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또 한 번의 기적
아, 이 기쁨.... 금진아, 고마워^!^
효지는 엄마로부터 아까 낮에 경찰관이 왔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뭔가 기대를 하는 눈치였지만 효지는 여전히 어깨가 처져있었습니다.
효지는 제 방에 가서 스케치북을 폈습니다.
그리고 크레파스로 잘내미를 그렸습니다.
헤어진 지 6일 지났지만 마치 몇 달이 흐른 것처럼 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그림이지만 잘내미를 보니 또 눈물이 나왔습니다.
눈물은 크레파스 칠 위에 스며들지 않고 그냥 또르르 굴렀습니다.
효지는 잘내미의 침구로 쓰던 타월 세 장을 다시 꺼냈습니다.
한 장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스케치북을 놓았습니다.
또 한 장은 덮고, 마지막 한 장은 세 번 접어서 베개처럼 머리 쪽을 받쳐주었습니다.
눈물이 자꾸만 흘렀습니다.
“잘내미야, 어딨니? 보고 싶어 죽겠어. 빨리 돌아와 줘.”
라고 말하고
“잘내미야, 부탁해”
하며 귓속말과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그림 속의 잘내미가 웃었습니다.
입술의 양 끝이 싸악 올라가는 그 미소였습니다.
꿈인가 싶어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니 아팠습니다.
효지는 1층으로 엄마를 찾아갔습니다.
지금까지 효지의 걸음이 그렇게 빨랐던 적은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 이것 봐! 잘내미가 웃고 있어!”
하며 스케치북을 엄마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림 속의 잘내미는 웃지 않았습니다.
효지는 방금 그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쯧쯧, 얼마나 그리우면 헛것까지 보였을까?’
엄마는 효지가 불쌍해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효지는 하릴없이 제 방에 와서는 잘내미를 아까처럼 눕히고
“제발 돌아와 줘! 잘내미야, 부탁해.”
라고 귓속말을 하면서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잘내미가 웃지 않겠습니까?
효지는 벌떡 일어나서 스케치북을 들고나가려다 그냥 앉았습니다.
그리고 스케치북을 아까처럼 눕혔습니다.
잘내미가 없어진 후 6일 동안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다가 효지는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이었습니다.
잘내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나! 나 여기 있어. 얼른 꺼내줘. 답답해. 헉헉.”
효지는 깜짝 놀라서 소리 나는 곳이 어딘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잘내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조금 더 들리더니 잠잠해졌습니다.
효지는 겁이 나서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잘내미야! 잘내미야! 죽지 마!”
“얘! 효지야. 일어나.”
그때 엄마가 효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효지가 눈을 떠보니 온몸에 땀이 흥건했습니다.
엄마는 또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쯧쯧, 얘가 오죽하면 꿈까지 꿀까?’
아침 식사 시간에 효지는 방금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쓰레기? 산더미처럼 많더라고?”
아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시청에 전화해서 쓰레기 처리장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효지를 차에 태우고 급하게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신호대 앞에서 차를 돌렸습니다.
3년 전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오빠가 자전거를 잃어버렸는데 며칠 만에 찾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공사장 옆의 쓰레기더미에서 금진이가 찾았습니다.
금진이는 냄새를 아주 잘 맡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빠는 금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효지는 가는 동안에 계속 가슴이 뛰었습니다.
2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쓰레기 처리장이었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아저씨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뒤져야 좋을지 막막했습니다.
아빠는 금진이의 목줄을 풀면서 말했습니다.
“금진아, 네 동생 잘내미를 찾아봐. 꼭 부탁해.”
줄에서 풀려난 금진이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냄새를 맡았습니다.
TV에서 봤던 사고 현장의 구조견처럼 재빠르고 의젓했습니다.
“컹! 컹!”
한참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금진이가 걸음을 멈추고 크게 짖었습니다.
마치 ‘여기 있어요.’하는 것처럼 컹컹 짖었습니다.
아빠가 뛰어가 보니 그곳에는 커다란 냉장고가 넘어져 있었습니다.
금진이는 계속 짖고 아빠와 효지는 냉장고를 조금 움직였습니다.
아! 있습니다! 잘내미가 그 냉장고 아래에 깔려서 머리만 밖으로 약간 보였습니다.
그런데 냉장고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아빠는 주위를 살피더니 굵은 각목을 구했습니다.
그것을 지렛대 삼아서 냉장고를 옆으로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이윽고 효지는 잘내미를 품에 안았습니다.
비록 이마 쪽에 조금 긁히고 옷이 더러워졌지만 그래도 효지는 더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잘내미의 이마, 볼, 코, 눈, 그리고 때 묻은 멜빵바지까지 빠짐없이 뽀뽀했습니다.
금진이는 계속 공중회전을 하고 효지는 울었습니다.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효지는 잘내미에게 말했습니다.
“잘내미야, 고생 많았지? 이마를 긁혔구나. 아팠어? 이제 괜찮아. 웃어 봐.”
하면서 귓속말과 이마뽀뽀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잘내미가 또 싸악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잘내미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효지는 눈물이 또 흘렀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효지는 금진이의 귀를 접으며 만져주었습니다.
금진이는 그렇게 만져 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집에 오니 엄마도 잘내미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효지는 얼른 욕실에 가서 잘내미를 목욕시켰습니다.
옷도 빨아서 건조대에 널었습니다.
효지는 잘내미와 온종일 놀다가 밤에는 꼭 안고 잤습니다.
꽃밭에서 잘내미와 천사들과 함께 춤추는 꿈도 꾸었습니다.
다음날, 효지는 잘내미와 식당에 내려갔습니다.
자주 오던 손님들은 금세 알아보고 반가워했습니다.
아빠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노인 경로잔치를 열었습니다.
동장님과 의논하여 혼자 사시는 노인 열다섯 분을 모시고 음식 대접을 했습니다.
노인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효지가 착해서 잘내미를 찾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잘내미도 오랜만에 식당에서 거들었습니다.
빈 그릇을 챙기는 것도 아주 능숙했습니다.
그릇을 크기별로 착착 챙겨서 주방으로 갖다 주고 식탁도 깨끗이 닦았습니다.
엄마와 고모는 신이 나서 자꾸만 벙글벙글 웃었습니다.
아빠는 돼지 족발을 주문해서 금진이에게 다 주었습니다.
금진이는 그걸 게눈 감추듯이 다 먹어버렸고요.
지금처럼 금진이가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은 최고로 행복할 때의 동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