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빠른 손놀림으로 샤워 후,
아이를 데리러 스스로를 재촉하는 발 놀림.
혹여나 아이가 기다릴까 서두른 마음으로
운전대를 휘어잡아 겨우 제시간에 골인.
다행히 오늘은 엄마가 늦어서 기다렸다는
퉁퉁 부은 얼굴이 아니었고,
참새처럼 종알거리는 잔소리도 듣지 않아도 되었다.
튀긴 음식을 먹겠다는 강력한 주장을 달래어가며
한식으로 메뉴를 바꾸면서 재빨리 다른 화제를 던졌다.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엄마 커피나 한 잔 사갈까?
점심밥보다는 카페인이 많이 고팠던지라
점심거리를 사러 가기 전에 카페에 잠시 들리자고
사탕 같은 유혹을 던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와 함께 카페에 가고 싶다는
나의 예상 답안이 술술 나온다.
하지만, 한시가 바쁜 나에게
카페에 엄마와 앉아서 함께
차를 마시고 싶다는 요구를 해댄다.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 퉁퉁 부은 얼굴을 할까 봐
무릎을 굽혀 같은 눈높이에서 얼굴을 바라보며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빛을 던져본다.
"오늘은 바쁘니 테이크아웃으로 들고나와서
어서 빨리 오빠를 데리러 가면 안 될까?"
무릎을 굽혀서 딸의 눈높이를 바라보는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분명
"노우."라고 답했을 것이지만,
나의 정성이 갸륵했는지
엄마가 오늘은 바쁘고 힘이 드니
카페 구경만 잠깐 하고
커피를 받아서 나오는 것이 좋겠다며
제법 어른스럽게 말을 한다.
카페는 바쁘다.
한창 점심시간 이후라서 손님으로 가득 차있고
혼자 커피를 만들고 디저트를 내오는 손길이 거침이 없다.
주인장은 잠깐의 여지를 눈빛으로 내게 던져주었다.
눈빛을 읽고 나 또한 빠른 스캔으로
메뉴를 읽고 커피 주문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카페에서 주인장이
아침 시간에 미리 만들어놓은 디저트 메뉴들을
우리 딸은 더 빠른 속도로 스캔을 한다.
달콤한 유혹을 참기 어려웠던 딸은
디저트 메뉴를 바라보는 눈길이 나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다.
한 조각에 7,000원이 넘는 케이크를
유심히 보더니 가격 협상이 어려워 보였는지
케이크의 반값 정도인 시원한 음료를 선택하며 나를 쳐다본다.
마치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차가운 음료 한 잔 모두를 마시면
배앓이를 한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에
오빠랑 반씩 나누어 먹겠다는 말도 미리 내게 전한다.
이것이 바로 학습의 결과인가?
덕분에 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협상 타결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엄마를 다루는 데 반쯤 전문가가 된 듯하다.
주인장이 씨익 웃어 보인다.
우리의 협상이 순조로웠음을 제3 자도 기뻐하는 듯했다.
음료를 다 만들어줄 때까지
웨이팅 할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카운터 안의 광경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다.
주인장이 음료를 만드는 손길,
커피 기계를 다루는 모습, 디저트를 담아내는
예쁜 플레이팅이 모두 신기해 보였나 보다.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으니
그 눈빛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는지
주인장이 짬을 내어 딸아이에게
조각케이크 상자 위에 붙이는 스티커를 한 장 내어 준다.
스티커를 받아들고 쪼르르 내게 와서 흥분을 하여 자랑을 한다.
"엄마! 저 아저씨 진짜 착해.
나한테 엄지척도 해주고 이렇게 예쁜 스티커도 줬어!!"
10살짜리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귀여워 보였는지
아니면 민망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스티커를 건네준 주인장의 섬세함이 고마웠다.
딸아이는 스티커를 준 주인장을 '착한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참 순수하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부담스러울 법한 호기심 눈빛을 발사해대는 아이를 보고
스티커를 주는 주인장도 귀여웠고
스티커를 주는 사람을 착하다고 표현하는 딸도 순수하였다.
음료가 다 됐다고 부르는 소리에 얼른 일어난다.
나와 딸아이가 각자의 음료를 받아들고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차에 딸아이를 태워 점심거리를 사 오는 내내
그 좋았던 감정이 식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서 받았던 관심과 세심함은
오래도록 기억나게 하는 힘이 있다.
배가 아픈 나를 위해 직접 손발을 따서 체기를 가라앉혀 준 이웃 어른,
7번 넘어진 무릎을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내가 아플까 봐 토닥여주며 조심스레 소독해 주셨던 간호사,
아빠를 따라 나간 저녁 모임에서
내가 심심할까 봐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사주셨던
아빠 친구분의 선한 웃음도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시간에 쫓겨 바쁘고 두 아이를 챙기느라
여유가 없는 생활 속에서도
간간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과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친 경비원 아저씨들,
학교 앞 조그만 가게 사장님도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웃음과 반가운 마음들을 나눠주신다.
아이는 아이라서.
성인이 되지 않은 그 자체로 순수하고 맑은 존재라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게 된다.
결코 가볍지 않게, 세상이 따뜻하다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