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배 동화> 잘내미야, 부탁해 (4/23)

by 구민성

세상에... 세상에... 세에상에....


4.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효지는 엄마와 아빠가 3층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흥분되어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9시만 되어도 졸음이 몰려왔지만,

오늘은 밤 10시가 넘어도 눈이 말똥말똥했습니다.

10시 20분에 올라온 엄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효지야. 집 청소를 누가 했니?”

“응, 내가 했어.”

“네가? 에이, 설마……. 누가 왔었어? 네 이모가 다녀갔니?”

“엄만… 이모가 왔으면 청소만 하고 그냥 갔겠어?”

“그럼, 이 청소는 도대체…….”

“정말 내가 했다니까.”

“너, 거짓말하면 나쁜 사람 되는 거 알지?”

“엄마! 진짜… 내 말은 왜 안 믿어?”

“아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네가 어떻게 거울까지 다 닦고…….”

효지는 더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이리 앉아 봐.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마.”


마침 그때 아빠도 들어왔습니다.

아빠도 거실을 휙 둘러보더니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어? 집이 왜 이리 깨끗하지?”

“헤헤. 아빠, 잠깐요. 이리 앉아 보세요.”

“왜 그래?”

“하여튼 잠깐만 앉아 봐요.”

효지는 엄마 아빠를 앉게 한 다음 제 방에 가서 잘내미를 안고 나왔습니다.

“아니, 못내미는 왜?”

엄마의 말에 효지는 엄마를 딱 흘겨보면서 말했습니다.

“못내미 아냐. 잘내미지. 치! 내 동생 잘내미라구.”

“하여튼… 그래 무슨 일이야?”


효지는 엄마 아빠가 들을 수 있도록 잘내미에게 말했습니다.

“있지? 잘내미야. 엄마가 피곤하니까 어깨 좀 두드려드리면 좋겠어.”

하면서

“잘내미야, 부탁해.”

라는 귓속말과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잘내미는 입꼬리가 싸악 올라가게 웃으면서 고개를 두 번 끄덕였습니다.

“어어? 이거 뭐야? 이거 왜 이래?”

엄마는 잘내미를 보다가, 효지를 보다가, 다시 아빠를 보며 눈이 바빴습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잘내미는 엄마의 등 뒤로 가더니 엄마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너무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응?”

아빠도 입을 헤 벌리고 놀란 눈빛으로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니, 못내미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데 잘내미가 그만 안마를 멈추었습니다.

효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내미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켰습니다.

귓속말과 이마뽀뽀도 했습니다.

하지만 잘내미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배터리가 다 방전된 로봇처럼 먹통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효지는 엄마가 무심코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엄마가 못내미라고 불러서 기분이 상했을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이런 일을……’ 같은 건 잘내미를 무시하는 말에 가까웠습니다.


효지는 엄마에게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엄마, 이제 못내미라고 하지 마. 잘내미라고 부른다고 약속해.”

“뭐? 잘…내미라고? 그런 약속을 하라고?”

“응, 약속해.”

“나 참, 이거야 원…….”

그때까지 멀뚱 거리며 지켜보던 아빠도 효지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요, 여보. 효지 말처럼 해봐요. 일단 효지를 믿기로 합시다.”

“하, 참!”

“아, 얼른!”

아빠가 재촉하니까 엄마도 마지못해서 사과했습니다.

“못내미… 아니, 잘내미야, 미안해. 앞으론 못내미라 하지 않을게.”

그래도 잘내미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뿔이 단단히 났습니다.

그래서 효지가 처음부터 다시 했습니다.

“잘내미야, 이제 네가 화 풀고 다시 안마해 드려.”

부드러운 귓속말과 이마뽀뽀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잘내미는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안마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엄마는 ‘세상에!’만 연발했습니다.

아빠는 할 말을 잊고 입만 쩍 벌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제 시원하다며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효지가 이번에는 아빠의 다리를 주물러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에이, 괜찮아. 잘내미도 힘들 텐데…….”

하면서도 말만 그랬지 다리를 쭉 폈습니다.

효지가 말했습니다.

“잘내미야, 아빠 다리도 좀 주물러 드려야지.”

라며 귓속말과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잘내미가 싸악 웃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빠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너무 신기하고, 시원하고, 기분도 좋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엄마가 또 물어봅니다.

“효지야. 그럼 3층 청소를 못내미… 아니, 잘내미가 다 한 거야?”

“응. 잘내미가 다아했어.”

“세상에! 세상에!… 세에상에!”

엄마가 조금 놀랄 때는 ‘세상에’를 한 번만 하고,

많이 놀랄 때는 ‘세상에’를 두 번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세 번을 연달아 말하는 것은 효지도 처음 들어봅니다.

“엄마, 오늘 아침에 주방에서 뭐 이상한 거 못 봤어?”

“주방에? 뭐가 이상해?”

“호박 하고 양파 말이야.”

“아~ 그거? 그게 왜?”

“그거… 잘내미가 다 썰었거든.”

“뭐라고? 아니, 가만있어봐……. 그걸 잘내미가?”

“응. 내가 부탁해서 잘내미가…….”

“아하! 그랬구나. 난 또 어젯밤에 내가 썰었나 싶기도 하고… 긴가민가했지.”

“피! 엄만 그렇게도 기억력이 없어?”

“아휴, 얘. 요즘은 엄마가 피곤해서 그런지 정신이 오락가락해. 그런데 정말이야?”

“엄만 지금 보면서도 못 믿어?”

“아니, 못 믿는 게 아니고 하도 신기하고 엄청나서…….”


아빠도 이제 됐다며 안마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놀라움과 감동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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