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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Oct 30. 2021

인도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도에서의 여성의 삶, 여자의 삶

   

인도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 여자란 하층민 여자를 의미한다. 상류층 여자는 여자가 아니고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누리며 살아가는 여성이다. 어느 20대 여인에게 여자라는 힌디어 단어 ‘오라뜨’를 사용했더니 그녀가 나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자기에게 ‘오라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그 단어는 하층민 여자들에게 사용하는 단어라고, 기분 나쁘다고... 그때 알게 되었다. 인도에는 여자(오라뜨)와 여성(마힐라, 쓰뜨리)이라는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2002년 6월 아시안 게임이 한창일 때 나는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인도 땅을 처음 밟았다. 남편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한국에 남게 되었다. 남편 없이 처음으로 밟은 인도 땅에서 집을 얻고 정착을 하고 아이들 학교까지 입학시키면서 인도 살이를 진하게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인도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를 보내주어야 했기에 은행계좌를 개설해야만 했다. 마침 우리 집 가까이에 HSBC(홍콩은행)가 있었다. 나는 인도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판자비라고 하는 인도 여인들이 입는 슈트를 한 벌 사서 입고 은행에 갔다. 인도에는 영국 식민지 영향인지 모르지만 여성은 은행이나 관공서에 갔을 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고 누군가가 귀띔해 주었다. 나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도에는 워낙 인구가 많아서 어디를 가든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역에서 티켓을 사거나 은행이나 우체국 볼일을 한번 보려면 기본적으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은행 문을 들어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아이코 어쩌지 큰일 났네’라고 생각하면서 은행 안을 살피고 있는데 몇몇 아주머니들이 길게 늘어진 줄에 서지 않고 따로 서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새치기를 했다. 너무도 당당하게..... 아무도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여성들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앗싸! 나도 저 아주머니들처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여자로 태어난 사실에 감사했다.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어 줄을 서지 않고 직원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직원이 내 모습을 잽싸게 스캔하더니  갑자기 소리를 냅다 질렀다.     


“당장 뒤로 가서 줄 서! “

     

사람들이 직원의 고함 소리에 놀라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피가 멎는 줄 알았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창피하든지 빨개진 얼굴을 숨기느라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길고 긴 줄 맨 끝으로 가서 섰다.  

‘이게 무슨 일이지? 좀 전에 그 여자들은 줄 서지 않았는데도 친절하게 받아주더니 도대체 이게 뭐지? 인도에서는 여자들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잘못된 정보였나?’ 한참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려서 보니 줄 사이사이에 서 있는 여자들이 보였다. ‘이건 또 뭐지? 이 여자들은 왜 줄을 섰지?’  혼란스러웠다. 그날 집에 가서 은행에서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왜 같은 여자이면서 은행 직원에게 무시당하고 다른 아주머니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는지를..... 줄을 서지 않았던 아주머니들은 한결 같이 옷차림이나 얼굴이 귀티가 줄줄 흐르는 상류층 마담들이었고 반면 줄을 서 있었던 여자들은 꾀죄죄한 얼굴과 옷차림을 한 하층민 여자들이 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마음이 씁쓸했다. 인도인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인도 여자처럼 하고 은행에 간 것이 실수였다. 한국 사람의 얼굴이 인도인들이 무시하는 네팔의 하층민 종족 중 한 종족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인도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사는 나라 잃은 티베트인들과도 흡사하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인도인들이 정말 싫어하는 인도 동북부 나갈랜드나 마니 뿌르 사람처럼 생겼고 인도인들과의 영원한 앙숙인 중국 사람과도 많이 닮았다. 그래서 불이익을 당할 때가 많다.    

  

일주일 후에 다시 은행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투피스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구두를 신고 있는대로 멋을 냈다. 우아하고 세련되고 귀티나는 외국인 마담의 모습을 하고 지난주에 갔던 HSBC 은행에 갔다. 이번에도 줄을 서지 않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창피를 주었던 그 직원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그 직원은 나를 쳐다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반겨 주었다.   

  

“어서 오세요 마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난 마음속으로 쏘아붙혔다. ‘지난주에 당신이 뒤로 가서 줄 서라고 소리 질렀던 그 여자가 바로 나야 나.'     

인도 살이가 몇 주 밖에 되지 않았을 때라 힌디어를 전혀 몰랐기에 그 직원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같으면 당당하게 '고객은 왕'이라고 말해 주었을 텐데...


인도에서는 하층민 여자는 줄을 서야만 하는 여자이고 상류층 여자는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줄을 서지 않고도 대환영을 받으며 은행 볼일을 빠른 시간 내에 볼 수 있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남편이 4개월 후에 인도에 들어와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인도에는 카스트 때문에 파출부나 청소부를 따로 두는 문화가 있다. 상류층 사람들이 빗자루를 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소는 하층민들이 하는 일이라고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 한국 사람으로서 나는 사람을 부리는 일이 어렵고 맘이 불편해서 청소부 없이 몇 달을 살았다. 당연히 우리 집 청소는 내 차지였다. 인도 도심에는 먼지가 워낙 많아서 매일 베란다를 청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하다가 옆집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베란다로 나오면 나는 ‘나마쓰떼’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이게 뭐지?’ 완전 무시를 당하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인사를 하면 반갑게 인사를 받고 안부를 묻기까지 했다.  

‘이건 또 뭐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남편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Mr. Lee, 베란다 청소하고 있는 저 여자 한국에서 데리고 온 파출부인가 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급당황해서 베란다 청소를 멈추고 옆집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남편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아니요, 제 아내입니다. “     


옆집 아저씨는 쏘리~ 하면서 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바로 청소부를 구했고 다시는 인도인들이 보는 앞에서 청소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온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웃사람들에게 외국인 마담 대우를 받으며 맘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에서 온 파출부 여자였는데 내 신분이 밝혀지면서 나는 여성이 되었다. 인도에서 하층민 여자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마음이 씁쓸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최근에 또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인 10대 소녀를 집단성폭행하고 살인한 사건이 일어나 하층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성범죄의 대상은 대부분 하층계급의 여성들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몇 년 전부터 인도 길거리에 이런 슬로우건이 많이 보인다.  

    

“딸을 구해라. 딸을 가르쳐라(베띠 바짜오, 베띠 씨카오)”      

 

이 말이 나에게는 ‘여자를 구해라. 여자를 가르쳐라’로 들린다. 인도 여인들에게 서광이 비치고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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