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홧김에 서방질
평일 오전에는 목욕탕이 비교적 조용하다. 애들은 학교 가고 젊은이들은 일하는 시간이라서 대여섯 명의 남자들은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이다. 대추색 모자를 쓰고 며칠 전부터 두어 번 보이던 남자는 이 근동의 사람이 아니었다. 탈의실에 들어온 박병수가 팬티를 벗더니 탈탈 털었다. 그는 이 목욕탕 지을 때부터 20년 넘게 다니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이보시오. 대중탕에서 속옷을 털면 어쩝니까?”
정준호는 모자를 벗으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지청구를 놓았다. 그는 몸이 탄탄하고 외양이 깔끔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남에게 간섭을 잘하지 않지만 경우에 어긋나는 사람에게는 참지 않는 열혈남이다.
“아따 방금 갈아입은 새 옷인데 먼지 없수다“
박병수는 사과라기보다는 왜 시비 거는가 하는 투였다.
”그럼 먼지도 없는데 왜 털어요? “
정준호는 몸만큼이나 탄탄한 저음으로 닦달했다.
“그, 뭐… 턴다기보단… 그냥 펴서 넣으려고…….”
“새 옷이라면서 뭘 펴요?”
꾸물거리는 박병수의 말을 정준호가 쾌도난마식으로 잘라버렸다.
“아니, 근데 아침부터 웬 시비요. 시비가……. ”
수세에 몰리던 박병수가 눈에 제법 힘을 넣으면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안 때리면 맞는다’ 홍수환 선수의 명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뭐요? 웬 시비냐고?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정준호도 물러서지 않는다. 누구나 나이 들면 나잇값 정도의 고집이 있는 법이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이어지니 선풍기 앞에서 몸을 말리던 이장이 좋은 말로 말리고 나섰다.
“아따 고만들 하시지오. 서로 조금씩 참으면 될 일인데 뭘 그렇게 별나게들 다퉈요”
하지만 그만 두면 대충 끝낼 실랑이라도 누가 말리면 다시 시작되기 십상이다. 마치 덜 꺼진 잔불이 바람을 조금 받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과 비슷하다. 더구나 박병수는 터줏대감의 가오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아니, 이장 형님 가만있어 보십시오. 지금 이 양반이 내게 시비를 걸잖아요.”
“이 양반? 당신 몇 살인데 내게 이 양반 저 양반 하는 거요.”
“올해 환갑인데 왜요?”
“나보다 여섯 살 적네, 그래 환갑이 되어도 그렇게 사리를 몰라요?”
박병수는 약간 멈칫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보다 체격이 좋거나 연장자에겐 꼬리를 슬쩍 내리기 쉽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체격 좋은 연장자인 것이다. 더구나 박병수는 잘한 게 전혀 없지 않은가. 말마따나 사리분별이 옳지 않은 행동이었음을 자기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팬티를 털었다면 박병수도 뭐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열이 약간 식었을 때 이장이 다시 끼어들어서 화해를 시켰다. 서로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도 했다. 욱하는 성깔은 있지만 뒤끝이 없는 박병수가 쿨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함께 탕에 들어가서 목욕을 했다. 약간 어색했지만 박병수가 먼저 정준호의 등을 밀고 다음에는 바꾸어 밀었다.
배가 임산부 같은 박병수는 정준호의 역삼각형 몸이 부러웠다. 박병수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지만 정준호는 거의 중독 수준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함께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박병수는 이것도 인연이니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잔하자고 했다. 그들은 목욕탕 옆의 데시데로 커피점에 들어갔다. 문 옆에는 조그만 액자에 데시데로라는 말의 설명이 있었다. 그것은 이탈리아어로 최고 최상을 뜻한다고 했다.
박병수는 역시 비 오는 날에는 커피가 땡긴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자리에 어떤 필연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아침부터 한판 다투고 발가벗고 같이 목욕하고, 또 커피까지 함께 마시니 보통 인연이 아니지요?”
“허허, 그런가요”
“그럼요. 기왕지사 만났으니 좋은 인연이 되면 좋겠습니다.”
“네 나도 쫌 외로우니까요.”
“외롭다니요 혼자 사십니까?”
“혼자이긴 한데…….”
“아이구 어쩌다가 벌써…….”
말을 멈춘 박병수가 고개를 서너 번 주억거리더니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외로운 분에겐 이런 동생 하나 있으면 괜찮을 겁니다.”
“글쎄요…….”
정준호는 박병수의 제안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과거에 형님 아우 하자면서 접근한 최창기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준호의 미지근한 반응에 박병수가 농을 걸었다.
“글쎄 보다 비싼 게 취득세인 거 아십니까?”
박병수는 쎄와 세의 차이 정도는 무시하고 수월하게 말했다.
“허허 그건 처음 듣는데 재미있는 말이군요.”
박병수는 낯선 사람과도 잘 사귀는 남다른 장점이 있다. 그는 특유의 유머 감각과 걸쭉한 입심으로 좌중을 리드하는 사람이다.
“양도세는 부동산을 팔 때 돈을 받으면서 내는 세금이니 덜 아깝지요 그런데 취득세는 부동산을 살 때 대금도 지불하고 세금까지 내니까 아까운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이 부동산 매매할 때 세금이란…….”
“잠깐, 박형. 혹시 부동산 하십니까?” 네, 이 동네에서만 한 20년 넘게 했지요. 지금도 하고는 있는데 경기가 너무 나빠서 힘들어요.”
“아, 그래요?”
정준호는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아니 박병수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금 생각났던 최창기라는 인간도 부동산 사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세 살 아래인 최창기도 두 번째 만나던 날에 의형제 운운하면서 친한 척하다가 배신 때린 놈이었다.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녀석이었다. 눈치 빠른 박병수가 정준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서 그래요.”
“그럼 말씀하신 김에 그 옛날이야기도 조금 들려주십시오.”
박병수가 빌려준 물건 돌려달라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정준호는 한발 뒤로 뺐다. 그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깊은 이야기를 다해줄 만큼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긴 이야기를 콧노래 부르듯이 쉽게 할 수야 없지요. 더구나 오늘은 점심 선약이 있으니 시간도 안 되겠네요.”
정준호는 있지도 않은 점심 약속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아이고 형님! 점심은 제가 대접하고 싶은데요. 형님 생긴 기념으로 말입니다.”
방금 선약 있다는 말을 듣고 대접하겠다는 사람은 립서비스가 대부분이다. 정준호는 말만 들어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커피점을 나왔다. 커피를 얻어먹어도 기분은 데시데로가 아니었다.
이틀 후에 박병수는 한길부동산 사무소에서 정준호에게 전화로 저녁 약속을 잡았다. 막창구이가 전문인 단골식당에서 그들은 밥과 술을 먹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들의 이야기는 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형님! 고향은 어딥니까?”
“나는 본래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지만 중학교부터는 50년을 서울에서만 살았지요. 그러니까 서울이 고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형님, 이제 말씀 낮추십시오.”
“아닙니다. 너무 편하게 말하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네. 그럼 차차 편하게 하시구요. 근데 형님, 고향도 아닌데 여기에 오신 사연이 궁금하군요. 혹시 청도에 아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오. 일부러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왔어요. 돈만 있으면 캐나다에 가서 살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고 해서…….”
“그렇지요. 돈이 왠수지요. 실례지만 노후 대책은 좀 안 하셨습니까?” “그 뭐… 연금 몇 푼 받고 애들에게 용돈 조금씩 얻어 쓰지요.”
“지금 사시는 집은 어딥니까?”
박병수는 이상하게 수사관의 심문처럼 느껴져서 이 질문만 하고 그만 묻자고 생각했다.
“집은 남의 제실 관리하면서 문간방을 쓰지요. 아참, 제실 관리비도 매월 조금씩 받네요.”
“제실요? 그런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박병수는 그만해야지 했던 질문이 금세 또 나왔다.
“교차로에 관리인 구한다는 광고가 있습디다. 목조 건물은 사람이 살면서 풀도 뽑고 늘 관리해야 된다더군요. 그리고 텃밭도 조금 붙어 있어서 내가 먹는 채소는 충분히 자급하지요.”
그러면서 정준호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기가 막히는 사연이었다. 수도권 k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그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내는 시간만 나면 백화점에 가서 비싼 물건을 구경하다가 카드로 사버린다.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매일 밖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떠든다. 집은 엉망으로 해놓고 새벽에 술 취해서 들어온 날도 더러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2박 3일 동남아 골프 여행을 다녀와서 사흘간 내리 잠만 잤다. 한번뿐인 인생을 즐겁게 살자면서 정신없이 휘젓고 다니는 아내였다. 그러니 선량하고 성실한 정준호는 악처의 계속적인 일탈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정준호가 퇴직하고 집에 있게 되니까 허구한 날 부부싸움이었다. 결정적으로는 고액의 카드 연체료를 알게 된 정준호가 닦달 끝에 아내를 때렸고 조금 다친 아내는 이혼소송을 걸었다. 정준호는 치료비와 이혼 위자료 지불을 위해 아파트를 팔면서 재산을 절반 이상이나 없앴다. 집 앞에 있는 백화점은 꼴도 보기 싫고 아는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 낯선 시골로 가고 싶었다. 그것은 이사가 아니고 잠적이었다.
정준호가 시골집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간 곳이 최창기의 부동산 사무실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지식이 전혀 없는 정준호에게 최창기가 소개한 땅은 보존 산지에다 맹지였다. 두어 번 만난 최창기가 형님형님 하면서 얼마나 살갑게 했던지 정준호는 깜빡 속고 말았다. 최창기는 땅 매매 소문이 나면 살 사람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땅주인이 가격을 높일 수 있으니 조용하고 빠르게 처리하자고 꼬드겼다. 정준호는 군인이나 교육자 출신들이 세상 물정 잘 모른다는 통설을 증명이나 하듯이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나중에 보니까 그 산은 방 한 칸도 만들 수 없는 불구의 땅이었다. 거기에 남은 재산을 다 털어 넣었던 그는 속이 뒤집혀서 그 산 근처에도 안 간다. 최창기에게 따지려고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거액의 부동산 사기를 쳤다가 조폭들의 보복성 구타로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소주를 한잔 더 마신 정준호가 말했다.
“마누라에게 당하고 최창기에게 당하고 나니까 세상에 믿을 인간이 없더라구요. 그래 백면서생인 내가 너무 한심해서 술만 바락바락 마셨지요.”
“형님 참 고생하셨네요. 근데 좇 빼고 귀 빼고 나면 당나귀에겐 남는 게 뭡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요.”
“아, 당나귀에게 제일 큰 두 가지 말입니다. 그걸 빼버리면 껍데기뿐이지요.”
“허허허 그거 재밌네요. 아닌 게 아니라 엎어진 당나귀 꼴이네요.”
정준호는 그렇게 가난한 독거남이었다. 그나마 명상수련으로 마음을 비우고 사니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되니까 나머지야 없으면 안 쓴다는 배짱으로 사는 것이다.
“형님, 혹시 재혼 생각은 없습니까?”
“재혼? 아, 일 없어요.”
“그래도 혼자서 외롭지 않습니까?”
“글쎄 여자 친구라도 있으면… 아니, 아닙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어떤 여자가…….”
“왜요? 형님이 어때서요. 몸도 좋고 펄펄한데요.”
임산부 배 같은 박병수는 처음부터 정준호의 역삼각형 몸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준호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여자는 남자가 돈이 많거나 혹은 잘 생기기라도 해야 좋아하는데, 난 그 두 가지가 모두 안 되잖아요?”
“아닙니다, 형님. 요즘 여자들은 안 그래요. 돈은 여자들도 웬만큼은 가지고들 있지요. 영 없으면 남자를 쳐다볼 여유도 없구요. 그리고 잘 생긴 남자들은 대부분 성질이 더럽거나 정력이 약해요. 아니면 열편단심이라서 믿음이 안 생긴대요.”
“열편단심이라니요?”
“아, 일편단심 말고 열편단심 있잖아요. 이년 저년 잡년까지 다 껄떡거리는 수캐 말입니다.”
“열편단심이라. 그런 것도 있습니까? 허허 참.”
“그래서 여자란 오로지 자기만을 바라보는 남자, 그중에서 허릿심까지 좋으면 마음을 열지요.”
“듣다 보니 박 소장은 연애도사 같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이론만 빠삭하지요. 본래 제 작품은 못 쓰는 사람이 평론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박병수는 소주 한 병을 또 시키면서 실없이 킥킥 웃었다. “왜 웃어요?”
“형님! 나는요, 마누라 하나도 감당 못 하면서 양기가 입에만 올랐습니다. 친구들은 날 보고 이론 당구 8백이라 하지요.”
사실 그랬다. 그는 마을 노인회나 부녀회 관광 가이드 섭외 1순위에 랭크된 사람이다. 유머감각이 워낙 좋은 데다 와이담 레퍼토리도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배꼽을 잡는다. 그 찰진 입담에 홀리면 멀미하던 사람도 웃고 만다. 가이드 사례금이야 공금으로 주지만 어떤 영감님은 지갑을 꺼내며 손에 침을 바른다.
“박 소장! 술 이제 그만하고 일어납시다. 나 내일 가지산 등산 가니까요. 참 내일 산에 같이 갈랍니까?”
“아이고, 나는 산이라면 취미 없습니다.”
두 손을 다 흔들면서 반대하는 박병수는 취미가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없는 것이다.
3.
“또 술 드셨어요?”
현관에 들어서자 양수미의 지청구가 날아왔다.
“어. 아는 형님이랑 잠깐 산 이야기 좀 하느라고…….”
“흥, 매매도 안 되는 산을 매일 상담만 해요? 그리고 꼭 술을 먹어야 산이 팔려요?”
박병수는 정준호가 마지막에 했던 등산 이야기였는데 양수미는 산 매매라고 생각했다. 박병수는 더 말하기도 피곤해서 소파에 벌렁 누워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운동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준호를 따라서 산이라도 다닐까 생각하는데 양수미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이, 거기서 잔다고요? 샤워하고 방에 가서 자요.”
박병수는 마누라 등쌀에 머리를 쓱쓱 긁으며 욕실에 들어갔다.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정준호의 역삼각형 몸을 생각하고 자신의 장독형 몸을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양치하고 씻으니까 정신은 조금 나아졌다.
“뭐야 또 드라마야? 맨날 징징 짜는 막장 드라마 그만 보고 이슈 토론이나 좀 틀어봐.”
머리 물기를 닦으며 박병수가 말했다.
“흥, 맨날 투닥투닥 싸우는 정치꾼 이야기가 지겹지도 않아요?”
양수미는 남편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화면만 뚫어지게 보는 것이 채널 고정이자 시선 고정이었다.
“뭔데 그렇게 열심히 보아?”
박병수가 리모컨을 잡으려는 순간 양수미가 재빠르게 낚아채면서 말했다. “여보, 저 사람 멋지죠. 음성도 저렇게 중후한 저음이고…….”
“누군데? 저 사람 이름 뭐야?”
“아, 유동근이잖아요. 정말 멋진 남자이지요. 부인도 아주 미인이구요. 전인화라고…….”
“착각하지 마. 저 사람들은 멋진 인간이 아니고, 대본의 멋진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이라구 알아?”
양수미는 대답도 안 하고 유동근만 바라보았다. 박병수는 슬며시 부아가 났다.
“저건 말짱 꽝이야. 꾸며지는 인물은 쉽게 말하면 모두 거짓인 거야.”
유동근의 대사가 이어질 때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집중을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사래를 쳤다.
“개념 없는 시청자들은 거짓말에 속는 거야. 알아?”
드라마가 끝났다. 화면에는 유동근이 사라지고 무슨 화장품 광고가 나왔다. 양수미가 박병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라고요? 개념 없는 시청자라구요? 그냥 국민의 평균적인 시청자라고 말하면 안 돼요?”
“허허, 이 사람 좀 보소. 그런 건 국민의 평균이 아니고 막장의 평균이지. 진실이라곤 개가 다 물어가고 거짓과…….‘
“거짓말은 당신이 선수라면서요?”
양수미가 남편의 말을 끊고 팩 쏘았다.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해?”
“흥 거짓말 안 하면 집이든 땅이든 못 판다면서요.”
“아 그거? 이봐요 양수미 여사! 그런 건 말이지 거짓말이 아니고 뭐랄까? 그렇지. 계약 성사를 위해 살짝 화장하는 정도지. 아 솔직한 말로 맨얼굴만 진실이고, 화장한 얼굴은 거짓인가. 그건 아니잖아.”
코너에 몰린 박병수가 화장 운운하면서 겨우 빠져나오는 듯했지만 양수미도 그냥은 물러나지 않았다.
“좋아요. 부동산 거짓말은 생계형이라서 그렇지만 다른 거짓말도 많잖아요.”
“아니야. 그것 말고는 없어. 난 말이지 솔직한 점 외에는 단점이 없는 사람이라구.”
“아이고, 그 말부터 거짓말이네요. 당신 거짓말 역사 폭로할까요?”
박병수는 뜨끔했다. 이렇게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쫄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병수는 이럴수록 당당하게 전진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뭔데? 어디 말해봐.”
“좋아요. 당신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님께 말했다 했잖아요. ‘엄마. 다른 애들은 모두 거짓말해도 저는 절대 안 해요. 내일 코사인 사야 하니까 3천 원 주세요. 아니 너 전에 샀잖아? 아 그건 탄젠트였죠. 아, 그러냐? 아이구, 내 아들! 거짓말 안 해서 고맙구나.’ 이 말 기억 안 나요? 난 이렇게 외울 정도로 들었는데요.”
“아 그거야 뭐 그때 친구들이랑 캠핑 자금 만든다고 그랬어. 일종의 애교형이지 거짓말은 무슨…….”
“흥, 생계형에 애교형까지 다 나오네요.”
“어허, 그만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자자, 이리 와 봐. 한번 안아 줄게”
“싫어요. 술 냄새나니까 그냥 자요.”
박병수가 항아리 안듯이 두 팔을 벌렸지만 양수미는 그만 팩 쏘았던 것이다. 박병수가 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 이리 와보래도. 술 냄새야 어디 하루 이틀인가?”
“하루 이틀 아니니까 지긋지긋하지요. 유동근 정도면 몰라도…….”
그 말에 골이 난 박병수가 불쑥 말했다.
“유동근 좋아하시네. 당신 지금 몇 살이야?”
“5학년 7반인데 왜요? 이젠 마누라 나이도 모르시나.”
“허허 참, 옛말에 쉰 넘은 여자는 개도 안 쳐다본다고 했는데. 그 나이에 유동근이는 무슨…….”
“아 됐네요! 그만해요.”
양수미는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왜 성을 내고 그래? 농담한 것 같고.”
“농담할 게 따로 있지. 마누라 나이 갖고 개가 어떠니 저떠니… 날 새면 골목에 나가봐야겠네. 개가 보는지 안 보는지.”
양수미는 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박병수는 아차 싶어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문은 벌써 안으로 걸려 있었다.
“여보 문 열어봐, 잠깐만 얘기 더…….”
“됐네요. 개도 안 쳐다보는 마누라에게 뭔 할 말이 있어요.”
양수미가 됐네요를 연발하면 기분이 많이 상했다는 것을 박병수는 30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머슴애 고추하고 입씨름은 자꾸 주무르면 커진다더니…….”
박병수는 맥주를 마시고 소파에 길게 누웠다.
4.
사무실에 나온 박병수는 일할 기분도 안 난다.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여직원도 내보냈으니, 청소나 서류 정리 따위가 너저분하고 허술하다. 그래도 오늘은 누가 땅 보러 온다니까 사무실을 좀 치워야 된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청소를 했다. 하지만 청소가 끝날 때쯤 박병수는 맥 빠지는 전화를 받았다. 그 여자는 지금까지 전화만 세 번하고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안보였다.
이런저런 사정을 말하며 약속을 자꾸 미루니까 짜증이 난다. 그래도 손님이니 친절하게 말해야 한다.
“네, 그러신가요? 저도 오늘은 급한 계약 건이 생겨서 사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미룰까 했는데 잘 됐군요.”
순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업상 필요한 처세술이고 삶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코사인을 탄젠트로 바꾸는 순발력은 일종의 능력이라고 자위했다.
흐렸던 하늘이 눈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런 날은 아내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자 싶어 카톡을 보냈다. 어젯밤의 일도 빨리 풀자 싶었고 냉각기가 길면 해롭다고 생각했다.
“여보 비가 오네. 칼국수 먹으러 갈래? ^^”
마지막 눈웃음표를 찍을 때는 은근히 미소도 지었지만, 돌아온 답장은 짧고 쌀쌀했다.
“아, 됐네요!”
아직 안 풀렸구나. 무슨 여자가 성질이 저 모양이야. 박병수가 구시렁 거리며 권용팔 이장에게 전화를 했다. 올해 칠순이 된 권 이장은 시력이 좋지 않아 카톡을 거의 하지 않고 통화만 한다.
“형님, 이리 오십시오. 짜장면 내기 바둑이나 한판 하게요.”
“알았어. 안 그래도 입맛이 없는데 잘 됐구먼.”
전화 끊고 5분도 안 되어 권 이장의 낡은 아반떼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평소처럼 3판 양승제로 결정하고 간짜장과 야끼만두를 걸었다. 두어 시간의 치열한 접전 끝에 권 이장이 스트레이트로 이겼다.
“어허, 오늘은 조금 좀 수월하네. 박 소장 자네 손님 대접한다고 져주는 것 아닌가?”
“아이고, 아닙니다. 형님이 잘 두신 거지요. 일단 식사부터 하고 한 판만 더 하시죠”
“왜, 또 손님 대접하려고?”
“아뇨. 디저트 커피 내기 하십시다.”
그런데 식사하면서 둔 바둑은 박병수가 이겼다. 권 이장은 단골 다방에 커피를 시키며 토를 달았다.
“어이 장 마담! 오늘은 자네가 오지 말고, 홍양 보내라. 알았지?”
“네, 알았어요. 젊은 미스 홍 보낼 테니 과잣값이나 좀 주세요.”
권 이장의 옵션에 장 마담이 조금 새침하게 대답했다. 잠시 후 핫팬츠와 가슴골이 깊이 보이는 분홍 티셔츠 차림의 미스 홍이 눈을 흘기면서 들어왔다.
“아이, 오라버님. 마담 언니 이빠이 삐졌던데 뭐라고 했어요?”
“별말 안 했어. 그냥 너 보고 싶으니 보내 달라고 했지.”
“언니 섭섭하게 왜 그런 말을 했어요?”
“야! 커피 값 똑같은데 큰북보다야 장구 닮은 허리가 좋지. 안 그래? 그건 그렇고 너 박 소장 기분 좀 풀어줘라. 내기 바둑 졌다고 그런지 힘이 없네.”
“하이고, 형님. 무슨 말씀을요. 전 까딱없습니다.”
박병수가 자신의 불룩한 배를 툭툭 치며 으스댔다.
“이야, 작은 옵빠 배가 차암 복스럽다. 저는 이렇게 여유 있는 체격이 좋아요. 여기 뭐 들었어요?”
미스 홍은 말릴 틈도 없이 박병수의 배에 귀를 갔다 댔다.
“야야 비켜! 화장품 묻어.”
깜짝 놀란 박병수가 미스 홍의 얼굴을 밀어냈다.
“솔직히 큰 오빠는 너무 말랐어요. 남자가 좀 살집이 있어야 좋죠.”
“야, 너 마른 장작이 화력 센 거 몰라?”
권 이장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어머 맞아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깡마른 남자 주인공 멋졌어요. 이름이 뭐더라?”
“크린트 이스트우드였지.”
박병수가 말했다.
“어머, 작은 오빠 대단해요. 그 영화 봤어요.”
“그래, 난 크린트 이스트우드 광팬이라서 그 양반 영화는 거의 다 보았어.‘
“그 영화 보면서 생각했어요. 뚱뚱한 남자를 좋아하지만, 마른 남자도 멋진 사람이 있구나 하구요.”
“그럼 있구 말구. 우리 이장 형님처럼 말이야.”
박병수가 말하자 권 이장이 미스 홍의 가슴골에 5만 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찻값 계산하고 잔돈은 니 과잣값이나 해라.”
“와우~ 큰오빠, 땡큐땡큐 땡땡큐!”
노련한 미스 홍은 땡의 멜로디까지 넣으며 재즈처럼 부른다.
“야야, 땡큐 한 번만 해라. 인건비 바싼데…….”
“그러고 보니 큰 오빠가 크린트 이스토드랑 좀 비슷해요. 얼굴선은 달라도 전체적인 이미지가 많이 닮았어요.”
미스 홍이 권 이장의 기분을 열심히 맞추더니 박병수에게 묻는다.
“작은 오빠. 근데 그 여주인공도 멋지죠, 나이가 좀 들었지만 묘한 매력이 있잖아요.”
“아니야. 옛말에 여자가 쉰 넘으면…….”
박병수는 아차 싶어 말을 바꾸었다.
“그렇지. 여유, 헌신, 원숙미 같은 건 풋내 나는 여자에게는 보기 힘들지.”
“맞아요. 그윽한 눈빛, 새벽안개 같은 우수, 아 나도 나이 들면 그렇게 익어야지. 오빠, 그리고요. 나이 든 여자도 성욕이 있대요. 그게 말하자면, 내가 필요한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미스 홍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주문이 밀렸다고 빨리 나오라는 티코 알바생이다. 미스 홍은 일어서며 박병수에게도 작업형 복선을 깔았다. “작은 오빠, 제가 쉬는 날 연락 줘요. 아셨죠?”
그녀는 팁을 잘 받기 위해서 애교 윙크도 날리며 미리 길까지 닦을 줄 아는 선수다.
5.
양수미는 현관에 들어서는 남편의 주위를 뱅뱅 돌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잠깐, 여보 이리 좀 와 봐요.”
“왜 뭔데?”
이유야 뭐든 아내가 냉전 하루 만에 말을 걸어오니 박병수는 내심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양수미는 남편의 배 쪽으로 코를 바짝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한 음식 냄새라도 맡는 사람처럼 눈을 찌푸렸다.
“여보! 오늘 어디 갔었어요?”
“가긴 어딜 가. 사무실에서 바로 왔는데…….”
박병수는 대답하다가 아차 했다. 옷에서 화장품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그럼 사무실에 어떤 년이 왔어요?”
“아하, 이장님과 바둑 두고 커피 시켰는데…….”
“그럼 커피 가져온 년이 당신을 껴안고 비비고 지랄했나요?”
“아니, 뭐 장난 좀 친다고…….”
“좋았겠네요. 젊은 년이랑 장난도 치고…….”
“젊은 년이라니? 마담도 나이 많아. 아마 당신 또래는 될 거야.”
여기에서 박병수는 미스 홍을 마담으로 급조했다. 이 능력은 코사인과 탄젠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최고의 창의력이라고 자평했다.
“아이고, 그래요? 그 마담은 개가 처다 보나요? 당신은 수캐인가요?” “에이, 좀 그만해 이제.”
박병수는 얼버무리며 세탁기에 셔츠를 집어넣었다. 이 일로 냉전의 골이 더 깊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모든 게 미스 홍의 돌발 포옹 탓이라 생각했다.
이튿날 사무실에서 혼자 멍 때리고 있는데 카톡 음이 들렸다.
“오늘은 경옥이와 약속이 있으니 저녁은 혼자 드세요. 좀 늦더라도 걱정 마세요. 개도 안 쳐다보니까요.”
“알았어, 재밌게 놀고 천천히 들어와. 개 이야기는 그만하고…….”
잠시 생각하던 박병수가 정준호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저녁 약속 없죠? 제가 살 테니 사무실 쪽으로 나오십시오.”
“알았습니다. 나중에 6시까지 갈게요.”
정준호는 남에게 밥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음에 내가 사면 된다는 기브 엔 테이크 원칙도 주머니 얇은 그로서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박병수 정도의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다. 솔직하고 대하기 편해서 좋다. 적어도 최창기 같은 인간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정준호는 제실에서 부동산 사무실까지 30분 정도 걸어서 갔다. 조금 일찍 나설 수만 있으면 걷는 것이 훨씬 좋다고 주장해 오던 그였다.
박병수는 오복집에서 정준호를 만나 복지리와 소주를 시켰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박병수는 최근에 개도 안 쳐다본다는 실언으로 아내와 냉전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셔츠에 묻은 여자 화장품 냄새도 말했다.
“형님! 풀긴 풀어야 되겠는데 무슨 방법 없겠습니까?”
“글쎄요. 꽃 한 다발 사들고 진지하게 사과하는 게 좋겠죠. 그리고 당신 아직은 예쁘다 말하고 밤에 좀 안아주면 어떨까요?”
“아이고, 형님. 꽃 선물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요, 또 안아주는 건 도저히 자신이 없어요.”
“자신이 없다니요? 아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기… 형님, 저 약간 쪽팔리지만 발기가 잘 안 돼요. 어찌어찌 거사 준비가 되어도 꼴대 앞에만 가면 자빠져요. 몇 번 그러다 보니 몇 달 전부턴 아예 각방을 쓰고 스킨 쉽도 거의 졸업했습니다.”
박병수는 내친김에 죄다 말해버렸다. 행여 무슨 비방이나 얻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술의 힘도 조금 빌렸다.
“어허, 환갑이면 요즘 세월에야 젊은이라 하는데 벌써 졸업했다구요?” “그게 저… 부끄럽게도…….”
“뭐 우리끼린데 부끄러울 건 없구요. 박 소장은 평소에 운동 안 하지요?” “네, 운동을 싫어해서… 아니, 귀찮고 힘들어서 전혀 안 합니다.”
“나이 들면서 운동 안 하면 몸이 팍 삭아요. 헬스나 수영이 좋은데 일단 등록만 해도 절반이니까 용기 내어 시작해요. 아우님!”
정준호는 박병수에게 처음으로 아우님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말했다. 발기부전 같은 이야기도 털어놓는 그에게 연민과 신뢰감이 동시에 들어 훅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래서 5분도 걷기 싫어하는 박병수에게 꼭 필요한 운동을 권유했다.
“형님은 운동을 많이 하니까 힘도 좋고 여자도 자신이 있으시죠?”
“힘은 좋은데 여자는, 음…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어요.”
정준호는 머뭇거리며 어렵게 말했다.
“왜 자신이 없습니까? 내가 형님 정도만 되면 여자는 줄을 섭니다. 그래 형님은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박병수가 물으니 담론의 주객이 바뀐 듯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돈도 없고 인물도 없고…….”
“아이고, 형님! 제가 그저께 말했잖습니까? 돈이나 인물이 제일 중요한 건 아니지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자에게 믿음을 주는 인간성입니다. 요즘 이상한 인간이 많거든요. 그리고 밤일을 잘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이게 안 되지만 형님은…….”
“허허 참, 아우님도 답답하네. 아, 인간성은 어느 정도 겪어봐야 알지 처음부터 어떻게 알아요? 또 밤일은 한판 붙어봐야 알고요. 그러니까 그 두 가지는 상대가 일단 생긴 다음의 문제잖아요. 안 그래요?”
두 사람은 돈, 인물, 인간성, 밤일이란 4가지 조건을 두고 꽤 진지하게 토론했다.
그러나 결론은 약간 옆에 있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 결론은 바로 인연이었다. 버린 돌이 옥일 수도 있고, 잡은 옥이 돌일 수도 있다는 게 인간사라고 그들은 공감했다.
6.
양수미는 자주 다니는 할매 아구찜에서 현경옥을 만났다. 그들은 여고 입학식장에서 처음 만난 후부터 40년 단짝이다.
“이야, 현경옥 여사님 더 예뻐지셨네! 비결 좀 가르쳐줘.”
“비결은 나중에 말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배고파 죽겠어.”
예약을 했으니 음식은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수정과로 입가심하며 수다 보따리를 풀었다.
“그래, 밥 먹었으니 배는 찼고 이제 미모의 비결을 말해봐.”
“비결이란 거 딴 거 없어. 성스러운 스포츠 잘하면 되는 거야.”
“성스러운 스포츠? 그게 뭐지?”
“전에 내가 말 안 했던가? 성스러운 스포츠, 줄여서 성스라고 바꿔 말해. 섹스 말이야, 오케이?”
“아하, 그거? 근데 너 아직도 성슨가 뭔가 자주 해?”
양수미가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아, 물론이지. 근데 나보다 그 양반이 더 열심이야. 사람의 몸은 안 쓰면 결국 못쓰게 된다나. 아무리 운동하고 좋은 거 다 찾아 먹어도 성스를 멀리하면 금방 삭아 버린대. 그러면서 매일 들이대는 거야. 자기가 무슨 카사노바라고 나 참…….”
현경옥은 남편의 험담을 포장하여 은근히 자랑을 했다. 양수미는 친구부부가 부러웠지만 자신들의 각방살이는 말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남편의 당황하고 미안해하던 표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걸 곧이곧대로 말한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도리도 아닐 것 같아서였다.
양수미는 또 물었다.
“신랑은 그렇다 치고 넌 어때? 그 일이 싫지는 않아?”
“아니야. 나도 좋아. 성스 잘 되면 혈액순환에 좋고 당연히 온몸이 살아나지. 그러니 이게 젊음 유지의 비결이라고. 측천무후처럼 말이야. 그녀는 81세까지 젊은 남자 3,000명을 따먹었다더라. 밤에 시원찮은 놈은 이튿날 처형해 버리고 말이야.”
현경옥은 중국 역사를 많이 안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중국 황제니까 그렇잖아. 우리야 뭐 꿈같은 이야기지.”
“얘, 이 말 기억나지? 꿈은 이루어진다. 짜잔~”
“어, 월드컵 때 유행했던 말이지.”
“월드컵뿐이 아니고 미용과 건강도 노력에 달렸어. 근데 너희 부부는 공장 잘 돌아가?”
“글쎄. 우리 애들 아빠는 자주 원하는데 내가 밀어내지.”
“왜 그래? 싸웠어?”
“아니, 싸웠다기보다 기분 나쁜 소리 하잖아.”
양수미는 툭 던지듯이 다리를 펴는데 입도 튀어나왔다. 엄마에게 인형 사달라고 보채는 계집애 같다.
“무슨 소리 들었기에 밀어내기까지 해?”
“글쎄 여자 나이 쉰 넘으면 개도 안 쳐다본대. 남편이라는 인간이…….” “뭐, 뭐라고?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야, 가서 말해! 요즘 여자는 환갑까지 새댁이라고. 그리고 일흔까지 아줌마 소리를 들어. 세월도 모르고 얻다 대고 그런 구닥다리 소릴 해?”
현경옥은 친구 남편이라 심한 욕은 못하고 대신에 솔직한 비판을 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면서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얘, 너 그러지 말고 삐딱 걸음 한번 걸어봐.”
“삐딱 걸음이라니, 그게 뭔데?”
양수미의 눈은 커졌지만 상대적으로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묘한 언밸런스다. 현경옥도 목소리를 낮추며 바짝 다가 않는다.
“아, 뭐긴 뭐야. 홧김에 서방질 한 번 하라는 거지.”
“홧김에 서방질 이라니? 그거 남편이 바람피울 때 여자가 맞바람 피우는 거 아니야? 우리 신랑 바람은 피우지 않는데…….”
“이 쑥맥아. 남편에게 무시당하니까 화가 나잖아. 그래서 삐딱 걸음 걸으면 그게 홧김에 서방질이지. 안 그래?”
“아이고, 난 그런 거 못해. 사람도 없고.”
“사람이 없다고? 그럼 마음은 있구먼. 야, 요즘 산악회 가면 싱글족 많아. 수미 너 정도면 남자 몇 사람은 따라붙을 거야. 또 산에 오는 남자들은 네 신랑 같은 배불뚝이는 거의 없어. 대부분 샤프하지. 혹시 허릿심 좋은 연하남이라도 만나면 땡잡은 거고.”
현경옥은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하고, 양수미는 쑥스러워서 쭈뼛거린다.
“그래도 난 자신 없다 애. 어떻게 모르는 사람과…….”
“어머, 애 좀 봐. 그럼 모르는 남자랑 서방질하지 친척이랑 하니? 좋아, 그래도 꼭 그게 걸리면 몇 번 만난 다음에 역사를 만들면 되지. 그러면 모르는 사람 아니잖아, 맞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식당 주인이 영업 마감 시간이라고 양해를 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밖으로 나온 현경옥은 아무래도 섭섭하다면서 길 건너 찻집으로 끌고 갔다. 늦은 시간이라 찻집은 조용했다. 구석자리에 중년의 커플을 바라보며 현경옥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얘, 저 사람들 부부 같애?”
“글쎄, 모르겠는데. 이마에 써 붙인 것도 아니고…….”
“아이고 이 아줌마 눈치 좀 봐. 부부가 이 시각에 미쳤다고 찻집 구석자리에 앉아 있어, 저 사람들 백 프로 삐딱선이야.”
“빠딱선이라고? 애는 그걸 어떻게 단정할 수 있니?”
“내 말 분명히 맞아. 요즘 애인 없으면 7급 장애인이라는데 저 사람들은 정상인 같잖아?”
현경옥이 쿡쿡 웃다가 말머리를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넌 어쩔래? 이번 주말에 등산 안 갈래? 나량 같이 간다고 하면 니 남편도 별말 없을 거야.”
“하기야 그렇겠지. 개도 안 쳐다본다는 50대 들이니까.”
“좋아. 정말 개도 안 쳐다보는지 시험해 보자구. 됐지?”
“알았어. 생각해 볼게.”
“생각은 무슨… 이런 일은 후딱 밀고 나가는 거야. 그래야 홧김이지.”
“그래, 그럼 홧김에… 등산만 하자. 서방질은 말고.”
양수미는 반승낙만 하는데도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좋아. 일단 등산만 약속하고 일어나자. 나 지금 편의점에 콘돔 사러 가야 돼.”
“콘돔이라고? 너 아직도 피임하니?”
“아니, 피임이 아니라 성병 예방용이야. 우리 집 양반이 좀 여러 군데 바쁘게 다니거든.”
현경옥은 대수롭지 않게, 마치 계집아이가 솜사탕 먹듯이 쉽게 말했다. “그럼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었다 말이야? 너 정말…….”
“아니, 그건 외도가 아니라 성스러운 스포츠라고 했지? 내가 그냥 덮어 주는 거야. 고약한 병만 주의하고 말이야!”
“너 정말 대단해. 말이야 바른말이지 홧김에 서방질은 니가 해야겠다 얘.”
“아니, 둘이서 각바람피우면 집구석은 끝장이야. 그 양반은 시장에서 부추만 쳐다봐도 발기되는 남자야. 그러니 어쩌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나라도 참아야지.”
“와, 현대판 열녀 났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양수미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그이는 밤낮없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 하지만 운동선수가 힘 떨어지면 은퇴하듯이 그이도 조용할 날이 곧 올 거야. 내일모레면 칠십이잖아.”
사실 그렇다. 현경옥의 남편은 11살이나 많다.
“근데 니 남편 비아그라 드셔?”
“노노. 완전 자연산이야.”
양수미가 부러운 듯이 묻고 현경옥은 뻐기 듯이 대답했다.
“대체 비결이 뭐지?”
“운생운사. 운동에 살고 운동에 죽는다는 거야, 수영, 헬스, 태극권, 자전거, 등산 등등 요일별로 바꾸어 운동하면서 근력을 꾸준히 키우지. 그러면서 밤일도 스포츠로 생각하며 즐기잖아. 게다가 술, 담배, 도박은 옛날부터 다 끊었고 말이야.”
현경옥의 말인즉 예·복습 열심히 하고 수업 잘 들으면 만점 받을 수 있고, 만점 받으면 일류 대학 합격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주장이다. 양수미로서는 그 주장을 반박할 여지가 없다.
이미 많이 취한 박병수가 술잔을 채우며 불쑥 말했다.
“근데 형님, 나는 참 이상합니다. 다방 애들하고 장난칠 때는 발기가 되거든요, 그리고 마님이 돌쇠 끌어들이는 영화만 봐도 몸이 달라져요, 그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거 좋은 현상이구만. 그 정도면 아직은 괜찮은데?”
정준호의 말에서 용기를 얻은 박병수가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누라 말고 다른 여자에게 성추행 당해 보는 게 희망 사항입니다. 나는 성추행 당해도 절대로 신고 안 할 겁니다. 왜냐면 여자에게 성폭행까지 당하는 것이 버킷리스트 1번이니까요.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 정말 가능성이 있네. 운동하면서 자신감을 키우면 살아나겠구먼 일단 몸부터 만들어야 해.”
“형님, 그러면 몸을 어떻게 만듭니까?”
“허리부터 줄이고 물살을 빼고 질 좋은 근육을 키워야지.”
“허릿살과 물살은 알겠는데 질 좋은 근육은 어떤 겁니까?”
“질 좋은 근육이란 경주마처럼 힘주면 단단하고 힘 빼면 부드러운 근육이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기본체력부터 키우려면 등산이 좋은데 나랑 같이 가겠소?”
“아휴 형님, 산은 제발 권하지 마십시오. 많이 걸으면 무릎도 아프고……수영이나 자전거는 어떨까요?”
“아, 좋지. 뭐라도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하면 다 좋은 거야. 또 물살이 빠지면 무릎도 편해질 거야. 대신에 운동이 좀 약하면 입맛만 땡기니 오히려 과식하게 되고 살은 더 찌지.”
“그러면 자전거부터 하는 게 좋겠네요. 이 몸 위에 수영복 입으면 복어처럼 보이겠지요?”
“허허, 큰 복어라서 수영장 물이 넘치겠구먼.”
“하여간 잘 알겠습니다. 형님 말씀 기억하고 이번에는 이론 당구 안 쳐야지요. 근대 형님은 아직 건강도 좋으신데 연애 좀 하시지요.”
박병수는 자신이 계속 화제의 중심이 되니 부담스러워 정준호로 중심이동을 했다.
“글쎄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연애를…….”
“이 나이라뇨? 김형석 교수님 알죠? 그분은 한 백 년 살아보니 60세부터 75세까지가 제일 좋았다고 하던데요.”
“그건 백 년 살아보신 뒤의 회상이지. 막상 6·70대 시절에는 그런 생각 안 했을 거야. 하여간 나는 그렇고 아우님은 집에서 부인께 잘해주소. 뭐니 뭐니 해도 조강지처가 제일인데 제발 무시하지 말고.”
“무시는 누가 해요? 전 골대 앞에서 늘 자빠져서 기도 못 펴고 사는데요.”
“아 그러니까 여자 나이 쉰 넘으면 개도 안 쳐다본다는 말을 하면 안 되지. 듣는 사람에겐 얼마나 모멸적인 독설인지 알아? 그건 지독한 언어폭력이라고.”
“네 형님, 잘 알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화제의 중심이 금세 또 바뀌어 버렸다.
토요 산악회는 코로나 여파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운영진 포함해서 남자 13명에 여자 14명이었다. 나이는 대충 보아 50대부터 60대 사이였다. 아무래도 젊은이들보다 중장년층이 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양수미가 말했는데 현경옥은 싱긋 웃으며 다른 말을 했다.
“중장년층은 건강 못지않게 사랑이 고픈 거야.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도 불안하고 말이야. 아직 이 정도 산은 자신 있다. 아직도 이성을 사귈 수 있다 하면서 아직 상사병이란 걸 앓고 있거든.”
현경옥이 낮게 말하다가 아까부터 자꾸 돌아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뒷자리로 슬그머니 옮겨 앉았다. 관광버스는 절반 이상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때부터 현경옥은 카톡으로 양수미에게 말을 전했다.
<수미야! 지금부터 넌 혼자야. 이야기는 톡으로 해.>
<왜?>
<저쪽 세 칸 앞에 대추색 모자 있지? 아까부터 널 자꾸 보고 있더라.> <어쩌나, 너무 떨려.>
<괜찮아. 침착하게 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우르르 내릴 때 그 남자의 손이 살짝 스쳤다. 양수미는 멈칫했다. 현경옥의 옆에 붙으며 그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현경옥은 빠르고 낮게 귓속말을 했다.
“얘! 혼자인 척 해. 그래야 남자가 붙는다고.”
현경옥이 저쪽으로 가버리자 양수미는 허전하고 떨렸다. 그리고 걸음걸이가 자꾸 흔들리는 거 같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니 아까 그 대추색 모자가 양손에 커피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혼자인 듯한 남자는 어깨가 딱 벌어지고 걸음걸이도 탄탄해 보였다. 키는 180 정도 되어 보이고 균형이 잘 잡힌 체격이었다.
“혼자 오셨지요?”
양수미는 깜짝 놀랐다. 유동근처럼 멋진 저음이다.
“네? 아니… 네, 혼자 왔어요.”
“커피 한 잔 드십시오.”
다시 들으니 역시 멋진 음성이다. 양수미는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홧김이 아니라도 만나고 싶다. 시간 있냐고 물으면 있다고 해야지. 저 넓은 가슴에 한번 안겨 보았으면∼
“오늘 날씨 좋죠?”
“네? 날씨… 네, 좋아요.”
“등산은 자주 하십니까?”
“네? 자주… 아뇨. 오랜만에…….”
양수미는 자꾸 말이 꼬였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그때 카톡이 왔다.
<수미야! 너 당황하는 거 여기서도 보여.>
<나 무서워. 홧김에 그거 취소하자.>
<괜찮아. 잡아먹지 않을 거야. 이 언니만 믿어.>
커피 마시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양수미에게 살짝 목례를 하는 것은 실례하겠다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교양 있는 신사다.
<어, 아우님! 오늘 산에 간다고 했잖아. 어, 날씨도 괜찮고 기분도 좋아.>
양수미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여고 때 국어선생님이 시를 읽어 줄 때도 이렇게 울렁거렸다. 곧바로 남편의 미운 얼굴이 떠올랐다.
‘뭐라? 쉰 넘으면 개도 안쳐다 본다고? 뒷집 개도 웃을 헛소리야. 내가 홧김에 정말…….’
양수미는 커닝하는 학생처럼 남자를 흘깃거리고 현경옥은 멀리서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아. 그래? 아우님도 자전거 사러 간다고? 그래, 잘 생각했어. 자전거부터 시작해 봐”
양수미는 갑자기 머리가 띠잉 했다. 가슴도 콩닥거렸다.
‘저 남자와 통화하는 상대방이 설마……?’
아침에 자전거 어쩌고 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던 남편이 눈앞의 대추색 모자 위에 포개져 보였다.
-원고지 120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