하고 소뿔로 올리자. 근데 홍안 비결이 뭐야?”

오윤근이 이봉규의 환자복 옷깃을 바로 잡아주며 물었다.

“개뿔! 비결은 무슨…… 아, 본래 내가 한 인물 하잖아.”

“이런 떠그랄! 그게 아니고, 술 담배를 안 하니까 좋을 거야.”

“그렇지. 게다가 먹고 자는 시간이 규칙적이고 영양제 링거를 매일 맞는 것도 좋을 테고.”

말을 마친 주용준이 손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저, 이 과장.…… 이거 얼마 아니지만 과일 값이나 좀 보태도록 하게.”

“개뿔! 과일 값이 뭐야. 이미 합의금 위로금 다 받았잖아.”

“그래도 내가 너무 미안해서…….”

“아, 됐네. 과일이든 간식이든, 감방보다 병원이 훨 나으니까 걱정 끊어.”

“이 과장, 정말 미안하네. 난 도망이나 치고…….”

“글쎄 괜찮대두. 또 돈은… 막말로 내가 자네보다 부자잖아. 재산세도 많고…….”

주용준은 갑자기 먹먹해졌다. 자주 만나지 못한 옛 친구인데도 속이 깊다. 이래서 사람들이 ‘새 친구 사귄다고 옛 친구 잊지 말라’ 하는 모양이다.

“이런 떠그랄! 낙장불입도 몰라? 그 돈 이리 줘. 내가 보관했다가 우리 개뿔이 퇴원하면 축하주 먹게.”

세 남자가 낙장불입에 동의하며 빵 터졌을 때 카톡이 왔다. 성순조였다.

-용준 씨⁓ 국립대학 졸업 축하해. 저녁 사줄게 나올래?-

-고맙지만 봉규 병원이야. 저녁은 내일 먹자.-

주용준은 엷게 웃으며 이봉규에게 폰을 건네주었다.

“카톡 볼래?”

“개에뿔, 내가 미쳤어?”

이봉규가 손사래를 크게 치자 오윤근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들은 일흔 가까운 소년들이다.

----끝. 원고지 8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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