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최 노인의 끈질긴 탐욕
범인은 도청 장치를 이용하여.... 나쁜 짓을....
활기를 되찾은 식당의 이야기는 경로잔치를 통해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최 노인도 물론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버렸는데 그게 며칠 만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니까요.
직접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밥 먹으러 가는 척하고 식당에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틀림없는 잘내미였습니다.
게다가 서빙도 하고 노래에 맞추어 춤도 추는 거였습니다.
‘이거야, 원. 우리 집에서는 꼼짝도 안 했는데 저게 어찌 된 일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돈만 1억 원을 날렸다는 억울한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생각할수록 속이 상하고 손가락도 떨렸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온 최 노인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경찰서에 전화했습니다.
김동식 경장을 찾아서 호통을 쳤습니다.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큰소리로 퍼부었습니다.
“여보시오. 김 경장! 그 식당에 목각인형이 돌아왔어요.”
“네? 돌아왔다고요?”
“그렇소! 내 눈으로 똑똑히 봤소.
“아, 네… 그렇습니까?”
“당신이 날 의심했는데 이제 어떡할 거요? 또 날 의심할 거요?”
최 노인은 김 경장에게 퍼부었습니다
“아이고, 최 사장님. 죄송합니다. 의심이 아니라 그냥 참고 삼아서……”
“그만두시오. 참고는 무슨 얼어 죽을 참고요? 다음에 또 의심하면… 그때는 나도 참지 않겠소.”
“네, 네. 죄송합니다. 잊어주십시오, 사장님. 네, 네.”
“조심하란 말이오! 경찰이면 다야?”
김 경장은 거듭 사과하면서 쩔쩔맸지만 최 노인은 한 마디 더 쏘아붙였습니다.
최 노인은 그나마 속이 약간 풀린 듯했습니다.
식당에는 여전히 손님이 많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효지도 심부름을 하고 잘내미도 서빙을 많이 도왔습니다.
가끔 잘내미는 금진이와 마당놀이를 했습니다.
금진이는 공중 점프를 하고 잘내미는 텀블링을 했습니다.
손님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습니다.
토요일 점심시간에 최 노인이 또 왔습니다.
그는 식사 중에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동작을 딱 멈추었습니다.
젓가락을 입에 물고 갈색 안경 속에서 눈알을 천천히 굴렸습니다.
효지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고 이마뽀뽀를 하니까 잘내미가 움직였습니다.
바로 그것을 본 것입니다.
과연 저 귓속말이 무슨 내용인지 그게 궁금했습니다.
‘저 귓속말만 알아내면 되겠는데…….’
하고 궁리하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서 권병기에게 전화했습니다.
20분 후에 두 사람은 또 만났습니다.
최 노인은 권병기에게 효지의 귓속말이 무슨 내용인지 알아내고 다시 훔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권병기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영감, 또 지난번처럼 돈을 돌려달라거나 반씩 나누자고 할 거요?”
“아니, 그건 아니고… 하여간 이번엔…….”
“그래, 얼마 주겠소?”
“…… 1억 원이면 되겠소?”
권병기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이 적다고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겨우 1억 원이요?”
“겨우라고? 아니, 전에도 1억 원 아니었소?”
“하, 참! 그땐 갖고 오기만 했지요. 이번에는 귓속말이 뭔지도 알아내라면서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권병기는 1억 원에도 만족했지만, 더 받기 위해서 버텼습니다.
최 노인은 입술이 바싹 말라서 침을 묻히면서 물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거요?”
“2억 원을 주시오.”
“2억 원이라고요? 너무 많지 않소?”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1억 5천만 원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권병기는 복이 터졌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일부러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최 노인은 돈을 엄청나게 많이 준다고 말했지만, 처음의 3억 원보다는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병기는 첨단도청기를 샀습니다.
그것은 손톱 크기밖에 안 되지만 성능은 무척 좋습니다.
그걸 갖고 비 오는 날 밤에 효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잘내미의 옷 안쪽에 도청기를 살짝 끼워놓고 나왔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귓속말의 비밀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 비밀을 알아내고 저 목각인형을 한 번 더 갖고 나오면 1억 5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흐흐흐, 기분 좋네. 오늘은 술이나 한잔해야지.’
권병기는 동네 편의점에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좀도둑처럼 훔치지 않고 폼 나게 돈을 내고 샀습니다.
평소에 먹고 싶었던 고급 포도주를 사고 달콤한 빵과 비싼 안줏거리도 제법 푸짐하게 샀습니다.
좁은 방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실컷 마시고 먹었습니다.
다음날 권병기는 식당 옆 골목에 자신의 고물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효지가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차 안에서 도청 장비의 주파수를 맞추었습니다.
“칙칙… 직… 치직치직…”
약간의 잡음이 들리더니 금세 깨끗한 음질이 잡혔습니다.
곧바로 효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내미, 안녕?”
신기할 정도로 숨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유리창을 통해서 효지의 모습도 잘 보였습니다.
‘세상 참 좋구나.’
하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효지의 밝은 목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잘내미야, 빈 그릇 챙겨서 엄마께 갖다 드려.”
그 말은 크게 들렸습니다.
이어서
“잘내미야, 부탁해.”
라는 말은 훨씬 작은 소리지만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본래 애들 목소리는 또랑또랑하니까요.
효지가 귓속말과 함께 이마뽀뽀를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목각인형이 그릇을 챙겨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제 비밀을 다 알았습니다.
그러나 권병기는 철저한 확인을 위해서 조금 더 기다려봤습니다.
잠시 후에 효지가 또 말했습니다.
“잘내미야, 거기 선풍기 이쪽으로 옮겨줘.”
그 말도 크게 들렸습니다.
곧 이어서
“잘내미야, 부탁해.”
라며 귓속말과 이마뽀뽀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잘내미가 선풍기를 옮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나이스!”
권병기가 불끈 쥔 주먹을 아래로 힘차게 내리면서 혼자 외친 소리였습니다.
‘됐어! 답을 다 알았어. 잘내미야, 부탁해. 이게 답이구먼. 인제 비 오는 날 저놈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흐흐… 1억 5천만 원이 들어온단 말이야. 흐흐흐…….’
권병기는 차 안에서 최 노인에게 전화했습니다.
“영감, 귓속말 내용을 알았는데 돈을 준비해 두쇼.”
“그래요? 그 내용이 뭔데요?”
“이거 왜 이러십니까? 돈을 받아야 가르쳐주지. 영감 지난번에 하는 수작을 보니 내가 조심해야 되겠더라고요.”
이렇게 권병기는 남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에이, 그건 이미 지난 이야기니까 그만두고…….”
“아, 줬던 돈도 되돌려 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내가 돈도 안 받고 가르쳐 주겠습니까? 어림없지요.”
권병기는 솔직한 말을 버르장머리 없이 해버리는 스타일입니다.
“알았소. 돈을 준비해 둘 테니 그 인형이나 갖고 오시오.”
최 노인은 똑같은 물건을 두 번이나 사는 게 아까웠지만,
그래도 주인에게 3억 원을 주는 것보단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아주 비싸게 팔아서 큰돈을 남긴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아니, 흐뭇했습니다.
‘일본에 가서 팔아야지. 국내에서는 돈도 많이 못 받고 위험하거든. 흐흐흐…….’
마침 장마철이라서 비 오는 날이 많습니다.
오늘도 전국적으로 100밀리 이상의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이젠 비 오는 날에 만능열쇠만 있으면 마음대로 효지 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권병기는 감쪽같이 효지 방에 들어가서 잘내미를 안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 노인을 찾아가서 1억 5천만 원을 현금으로 받고 잘내미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돈 가방을 가슴에 안고 귓속말의 비밀을 최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귓속말은, ‘잘내미야, 부탁해.’인데 이마뽀뽀까지 해야 합니다.”
“아, 그래요? 이마뽀뽀는 나도 봤으니 됐고…….‘잘내미야, 부탁해’라고?”
딱 일곱 글자가 그렇게나 비싸다니, 최 노인은 기가 차서 즉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혹시 권병기가 보고 탐을 낼까 걱정되어 얼른 끝내었습니다.
권병기를 보낸 최 노인은 지하실에 내려가서 확인했습니다.
“잘내미야, 맨손체조 해봐.”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잘내미야, 부탁해.”
라는 귓속말과 이마뽀뽀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잘내미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최 노인은 또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어? 이거 또 왜 이래? 권 씨 그 사람이 사기 쳤나?”
최 노인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물을 마시다가 물컵을 입에 물고 딱 멈추었습니다.
뭔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어린 계집아이가 하던 말을 늙은 내가 하니까 안 될 거야.’
최 노인은 부리나케 1층에 가서 일곱 살짜리 손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얘, 신혜야. 할아버지가 부탁이 있는데, 너 말이야…….”
하면서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신혜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해봤습니다.
“잘내미야, 빗자루로 청소해 봐.”
라는 말은 크게 하고
“잘내미야, 부탁해.”
라는 귓속말과 이마뽀뽀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잘내미는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마치 플러그 빠진 선풍기의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돌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혜의 눈은 똥그랗고 최 노인의 눈은 공허하기만 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최 노인의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습니다.
최 노인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머리가 욱신거리고 가슴은 뭐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왜 안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뜬눈으로 뒹굴다가 새벽에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날리고 권 씨만 좋은 일 시켰네. 이걸 어떻게 보상받나?’
후회와 허탈감에 빠져 자기 머리를 쥐어뜯다가 손을 딱 멈추었습니다.
‘가만있자. 식당 주인이 또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다시 나를 찾아올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안돼! 저 빌어먹을 나무토막을 빨리 버려야 해.’
그는 잘내미의 몸에서 지문을 지우기 위해 수건으로 잘 닦았습니다.
그런 다음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허겁지겁 차에 올랐습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사방은 어둑했습니다.
이걸 어디에다 버릴까 생각하다가 새로 생긴 골프장을 떠올렸습니다.
그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조용한 시골길이라 새벽에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으슥한 숲의 옆길에서 차창을 내리고 잘내미를 던져버렸습니다.
잘내미는 웃자란 풀숲에 푹 파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