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배 동화> 잘내미야, 부탁해! (5/23)

by 구민성


형부는 사진 찍느라고 안 보여요. 김치~~~ 찰칵!


<5> 효지만 통해요


이튿날은 일요일이라서 효지가 잘내미를 데리고 2층으로 갔습니다.

2층은 잘내미의 고향입니다.

아빠가 작업실에서 은행나무를 깎아 만들었으니까요.

효지는 잘내미에게 부탁해서 아빠 작업실을 청소했습니다.

작업실에는 대팻밥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나뭇조각까지 복잡하게 늘려 있었습니다.

조각도와 끌이 뒤섞여 있고 숫돌도 넘어져 있었습니다.

아빠는 너무 바빠서 작업실 정리를 자주 못 하는 편입니다.

그것을 잘내미가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했습니다.


잠시 후 작업실에 오신 아빠는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엄마는 놀랄 때 ‘세상에!’를 연발하지만, 아빠는 그냥 입만 쩍 벌립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직접 잘내미에게 부탁했습니다.

“잘내미야, 내가 말이야, 너무 바쁘거든. 그러니까 네가 끌을 좀 갈아줄래?”

아빠는 효지에게 배운 그대로 귓속말과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하지만 잘내미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효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설거지를 부탁해도 잘내미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효지가 부탁해야만 됩니다.


잘내미는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식구가 자신에게 못내미라고 불렀지만, 오직 효지만이 잘내미라고 불렀거든요.

효지는 6:1의 투표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잘내미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부탁해’라고 부드럽게 말했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이마에 뽀뽀도 했습니다.


잘내미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효지에 대해서 두 가지를 더 알고 있었습니다.

직접 만든 아빠도 버리다시피 처박아 둔 것을 효지가 거두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아플 때 울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던 대상도 역시 자신이었습니다.

그때 자신의 이마에 떨어진 효지의 따뜻한 눈물도 잘내미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잘내미는 효지에게 고마움과 신뢰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누가 시킨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4월이 되면 식당 주변에는 꽃들이 피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일이 바쁘지만 짬짬이 꽃을 돌봅니다.

쉬는 시간엔 몸이 피곤해도 꽃을 돌보며 소박한 여유를 느낍니다.

엄마에게는 그것이 휴식 겸 취미였습니다.

한 번은 엄마가 잘내미에게 무거운 화분을 좀 옮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귓속말과 이마뽀뽀도 당연히 했습니다.

하지만 잘내미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효지가 부탁해서 화분을 옮겼습니다.


5월에는 아빠 생신이 있어서 가족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효지는 잘내미의 놀라운 마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잘내미는 효지의 부탁에 따라서 큰언니의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작은언니의 책도 가져왔습니다.

형부의 휴대폰과 오빠의 노트북까지 효지가 말하는 것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엄마와 아빠에게 안마도 했습니다.

숨을 죽이고 보고 있던 가족들에게 효지가 말했습니다.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만!”

효지가 잘내미에게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어머머! 어머머!”

큰언니는 어머머 외에 다른 말을 못 했습니다.

“말도 안 돼.”

제일 짧게 네 글자로 딱 잘라서 말한 사람은 형부였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충격을 많이 받은 작은언니의 눈은 오늘 최고로 커졌습니다.

“완전 대박 마법이네!”

가장 큰 목소리는 오빠였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의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거의 동시에 터진 탄성이었습니다.


효지가 가르쳐주는 대로 큰언니부터 실습을 해봤습니다.

춤춰봐라. 물 떠 올래, 팔 굽히기 해봐라 등등 몇 가지를 했지만 아무것도 안 되었습니다.

잘내미는 효지의 말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누구든지 효지를 통해야만 합니다.

설날에 6:1로 투표했던 그 여섯 사람이 효지에게 부탁을 해야만 되니까

효지는 자기가 대장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다시 투표를 하지 않았지만 가족 모두 잘내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건배 제의는 효지가 하겠다고 먼저 나섰습니다.

“에헴! 여러분! 우리 집에는 못내미가 없고 잘내미만 있습니다. 저는 잘내미를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모두 사랑해 주세요. 잘내미를 위하여!”

효지가 크게 외치니까 모두 복창을 했습니다.

“잘내미를 위하여!”

효지는 잘내미에게 춤을 추도록 부탁했고 작은언니는 식구들에게 동요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잘내미는 춤을 추고 식구들은 모두 손뼉을 치면서 그 노래를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

올해 아빠 생일잔치는 더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언니들과 형부와 오빠는 아빠의 생일 선물을 몇 가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효지는 잘내미와 함께 아빠 어깨를 두드려 드렸습니다.

아빠는 기분이 좋아서 계속 허허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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