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이모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제주도에 많이 가보기도 했고
잘 알고 있는 '우리 집 막내딸 (= 나)' 이
여행의 모든 것을 예약하고
계획해 주는 것이 함께 결정되었다.
물론 그 결정에 나의 의견 따위는
첨가되지 못했지만,
이미 통보식으로 받은 결정이고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둘째가 지금 10살...
그 아이가 5세 때부터
어쩌다 보니 제주도 여행을
매년 2회 정도 떠나게 되었다.
그중에 친정엄마와 언니들,
그리고 조카들이 함께한
친정 가족 여행이 절반 정도였었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여행을
운영하고 책임졌던 내게
어르신들 여행 계획쯤은 아주 수월하게
예약하고 해줄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의견이 팔 할 정도 섞인 결정이었다.
엄마도 막내였던 탓에
그 많은 사촌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내가 당첨이 된 건
당연한 결정이었나 싶기도 했다.
2017년이 처음 시작이었나..
제주도를 본격적으로 여행을 해보기 시작한
첫해부터 나에게 있어
여행이라는 것은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내 맘 내키는 대로 가는
여유로운 여행은 아니었다.
여행을 가기 최소 한 달 전부터
여행 갈 지역의 시청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관광 지도와
기타 관광정보를 신청한다.
신청 후 보통 1주일 이내로
지도 등을 받아볼 수 있고
여행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질이 좋고 자세한 내용들과
지역축제 정보 등이 담긴
관광정보지가 우편물로 날아온다.
이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로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지
내 머릿속에 하나씩 포스트잇으로
표시하여 붙이는 것이다.
물론 지도에도 형광펜으로 표시도 하고
깨끗하고 바른 A4용지를 꺼내어
말끔한 글씨로 관광 정보도
번호를 매겨 옮겨 적어놓는다.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보통
네이버로 검색하거나
블로그의 섬세한 정보들이 바탕이 된다.
비가 오는 날씨에는
운동화가 질척거리는 길이 된다든지
햇빛이 강한 날에 방문하여도 좋을 만큼
나무가 우거져있으니
모자가 필요 없다거나
입구 쪽에는 마실 거리가 파는 푸드트럭이
늘 있는데 그 푸드트럭의
자몽에이드가 끝장나게 맛있다거나 하는
꿀같은 정보들을
섬세한 필기가
가능한 '하이테크 펜'으로
차근차근 적어놓는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거라
착각하고 적어놓지 않는 것은
그냥 잊어버리겠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잘 알기에..
여행지 도착 전
한 번 더 훑어보고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깨알 같은 정보들을 놓치지 않고 적어놓게 된다.
어떤 때는 내가 적은 정보들이
참 알차다 싶어 뿌듯한 마음에
코팅지를 앞뒤로 붙여 보관하기
용이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내가 코팅해놓은 정보들을
다시 찾아볼 기회가 종종 있는데
어찌나 알차게 잘 적어놓았는지
다시 보아도 그때의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서 재출력이 되었다.
보통은 이런 준비과정을 보고
쓸데없는 짓이라거나 시간 낭비
혹은 여행을 너무 공부같이 힘들게 한다는
주변인들의 의견도 있었다.
혹은 이런식의 치밀한 계획 여행은 오히려
여행의 본질을 망가뜨린다는
의견을 듣기도 했다.
여행은 여행다워야 하는 것인데
미리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어그러지면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고
날씨와 컨디션 그리고
마음 내킬때마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변동 사항을 반영하는 것이
여행이 주는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모아놓은 정보대로
시간을 아끼는 루트대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시간을 아끼고 맛있는 음료를 사 먹고
필요한 물품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사실 70% 이상의 정보들은
그냥 흘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찾아보고 적어놓은 정보들을
모두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버려지는 정보들이 많다보니
미리 계획하는 것이 틀렸다는 의견을
들었을 때 솔직히 솔깃하기도 했다.
내가 괜한 짓을 하면서
시간낭비를 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여행은...
어떤 것일까?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관광 정보를 모으고
여행 갈 곳에 대한 알찬 준비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체력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이는 작업이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리고
엄마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
세심하게 살피는 작업이 필요해서
형식적인 관광정보 외의 것들을
많이 찾아보았던 것 같다.
신발이 하나 더 필요하지는 않을지
고도가 높은 곳에서
점퍼를 더 챙기지는 않아도 될지
근처에 먹을만한 식당이 없다면
시내 쪽으로 식당을 찾는 시간 동안
아이들와 엄마가 배고프지 않을지
등등의 걱정들을 조금 피하기 위해
세심하게 이런 저런 블로그와
유트브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차에 미리 우산과 우비 그리고
여벌 신발 등을 실어놓고
간식들도 항상 차에 실어서 대비를 하고는 했다.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켜주는
메뉴가 있는 식당을 찾아야
3대가 편히 밥 먹을 수 있어서
식당에 대한 정보도 관광지 하나 당
3군데 이상씩 미리 봐 놓고는 했다.
봉고차에 모두 8명이 타고
운전을 내가 하며
네이버로 검색까지 하면서
관광지와 식당을 검색한다면
나는 중간에 넋을 놓을 게 뻔했다.
언니들은 운전과 검색 같은 분야에
특화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검색하고 운전까지
담당하는 것이 훨씬 일 처리가 편했다.
나의 일손을 내가 미리 거드는 것이다.
운전도 하랴 검색도 하랴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여행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정보들을
미리 내 머리속에 또 종이에 함께 실어 가면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가볍고
다음 관광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바로바로 출력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중간에
생수를 파는 곳이 없으니
모두 자기 보조 가방에 자기가 마실 물
하나씩 챙겨서 내립니다~!"
"화장실은 내부에 없으니
매표소에 있는 화장실을
모두 이용 후 입장하도록 합니다~!"
"식당과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관광 한 후에 최소 3시간 후에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
아침을 적게 먹은 사람은 미리
차에 실어둔 간식을
적당히 먹어 두도록 합니다~!"
운전을 하며
관광지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생각나는 것들을 여행 가이드마냥
바로바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미리 관광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차단해둔다.
사려니숲길 중간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일이 없도록.
돌문화공원 중간에서
목이 말라서 힘들어하는 일이 없도록
대비를 하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7명 모두
내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고
미리 화장실도 방문하고
생수도 넉넉하게 잘 챙겨서 차에서 내린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에는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데리고 달래가며
화장실을 방문하고 입장하곤 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걸리거나 체력 소모가 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나름 10대(?) 이상이라서,
엄마의 여행 방식에
이미 적응했기 때문에(?) 군말 없이
화장실로 쪼르르 달려간다.
생수를 챙기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으므로 관광지 내에서
목이 말라서 힘들다는 변명은
통하지도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쓰라고 튼튼하고 좋은
'보조가방'이라는 것을 인당 하나씩 사주고
어깨에 걸어주기도 했다.
이런 나의 여행 방식에
5년간 익숙해진 70대 중반이 넘은
친정 엄마는 어디로 실려가는지도 모른 채
차에서는 잠을 자면서
휴식을 잘 취하고 계시다가
시키는 대로 화장실도 가고
생수도 잘 챙겨서
내려주는 곳이 어딘지도 잘 모르신 채 내려
관광을 하시기 일쑤였다.
체력이 조금 약하신 탓에
그렇게라도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관광지에서 오랜 시간
걸어 다닐 수 없으시기 때문에
알아서 애를 쓰시는 듯했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더 관광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라도 더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은 욕심에
내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이시며
가족 여행의 가장 모범생이 되셨다.
혹시 모르니 생수도 아이들보다 더
넉넉히 챙기시고 아이들이 필요할지 모르니
간식도 당신 가방에 조금 더 넣어가신다.
화장실도 1등으로 들어가는
모범생 엄마는
관광지에 도착하여 입장하기 전에는
눈빛이 돌연 초롱초롱해진다.
식당으로 이동하면
아이들이나 편식을 했지
엄마는 메뉴 선택권을 내게 모조리
일임하시고 시켜주는 대로 잘 드시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에게는
내가 운영하는(?) 이 여행이
매우 편하고 유용했던 것 같다.
그런 좋은 점을 엄마와 이모들의 여행에도
잘 갖다 붙여 사용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1~2 주 전부터 엄마에게 줄 여행 정보들을
많이 획득해서 알찬 정보들만
차곡차곡 잘 모으고 있다.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오시리라 생각된다.
내가 이토록 잘 계획하고 세심하고 준비하는
'나의 여행'이라는 것은.....
다소 자연스러움이 빠진,
물 흐르듯이 여유로운 여행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의 본 마음은
여려 명이 함께 다니면서도 힘들지 않고
조금이나마 주변이 둘러봐지도록,
감성이 옴팡 젖을 수 있는
순간들을 진심으로 염원했던 것이다.
나무 사이로 칼날같이 눈부시게 비치는
햇빛과 파란 하늘과 대비감이 심한
제주의 현무암 재질 돌바닥에
내 눈이 사로잡히는 순간들.
습기가 가득하여 축축하지만
외국의 어느 모르는 숲 사이에
몰래 숨어들어온 것 같은 곶자왈 등에서
습기 때문이 아닌 오묘한 기분에
숨이 잠깐 답답한 것 같은 짜릿함
같은 것들을 아주 짧게나마 느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 아들과 딸
그리고 엄마가 동행했던 탓에
제대로 그 감성을 느끼지 못했느라고
여기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나 자신이
여행에 홀딱 젖어버리고 싶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하고
또다시 살펴보고 차곡차곡 잘 정리해놓았었다.
산굼부리 꼭대기에서
억새 장관을 내려다보면서
아주 잠시였지만
그 순간에는 나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몇십초 안되는 순간이었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머리카락이 마구
날리는데
얼굴에 찰싹 붙는 머리카락이
왠지 떼어내고 싶지 않을 만큼
아니 떼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몰입'을 경험했다.
내가 처음 본 억새도 아니었고
처음 올라온 산굼부리도 아니었는데
나는 정말로 깊이 몰입되어있었다.
올라가는 길에는 아이 손을 잡기도 하고
엄마의 무거운 짐을 다시
살펴봐 주기도 했었지만
절정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것을 온전히 느끼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내 그네를 타고 싶다느니
뱀이 나온다니 무섭다고 하는 이야기들로
나의 정적을 깨버렸지만
1분도 되지 않는 그 시간으로 충분했다.
그 1분을 위해서 한 달을 준비했다고 한다면
참 가성비가 떨어지는 시간이겠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이던지....
아마도 정성에 정성을 충분히 들였기 때문에
더 찬란하고 짜릿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음이 가지 않는 정성은
고되고 노동으로 느껴지지만
나를 위해서 혹은 가족들의 편안함을 위한
정성과 노력은 사실 즐거움이기도 했다.
여행을 가기 전 설렘이란,
여행을 다녀와서 보다 훨씬 더
즐겁고 긴장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여행 전의 그 좋은 기분들을
여행을 계획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것으로
좀 더 충분히 깊게 가지는 편인 것 같다.
검색을 하면서
나는 미리 여행을 한 번 한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
미리 여행을 가
이곳저곳으로 발길을 옮겨 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혼자 설레고 혼자 기뻐한다.
그곳에서 담뿍 들이마신
신선한 공기 맛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혼자만의 여행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한다.
미리 들여다본 다음 장의 소설처럼
뒤 내용을 나만 알고 있으니 더욱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