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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나.

by Anna

낮 기온이 21도에 달하는

완연한 봄 날씨에

컨디션 난조로 전기장판을

고온으로 설정하고 두꺼운 이불 속

가장 따뜻한 지점을 찾아

발가락부분부터 먼저 데워본다.

날씨는 화창한데

집에만 있었던 터라

바깥 기온이 어떠한지 상관도 없이

내 몸은 그저 축축 늘어지고만 있었다.

아침을 먹은 흔적들이

설거지통 반 이상을 채우고 있었지만

내 발가락부터 데워주는

은인 같은 전기장판 곁을

떠날 생각이 들지 않아

방치를 해 두고 있던 터였다.

이 몸뚱아리는 어찌 일이주에

한두 번씩은 꼭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지.

편하게 앉아있거나 누워서

여유를 부리는 성향이 아니어서

이런 컨디션을 보이는 날이면

조금이라도 쉬어주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 일 때가 있다.

이렇게 누워있을 시간이면

책을 50페이지는 읽을 수 있을 텐데,

정리를 하지 못한 옷장 정리

마무리도 할 수 있을 텐데,

지저분해진 아이들 운동화를 빨아서

건조시킬 수도 있을 텐데...

아까운 시간 타령을 하다 보니

누운 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마음이 편치 않아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쉬어야 하는 시간조차

마음이 불편하여 쉬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

결국, 옷을 더 따뜻하게 챙겨 입고

묵혀둔 설거지부터 정리에 나선다.

접시는 사선으로, 그리고 수저들은

하나하나 일일이 문질러서 깨끗이 헹궈내고

설거지통과 인덕션 위까지

깨끗하게 물기를 제거하니

그제야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좀 더 편안한 마음 처리를 위해

다른 것들도 마무리해버리자는 생각이 든다.

손걸레를 잡아들고 열심히 헹구어

구석구석 먼지를 훔치고

삐딱하게 처리되었던 전선과 장식품

그리고 의자 등을 반듯이 놓는다.

테이블과 선반을 닦고

손걸레를 다시 깨끗하게 빨아 정리한다.

광이 나는 탁자 위를 바라보니

이제야 좀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듯 하였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간

이불과 베개도 예쁘게 정리하고

먼지가 있는 것은 건조기에 팡팡 돌려

붙어 있을 먼지들을 떨구어 내 본다.

어디 보자.

한참을 일하다 보니

설거지통에 놓여있던 접시들의

물기가 제거되어

눈에 보이지 않게

접시를 모조리 찬장으로 싹 집어넣어 버린다.

나는 결국 30분을 누워있다가

1시간 넘게 청소와 설거지에 집중하였다.


편한 휴식을 하기 위한 나를 위한 집안일이었다.

1시간 넘게 지속된 집안일에

컨디션은 오히려 눕기 전보다

나아진 듯도 하고

무엇보다 잠이 홀딱 달아나버렸다.

휴식하기 위함이었던 집안일은

휴식 생각을 아예 접어버리게 했다.

그럼 그렇지.

예민한 내 성격은 간혹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었다.

그래도 덕분에 반질해진 거실 바닥이 보인다.

먼지가 제거된 테이블을 다시 스캔하면서

커피 원두를 돌돌 갈아서 한 잔 내려 마신다.

커피 한 잔으로 나를 조금 위로하면서

한 모금, 두 모금 맛을 느끼며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

깨끗해진 집을 보니

커피는 어제보다 더 향긋했다.

처음부터 이런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굉장히 단순했던,

그리고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나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 달라져있다.

같은 사람이어도 어떤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혹은 어떤 생각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서

인상도 달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여전히 '나' 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하고 있다.

뱀이나 파충류들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훌쩍 커버리고

다시 이전처럼 작아지지는 못하듯이

나는 점점 변해가고

나에게 다른 속성을 더해서

또 다른 내가 되어가고

절대로 이전처럼은 돌아가지 못하는

새로운 '나'로 변해가고 있다.

좋은 면들이 많이 생겨나고

살아가는 힘이 더 커지면

이것을 '발전'이라고 하겠고

그저 다른 나로 되어버리는 '변화'라고도 하겠다.

발전이거나 변화이거나.

어찌됐든,

대부분의 것들은

이전과 같은 모습을 지켜가지는 못한다.

나무도 풀도 물과 햇빛 덕에

더 커지고 색도 변화한다.

사계절이 그대로 느껴지는 변화

그리고 크기가 커지는 발전

두 가지를 모두 거쳐가고는 한다.

나에게 없었던 모습을

내가 발견하거나

눈에 띄던 나의 모습 때문에

주변인들은 나에게

'네가 이랬었어'라는 말을 종종 해준다.

그렇구나. 나도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구나.

꾸준히 변했던 덕에 나는

어린애처럼 철없던 생각에서

조금은 거리가 생겨났다.

나와는 괴리가 큰

타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대면한다해도

조금은 무던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물론 다양함 속에서

나만의 생각이 조금 더 맞다는 고집도

스푼 더 진해지기도 한 것도 맞지만......

순수했던 내 생각들이 예전과 달라져서

슬퍼하거나 이전의 좋은 기억들이 많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아쉬워하지 않았으면 했다.

20년 전에나 있었던 것 같은

순수했던 그 마음은 어딘가에서

변색을 하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관대함이라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전에 좋았었던 기억도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지만

내가 이렇게 변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추억이 소중할까?

아마도 추억이라고 취급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많이 예민해지고

많이 달라진 내가. 참 반갑다.

그리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조금씩 허물을 벗어던져가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자라고 변해주어서.

그것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도 나를 천천히 잘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니.

고통받지 않고 나의 변화를 발전을

앞으로도 더 반갑게 잘 맞이해주기를 바라본다.

나의 '변화'는 아주 자연스럽고

기대해도 좋을 법한 '발전' 이라고

멋진 포장을 한 겹 씌워 보려 한다.

이전보다 예민해졌지만

이전보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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