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a Nov 03. 2021

원숭이는 소매치기의 달인이다

원숭이에게 소매치기당한 그 날 

원숭이는 소매치기의 달인이다. 우리 가족은 인도 북쪽 우트라칸 드 주 수도인 데라둔이라는 곳에서 약 10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데라둔은 근교에 우거진 숲이 많고 눈 덮인 히말라야가 보이는 머수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겨울에는 맹수들이 출현하여 집 짐승은 물론이고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원숭이가 사시사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원숭이들은 행인들의 손에 들려있는 먹거리들을 낚아채려고 자나 깨나 작전을 짠다. 일단 어린아이의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이 원숭이들의 첫 번째 타깃이다. 그다음은 여자다, 그다음은 성인 남자인데 남자의 손에 있는 음식을 빼앗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므로 신중하게 접근한다. 과일 가게를 지나가다 보면 원숭이와 가게 주인이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잽싼 원숭이는 주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미리 점찍어 놓은 바나나나 파파야 혹은 망고등을 훔친다. 그리고 높은 담벼락이나 지붕에 올라가서 손으로 야금야금 맛있게 먹는다. 늦게 이 사실을 안 주인은 화가 나서 지붕 위에 있는 원숭이를 향해 소리를 친다. 한편 도로가에 얌전히 앉아 있는 원숭이 가족들에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먹거리를 던져준다. 힌두교도들에게 원숭이는 신이기 때문이다. 




 막내딸이 네 살쯤 되었을 때 일이다. 길에서 바나나 파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바나나를 사달라고 졸라서 바나나 반 더즌(6개)을 샀다. 바나나 6개면 한화로 500원 정도다. 딸은 집에 가서 먹겠다고 하면서 기어코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우겼다. 살짝 무거워하면서도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한손에는 바나나를 한손에는 내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팔고 있을 때 순간 딸이 “안돼, 내거야”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멍숭이가 내 바나나 뺏어 갔어. 내 바나나~” 


 당시 딸은 원숭이를 영어 멍키와 한국어 원숭이를 합해서 멍숭이라고 불렀다.

원숭이에게 순식간에 바나나를 빼앗긴 어린 딸은 엄청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달래서 과일 장수에게 가서 바나나 여섯 개를 다시 샀다. 딸이 말했다. 


 “엄마가 멍숭이보다 힘세니까 엄마가 들고 가. 내 바나나 빼앗아간 멍숭이 나빠. 그치 엄마? 

엄마가 멍숭이 꼭 혼내 줘. 알았지? “ 


”알았어, 엄마가 우리 딸 바나나 빼앗아 간 나쁜 녀석 꼭 혼내줄게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원숭이가 너무 무서웠다. 원숭이가 여자와 아이 알기를 자기 발바닥 때보다 더 하찮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다시 산 바나나를 일단 옷 속에 감추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원숭이 때문에 온통 긴장을 하면서 딸 손을 잡고 빛의 속도로 집으로 날아왔다. 경찰에 쫓기는 도둑놈 마냥......



 

하루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몇몇 한국인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시원한 냇가로 소풍을 갔다. 인도 한여름은 살아남기가 정말 힘들다. 다행히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는 산악지대라 다른 곳 보다 좀 시원한 편이다. 그래도 한여름엔 섭씨 40도 정도 기온이 올라간다. 여름방학이라 아이들이 집에만 갇혀 있으니 좀이 쑤시고 답답해서 힘들어했다. 그래서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넣어 주려고 가까운 냇가로 소풍을 가기로 부모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오랜만에 물가로 소풍을 간다고 생각하니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조차도 모두 들떠 있었다. 이것저것 먹거리들을 집집마다 준비했다. 일단 점심은 가장 쉬운 닭죽을 끓여 먹기로 하고 생닭과 마늘과 쌀을 넉넉히 준비했다. 망고 시즌이라 살이 오통통 오른 탐스럽고 샛노란 망고를 잔뜩 샀다. 아이들까지 합하니 약 20명이나 되었다. 동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라 각자의 차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시원한 냇물이 흐르고 있고 큰 나무들이 많아 소풍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격렬하게 환영해 주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원숭이 부대였다. 영리한 원숭이들은 우리가 나타나자마자 오늘이 잔칫날이구나 싶었는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느라 무지 시끄러웠다. 덩치 좋은 대장 원숭이가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진두지휘를 하고 졸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원숭이와 전쟁을 치른 경험이 많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바나나 한 개라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약 40개나 되는 눈으로 보초를 섰다. 가지고 온 음식 박스를 조심조심 풀면서 가능한 원숭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뚜껑을 덮고 돌로 누르고 온통 지혜를 모으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순간 준이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앗! 안돼! 안돼! 내놔 당장!” 


 모두가 놀라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우람한 원숭이 한 마리가 빨간 엉덩이를 씰룩 씰룩거리면서 쌀 봉지를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하필이면 쌀을 가져가다니” 


우리는 작전을 다시 짰다. 어쩔 수 없이 원숭이를 회유하는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야 한 끼 굶어도 괜찮지만 오랜만에 소풍 와서 신나 있는 아이들에게 강제로 금식을 시킬 수는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이들은 벌써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코를 벌름거린다. 맛있는 점심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원숭이에게 그 녀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나나와 망고를 내밀었다. 이거 줄 테니 제발 쌀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원숭이는 보란듯이 쌀 봉지를 들고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 앉아서 자기에게  쌀을 구걸하는 인간들을 가소롭다는 듯이 이빨을 한 번씩 드러내 보이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들 과자 봉지를 내 보이며 이것도 줄 테니 제발 쌀만 돌려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때 다른 원숭이가 뭐라 뭐라 신호를 보냈다. 아마도 절대로 돌려주지 말라고 한 것 같았다. 쌀 봉지를 들고 있던 원숭이는 그 봉지를 손으로 찢기 시작했다. 우린 ‘안 돼~~~~“라고 일제히 소리를 질렀지만 그 원숭이는 두목의 명령을 받았는지 결국 쌀 봉지를 보란 듯이 격하게 찢었다. 그리고 쌀을 나무 아래로 뿌리고 던지면서 우리 모두의 약을 바짝 올렸다. 그리고는  대장의 인솔 하에 원숭이 부대들은 다른 곳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원숭이에게 주식인 쌀을 뺏긴 우리는 너무나도 황망하고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다. 한참 동안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쌀을 사러 가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고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날 점심은 약간의 삶은 닭과 과일이 다였다. 뭐니 뭐니 해도 곡기가 뱃속에 들어가야 힘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 원숭이에게 쌀을 빼앗겨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보니 몸도 마음도 가라앉고 울적했다. 그날 배가 고파서 계획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밥부터 얼른 해서 식탁을 차렸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인 우리가 동물인 원숭이에게 패배를 당한 것이 너무 억울해서 밥을 먹는 내내 우리 가족은 원숭이들을 마구마구 욕해 주었다.




원숭이가 똑똑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능이 세 살짜리 어린이의 지능과 같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았다. 늘 인간들에게 신으로 섬김을 받던 원숭이들이 자기들을 전혀 신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 이상한 나라 인간들을 보고 앙심을 품고 이 난리 법석을 떤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여럿이 함께 당한 사건이라 그래도 웃을 수 있었고 지금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한국에서 가끔 공원에 갇혀 있는 원숭이를 보면 어김없이 그때 일이 생각나서 맥 빠진 웃음이 나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