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콕 일기 2--(41) 도토리 부자

by 구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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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부지런하면 손자 과잣값도 번다.


며칠 동안에 친구랑 둘이서 도토리를 엄청 주웠다. 참나무 숲은 공기가 깨끗한 데다 그늘이라서 머리까지 맑아졌다. 정다운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씩 줍는 도토리는 반들반들한 게 참 예뻤다. 지금까지 평생 주운 도토리보다 많았을 것이다. 처음에 탐냈던 알밤보다 도토리가 더 좋았다.


우리는 큰 도토리를 ‘왕꿀밤’이라고 했다. 왕꿀밤은 몇 개만 주워도 한 주먹이 되고, 금방 배낭이 묵직해진다. 그러나 우리 산에는 왕꿀밤이 열리는 굴참나무의 수가 적은 편이다. 대신에 졸참나무가 많은데 여기에는 길쭉한 도토리가 열린다. 나는 그것을 ‘아몬드 꿀밤’이라 이름 지었다. 모양이나 색상이 흡사 아몬드를 닮았기 때문이다.


첫날은 열심히 주워서 밀양 재래시장에 가서 팔았는데 장사꾼의 농간에 속고 말았다. 아는 사람이라고 믿다가 배신당한 느낌이다. 저울의 눈금도 보여주지 않고 단가도 약속보다 낮추어버렸다. 아는 놈이 도둑놈이라더니, 25%나 떼먹었어!


둘째 날은 청도 재래시장에 가서 팔았는데 또 당하고 말았다. 저울은 직접 확인했지만, 할머니의 말 바꾸기에 또 당했다. 소개하는 사람은 1kg에 3,000원이라 했는데, 막상 23kg을 확인한 할머니는 ‘1 되’에 3,000원이고 1kg는 1,500원이란다. 또 올해는 도토리가 너무 많아서 가격이 더 내릴 수도 있단다. 나는 그 많은 도토리를 혼자 먹을 수도 없어서 억지춘향 격으로 팔아버렸다. 이래서 장사꾼 돈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던가? 나, 참!


기분이 개운하지 않지만 두 가지 속셈으로 위안을 얻는다. 첫째는 아몬드 꿀밤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말 바꾸기 할머니와 옆에 둘러 선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제일 맛있는 꿀밤’이라고 했다. 우리 산에는 졸참나무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두 번째 위안은 내년부터 도토리를 쉽고 빠르게 주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의 도토리 수확이 기다려진다.


혹시 늦은 나이에 돈이 될라나? 맛있는 아몬드 꿀밤을 쉽고 빠르게 거두어서 묵장사라도 하면 가능하잖아? 인터넷으로 팔아도 되겠네. 1차, 2차, 3차 산업이 다 연결되니까 금상첨화잖아? 내가 도토리 부자로 거듭날 수도 있잖아?

산에서는 꿈이 계속 이어지니까 참 좋다. 가을바람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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