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씻고 나와 머리를 말렸다.
밤 11시가 다 되어
드라이어 강풍은 조심스러웠기에
약풍으로 천천히 머리를 말렸다.
바람은 약하지만
빠져야 할 머리카락들은
강풍으로 말렸을 때만큼이나 많이
우수수 빠져버린다.
바닥에 제법 떨어진
긴 머리카락들을 멀리있는 것부터
불러 모아 잘 정돈해 본다.
나의 긴 머리카락들은
모양이 참 이상했다.
매직 펌을 한 지
3개월~4개월쯤 되어서 그럴까,
모근 쪽부터 몇 센티 정도는
꼬불 하기도 하고 휘어져있기도 한데
그 아래쪽 긴 부분은
모든 머리카락들이 꼿꼿한 모양이다.
내 머리카락의 아랫부분은
펌 약과 열
그리고 약간의 스킬에 의해
잘 다려져 있었다.
모든 머리카락은 같은 길이 만큼
구불거리거나 넘실거렸다.
그 아래는 딱 각이 잡혀 있는
이상한 모양이었다.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쓱쓱 모았다.
매일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이
참 많기도 하다 싶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빠를 닮아 곱슬머리다.
곱슬머리가 싫어서,
누가 보기에도 더 세련되고
예쁜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싶어서
일 년에 두어 번
매직 펌을 하여 잘 펴준다.
펌을 해주고 나면
어느 정도 기간은
맘에 드는 헤어스타일로
잘 지낼 수 있다.
펌을 하지 않은 상태의 머리카락이
지금 있다면 모근부터 끝까지
심하게 곱슬거리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곱슬머리.
인위적으로 펌을 하여 다려진 머리카락은
내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모두의 안위를 위해
잘 다려진 모양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
바닥에 모아놓은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니
모근쪽에는 원래의 내 모습인
곱슬한 모양이 열심히 자라나있다.
그 중 몇몇은 운명을 맞이하여
두피에서 탈락되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내 머리카락들은
점점 더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곱슬거리며 자라나겠지.
불화를 피하기만고 도망치는 나의 모습을
위선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잘 포장하며 웃는 낯을 많이 보였다.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부딪혀본 적은 없이
잘 참아넘겼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게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불쑥 불쑥 그게 아니다 싶은
칼날 같은 마음이 자라나있다.
원래의 내 모습은 곱슬머리이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곱슬머리는
매직으로 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곱슬머리도 뭐가 어때라며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데
나는 내 마음속의 다른 생각을
너무나 잘 알면서
자꾸만 모른척하니
그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다른 사람은 모르게
더 두껍고 높은 벽을 치게 된다.
본래의 나.
곱슬머리인 나.
싫은 것이 분명한 나를 들여다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처럼
진짜가 아닌 것이 더 많은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