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 4, 5학년인 아이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맛집 돈가스 집에 들렀다.
평소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어서
대기를 하다 들어가서 그랬는지
세 아이들은 맛집 탐방에 들떠 있는 와중이었다.
우리 바로 뒤 테이블에는
4살이나 5살 정도 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아이는 나이에 맞게 그릇도 떨어뜨리고
물도 쏟고
먹고 싶다던 치즈 돈가스는
입만 대보고 음식을 거부 중이었다.
아이 엄마는 화가 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모진 말들로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고 있었다.
"네가 물을 쏟았기 때문에
물은 더 줄 수 없어."
"치즈돈가스를 네가 먹고 싶다고 해서
2인분이나 시켰는데
이제 와서 안 먹는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 좀 흘리지 말고 똑바로 먹어! "
4살 5살을 데리고
홀로 외식을 감행하는 용기에
대단히 박수를 쳐주고 싶던 차였다.
아이들에게 하는 모진 말들로 인해
식당 안의 많은 시선들이
어쩔 수 없이 그 테이블로 향했다.
우리 아이들도 작은 아이들이
혼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흘끔거리기도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나의 아이들이 그 나이일 때
나는 감히 홀로 외식을 하지도 못했는데
'저 엄마는 참 대단한데?'
그 생각뿐이어서
아이 엄마가 혼을 내는 목소리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한 끼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른 테이블에 관심을 갖지 말고
자신의 식사에만 신경을 쓰라며 당부를 하였다.
어린아이들과 아이 엄마.
그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관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이들이 어렸던 그 시절에 나는
주변 시선이 무서워서
외식과 여행은 아예 담을 쌓고 살았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아이를 혼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
아이를 혼을 내야 할 가능성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고나 할까.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이 옳았다거나
아이의 연령을 배려하는 언행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아이들의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훈육을 하는 용기라니!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외식을 하러 오는 것도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지금은 안다.
그 작고 어린아이들이
그릇을 떨어뜨리고,
마구마구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을
입에 대보기만 하고
먹기 싫어하는 것,
그리고 컵에 담긴 물을
쏟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를....
작은 아이들의 실수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손이 작고 발이 작고 아직
생각이 미숙하기 때문에.
너그러운 시선으로
그릇이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소음을
받아들인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런데 정작 내 아이가 어렸던 그 시절엔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실수를 하더라도
외식을 하고 세상을 보여주고
손을 잡고 다닐걸.....
그 생각을 하니 돈가스가
왠지 입으로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의 작은 아이들은 벌써
초등학교 중, 고학년이어서
내가 드디어 가지게 된
그 '너그러움'을 다르게 써야 하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물컵을 쏟고 스테인리스 그릇을
'쨍그랑'하고 떨어뜨리고
먹고 싶다던 음식이
갑자기 보기 싫어지게 되는 것.
그 모든 것이 웃음이 나게 귀엽기만 하다.
화가 나는 행동이 아니라
웃음이 저절로 나는
작고 작은 해프닝들이다.
아이들 엄마의 화가 나는 마음을
내가 설득하여 바꾸어 줄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들이 나의 아이들만큼 커버린다면,
아이 엄마도 작은 해프닝들을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어린 시절의 실수들이
너무 사랑스러운 행동들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는 불현듯 느끼게 되지 않을까?''
작고 작은 아이들의 행동들은 원래 미숙하다.
그리고 미숙한 행동이 웃음짓게한다.
순수한 그 모습 덕분에 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작은 아이들의 엄마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