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넘어

아메리카노

by 인디 탐험가


공원 가운데에 있는 정자에 누웠다. 허리가 다치지 않게 신경 써서 바닥에 눕자, 태양이 버럭! 하고 내 눈을 쏘아댔다.

잔소리를 손바닥으로 쳐내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곤 두 손을 뻗어 눈앞을 휘저었다.

하지만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가듯 햇빛이 반짝이며 내 손가락 사이를 꿰뚫고 내리쬐었다.

햇빛을 피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한숨, 아니 두 숨 정도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할머니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해는 내가 드러눕기 전보다 한뼘넘게 위로 자리를 옮겨갔다.

새삼 정자라는 구조물은 지붕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지붕이 우쭐대며 위에 버티고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생색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거 제건데요”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할머니를 향해, 한마디 했다.

다른 사람 꿈에 실수로 들어온 불청객 대하듯,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말을 뱉은 건 그저 내 머릿속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 여기 있던 아메리카노 제거예요”

“그래~? 알았다. 깔깔깔” 하고 친구들과 눈을 맞추곤 깔깔깔 웃음을 나누셨다. 망할 할망구 같으니라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렇게 빨리 화가 난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들은 계속 수다를 떨었고 나는 경직된 자세로 앉아 화의 크기를 가늠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왠지 우리 외할머니가 자꾸 생각났다. 딱히 할머니들이라서라기보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항상 이런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분명 행복했던 기억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유화처럼 겹겹이 쌓여서 결국은 최종적인 것, 그 표면이 우선시되는 것.

밑그림이 수정에 수정을 거쳐 최종본이 밑그림과 동일한 대상인 경우가 있는 반면에 그림위에 다른 그림이 겹겹이 쌓여 캔버스 위에 덧입혀진 물감의 두께가 캔버스의 두께를 훌쩍넘어버린 경우도 있다.

반고흐의 올리브 나무그림 아래는 인물화가 있다.

그 인물은 올리브 나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외할머니와의 밑그림에 대한 기억이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그당시 즐거운 마음, 즐거운 그림을 영원히 이어나가, 언젠가 근사하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어린 나에겐 존재했다.

하지만 언젠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외할머니는 내 아메리카노나 뺏어 마시는 심술궂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심술궂은 외할머니와 내 바램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걸지도 모른다. 그럴수도 있다.


눈을 번쩍 하고 떴다. 이번에도 생각뿐인지 아니면 진짜 눈을 뜬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눈앞에 까만 배경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손을 뻗어도 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강아지를 데리고 러닝을 하는 여성도,

갈색 뿔테안경에 슬림한 정장을 차려입고 벤치에 늘어진 남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내 주변에 둘러앉은 할머니들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저 멀리서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신음소리에 가깝다.

힘을 쓸 때 나는 신음 소리이다.

흣!

흣!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신음 소리는 반복되었다.

흣!

흣!

흣!

나는 손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피부에 닿는 차가운 물체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잡아챘다.

그리곤 연속해서 본능적으로 확, 잡아 돌렸다.

마치 원래 한 동작이였던 것 처럼.

본능을 뒤따라온 의식은 그게 문고리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발을 뻗고있었다.

그러니 머리는 발보다 한참 뒤에 영문도 모른채 딸려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발이 뇌로부터 독립한 걸지도 모른다.

뇌의 지시 없이 발은 기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이제 아무 상관없다.

나는 그런 세상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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