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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곱슬머리

by Anna Mar 19. 2025

늦은 밤 씻고 나와 머리를 말렸다.

밤 11시가 다 되어 

드라이어 강풍은 조심스러웠기에

약풍으로 천천히 머리를 말렸다.

바람은 약하지만 

빠져야 할 머리카락들은 

강풍으로 말렸을 때만큼이나 많이

우수수 빠져버린다.

바닥에 제법 떨어진 

긴 머리카락들을 멀리있는 것부터

불러 모아 잘 정돈해 본다.

나의 긴 머리카락들은 

모양이 참 이상했다.

매직 펌을 한 지 

3개월~4개월쯤 되어서 그럴까,

모근 쪽부터 몇 센티 정도는 

꼬불 하기도 하고 휘어져있기도 한데

그 아래쪽 긴 부분은 

모든 머리카락들이 꼿꼿한 모양이다.

내 머리카락의 아랫부분은 

펌 약과 열 

그리고 약간의 스킬에 의해 

잘 다려져 있었다.

모든 머리카락은 같은 길이 만큼 

구불거리거나 넘실거렸다.

그 아래는 딱 각이 잡혀 있는 

이상한 모양이었다.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쓱쓱 모았다.

매일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이 

참 많기도 하다 싶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빠를 닮아 곱슬머리다.

곱슬머리가 싫어서,

누가 보기에도 더 세련되고 

예쁜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싶어서

일 년에 두어 번 

매직 펌을 하여 잘 펴준다.

펌을 해주고 나면 

어느 정도 기간은

맘에 드는 헤어스타일로 

잘 지낼 수 있다.

펌을 하지 않은 상태의 머리카락이

 지금 있다면 모근부터 끝까지 

심하게 곱슬거리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곱슬머리.

인위적으로 펌을 하여 다려진 머리카락은 

내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모두의 안위를 위해 

잘 다려진 모양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

바닥에 모아놓은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니

모근쪽에는 원래의 내 모습인 

곱슬한 모양이 열심히 자라나있다.

그 중 몇몇은 운명을 맞이하여 

두피에서 탈락되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내 머리카락들은 

점점 더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곱슬거리며 자라나겠지.

불화를 피하기만고 도망치는 나의 모습을 

위선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잘 포장하며 웃는 낯을 많이 보였다.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부딪혀본 적은 없이 

잘 참아넘겼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게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불쑥 불쑥 그게 아니다 싶은 

칼날 같은 마음이 자라나있다.

원래의 내 모습은 곱슬머리이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곱슬머리는

매직으로 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곱슬머리도 뭐가 어때라며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데

나는 내 마음속의 다른 생각을 

너무나 잘 알면서

자꾸만 모른척하니 

그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다른 사람은 모르게 

더 두껍고 높은 벽을 치게 된다.

본래의 나.

곱슬머리인 나.

싫은 것이 분명한 나를 들여다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처럼 

진짜가 아닌 것이 더 많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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