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머 동화> 나무귀신 동글이 (4/4)

by 구민성

나무귀신 동글이 (4/4)

%EB%AA%A9%EC%8B%A04.png?type=w580 동글이는 용감한 목신이죠.

<4>


토요일에 외할머니 생신이라고 엄마 아빠는 함께 시골에 갔습니다. 민지도 따라갔지만 민호는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학교와 학원의 숙제가 많다고 했는데 실은 다른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창근이와 함께 놀면서 목신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창근이는 모둠숙제를 한다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민호 네 집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숙제를 조금 하다가 30분도 안 되어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숙제는 나중에 저녁 먹고 하자면서 일단 컴퓨터 게임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의 간섭이 없으니까 완전히 해방된 민족이라며 신나게 했습니다.


밥은 안 먹고 양념 통닭을 시켜 먹고, 기왕 먹는 것이니 피자도 시켜 먹었습니다. 나중에는 비상금을 털어서 족발까지 시켰지만, 다 먹지는 못하고 조금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내일 아침에 먹자고 약속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겨우 8시 40분입니다. 민호는 목신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이릅니다. 자정이 되어야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민호는 그 놀라운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아직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로봇과 스마트폰을 갖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잠이 슬슬 왔습니다. 너무 많이 먹은 탓입니다.

‘안 돼. 지금 잠들면 안 돼. 12시까지는 참아야 해.’

민호는 속으로 외치면서 손등과 허벅지를 꼬집었습니다. 창근이는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면서 잘 노는데 민호는 자꾸만 눕고 싶었습니다. 눈꺼풀이 계속 내려오고 하품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밤 9시 20분이니까 아직 2시간 40분을 더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창근이가 불쑥 말했습니다.

“민호야, 나 이제 잘 거야. 넌 안 자?”

“으응, 난 이제부터… 숙제할 거야. 넌 잠 오니?”

민호는 창근이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자정까지 버틸 수 있으니까요.

“그래, 난 일찍 자는 편이야. 너도 많이 졸리는 눈인데?”

창근이가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꽂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난 괜찮아. 좀 있다가 잘 거야. 너도 게임 조금 더 하지?”

하지만 창근이는 민호의 희망과는 달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눕자마자 금방 새근새근 숨소리가 달라졌습니다.


민호는 졸음을 이기기 위해 양치하고 머리까지 감았습니다. 그래도 잠이 슬슬 왔습니다. 잠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하던가요?

민호는 이를 악물고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잠을 쫓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졸음이 쏟아져서 더는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민호의 갈등은 길지 않았습니다.

‘아, 안 되겠어. 10분만 자고 일어나자. 딱 10분만.’

민호는 자명종 시계를 10분 후에 울리도록 맞추어놓고 스르르 누웠습니다. 참는 것을 포기하고 눕는다는 게 이렇게 편하고 행복할 수가 있을까요?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정확히 10분 후에 머리맡의 자명종이 울렸습니다. 하지만 민호는 잠결에 자명종도 꺼버리고 이불을 덮어썼습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서 잠을 깼습니다. 아까 많이 먹었던 게 배탈이 난 것입니다. 민호가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간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거실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민호는 재빨리, 그러나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아니, 손톱만큼은 열어두었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살짝 보았습니다.


거실은 어둡지만 남자들의 이마에 등산용 랜턴이 빛나고 있어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 스타킹을 뒤집어쓴 그들은 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수세미 같이 헝클어진 머리에 입과 귀가 삐뚤하고 눈과 코도 찌그러져서 괴상했습니다.

“어이, 얼른 주워 담고 나가자!”

키 큰 남자가 거실의 문갑을 뒤지면서 낮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이 집엔 아무도 없어. 천천히 하자고.”

키 작은 남자는 장식장의 양주를 꺼내어 마시면서 여유 만만했습니다.


‘아, 저거… 아빠가 엄청 아끼는 건데…….’

민호는 너무 겁이 나서 배 아픈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려고 스마트폰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지금 손에 없습니다. 아까 카톡 하다가 식탁 위에 얹어두었던 게 기억났습니다. 참 슬픈 기억입니다.

키 큰 남자가 아빠 손목시계와 비디오카메라를 배낭에 넣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민호는 떨리는 손으로 창근이를 살살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창근이는 입맛을 다시며 배를 쓱쓱 긁기만 할 뿐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둑들은 이제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민호는 이때다 싶어 살금살금 거실로 나갔습니다. 겁이 나지만 억지로 용기를 냈습니다. 식탁 위에 있는 스마트폰을 꽉 잡았습니다. 얼른 방으로 되돌아가서 전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하면서 살살 기어가다가 그만 뽀삐의 발을 밟고 말았습니다.

“깨갱! 깽! 깽!”

뽀삐는 밤에는 절대 짖지 못하도록 아빠가 훈련시켰지만, 지금처럼 발을 밟히면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릅니다.

“누구냐?”

도둑들이 안방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아니, 이 녀석은 뭐야? 야! 너 거기서 뭐 해?”

도둑들의 헤드 랜턴 빛이 민호에게 쏟아졌습니다. 민호의 가슴에는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아저씨… 저는… 이 집…….”

“아하, 집에 꼬마가 하나 있었군. 이놈을 어쩌지?”

키 큰 남자가 키 작은 남자를 보면서 난처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우리를 봤으니 죽여 버릴까?”

키 작은 남자가 등산용 칼을 들고 민호 앞에 버티고 섰습니다.


“아,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

“잠깐! 또 누가 있어? 너 말고.”

“아뇨. 아, 아무도 없어요. 저, 저 혼자 있었어요.”

민호는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을 더듬고 눈빛도 흔들렸습니다. 키 작은 남자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다그쳤습니다.

“정말이야? 정말 너뿐이야?”

민호는 바싹 마른입으로 대답했습니다.

“네, 저 혼자… 아니, 또 있어요.”

“누가 또 있어?”

“네. 저… 우리 강아지 뽀삐요.”


민호는 급한 김에 그렇게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키 작은 남자가 민호 방으로 들어가더니 창근이를 끌고 나왔습니다. 귀를 잡혀 나온 창근이의 겁먹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습니다.

“요놈! 쪼그만 녀석이 거짓말을 해? 거짓말하면 나쁜 사람 되는 거 몰라?”

민호는 ‘도둑놈은 안 나빠요?’하고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은 안 나왔습니다.

“이놈들을 어떡하지?”

키 큰 남자가 물었습니다.

“두 녀석을 죽이면 절도에다가 살인까지 되는데… 그러면 사건이 너무 커져서 골치 아파.”

키 작은 남자가 말을 마치더니 배낭에서 밧줄과 청테이프를 꺼냈습니다.

“일단 묶어두고 물건부터 담고 생각하자.”

도둑들은 민호를 뽀각이에 묶고 창근이를 방각이에 묶었습니다.


두 손을 앞으로 묶인 창근이는 계속 눈물을 줄줄 흘리지만, 민호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휴. 그래도 죽이지 않고 때리지도 않네. 정신만 바짝 차리자.’

청테이프로 입을 붙였으니까 갑갑하기는 해도 어쨌든 참아야만 합니다.

안방에 들어간 도둑들은 배낭에 물건을 더 담았습니다. 엄마가 아끼는 핸드백과 보석함도 챙겨 담았습니다. 그들은 도둑질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식탁 다리에 묶어 둔 두 아이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낮고 빠른 목소리가 민호에게만 들렸습니다.

“민호야, 내 몸을 빼줘.”

“……."

“민호야, 얼른 내 몸을 빼줘.”

민호가 둘러보니 창근이 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몸을 빼달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민호야, 나 동글이야, 동글이.”

“아! 동글이. … 그래, 네 몸을 어떻게 빼지?”

“저 울보하고 같이 뽀각이와 방각이를 힘껏 당겨 봐.”

정신이 바짝 든 민호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창근이에게 살짝 말했습니다.

“창근아. 내가 셋까지 세면 식탁 다리를 확 당겨. 힘껏!”

“왜?”

“하여간 시키는 대로 해. 자, 준비! 하나, 둘, 셋!”

두 친구는 동시에 식탁 다리를 힘껏 당겼습니다. 그러니까 식탁이 와장창 주저앉으면서 다리 네 개가 빠졌습니다. 아빠가 만들 때, 너무 바빠서 목공 본드를 못 바르고 대충 끼웠으니까요.

동글이는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통통 튀면서 안방으로 들어간 동글이는 도둑들을 마구 때렸습니다.

“딱!”

“아이코!”

“퍽!”

“아야야!”

동글이가 때리는 소리와 도둑들의 비명이 뒤섞여서 요란했습니다. 그 와중에 두 아이는 자신들을 묶고 있는 뽀각이와 방각이를 겨우 풀었습니다. 민호는 손목이 아팠지만 빨리 112에 신고부터 했습니다.


몸이 풀린 뽀각이와 방각이도 안방에 들어가서 도둑들에게 공격했습니다. 저항하던 도둑들은 갑자기 코를 틀어쥐었습니다. 뽀각이는 지린내를 풍기고 방각이는 구린내를 엄청 내뿜었습니다. 그것은 나무에 배어있던 뽀삐의 오줌 냄새와 아빠의 방귀 냄새였습니다.

마침 풍뎅이 두 마리가 도둑들의 얼굴 앞에서 날갯짓을 하니까 냄새가 더 심했습니다. 도둑들은 몽둥이에 두들겨 맞고 악취에 절어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5분쯤 후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세 명의 경찰관이 오더니 도둑들에게 수갑을 채웠습니다.

민호가 이번에는 아빠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이쪽 상황을 모르니까 졸리는 목소리로 짜증을 냈습니다.

“야, 이 녀석아! 지금 몇 시야?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전화했어?”

“아빠, 그게 아니고 집에 약간 문제가 있었어요.”

“약, 약간 문제라니? 그건 또… 무, 무슨 말이니?”

아빠는 잠이 확 깨면서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근데 저랑 제 친구들이 다 해결했어요. 그러니까 푹 쉬고 천천히 오세요.”

민호의 밝은 목소리에 아빠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휴~. 너랑 친구들이 해결했다고? 근데 친구들은 누구니?”

“창근이는 아시죠?”

“알지. 사거리 약국 아들이잖아.”

“맞아요. 그리고 또 동글이랑 풍각이, 뽀각이, 방각이가 있어요.”

“아니, 근데 네 친구들 이름이 왜 그래?”

“개들은 착한 목신인데… 나중에 소개해드릴게요."

“착한 목신?”

“그런데 이제 똥 누고 싶어요.”

“똥 누고 싶다고? 나 원, 한밤중에 도대체 무슨 소린지…….”

전화 저편의 아빠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고, 민호는 화장실로 후다닥 들어갔습니다.


----끝. 원고지 4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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