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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먹다 죽은 귀신

by Anna

떡을 먹다 죽은

귀신이 있었다.

전생에 식탐이 강하였는데,


음식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떡이 그만 목에 걸려

귀신이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장가도 가지 못하고

어머니와 둘이 살았던 귀신은

아끼고 사느라

늘 풍족하게 먹지못하여

식탐이 커진 것이었다.


떡 먹다 죽은 귀신은

식사 시간만 되면 이집 저집

밥 먹는 가정집을 기웃거렸고

먹지도 못하는 밥상 앞에서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전생에 먹고싶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지 못하여

귀신이 되어서도

음식에 한이 맺혀있는 것이었다.


365일 1년 12달 하루 24시간이

별자리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간혹 시간이 멈추는 때가 있었다.


그 몇 초 사이에

귀신이 음식을 먹거나

물건을 만지는 일이 가능했고

간절함이 깊을 때,

미래를 잠깐 볼 수 있기도 했다.


떡 먹다 죽은 귀신은

시간이 잠시 멈추는 그 틈을 노렸다.


입가에 침이 주르륵 흐르는 채로

늘 밥상이나 음식 앞을

떠나지 않았다.


"하! 대게 다리를 뜯어 먹는구나.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뜯어내야

다리 살을 한 번에

먹을 수 있지!"


"게딱지에 밥을 비빌 때는

김가루랑 참기름이 필수지!

먹을 줄 아는 인간이로구나."


대게 파티를 하는

한 가족 식탁에서

마치 자신도 가족인 양

훈수를 두며

대리 만족을 하는 귀신이었다.


"계란 하나 탁 풀어서

라면 하나 뜨끈하게

한 그릇 하면

정말 정말 좋겠다.

어휴, 얼마나 맛있을까?"


죽은 지 10년이 넘어도

라면 맛은 잊히지도 않는지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을 보면

군침이 나 참기 어려웠다.


떡 먹다 죽은 귀신이

방앗간 앞을 기웃거렸다.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떡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환갑은 넘은 듯한

떡집 주인이

찜기에 들어간 쌀을 확인하려

네모판 뚜껑을 열자

가게 안을 가득 채울 만한

엄청난 양의 김이 솟아올랐다.


방앗간 안이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증기를 내보내려

부러 활짝 열어놓은

방앗간 문 앞으로

고소하게 쪄진

쌀 향이 퍼졌다.


주인장은 푸실 부실하게 쪄진 쌀을

놀부네 집에서 가져온 것 같은

커다란 주걱으로

떡 기계에 퍼담았다.


주걱질을 거드는

맨손이 뜨거웠는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찬물에

연신 손을 식히면서도

주걱질을 멈추지 않았다.


뜨겁게 쪄진 쌀이

기계를 통과하여

떡 기계 호스로 밀려 나왔다.


삼십 센티 길이로

주인장이 열심히 잘라내니,


빨간 대야에

가득 부어놓은

차가운 물 안으로

가래떡이 붙지 않고 쌓여갔다.


주인장의 손길은

정확하고 날랬다.


벽지를 붙일 때 쓰는 깔끄미로

가래떡을 호스 끝에서

절단해냈다.


군더더기 없이

떡만 자르는 힘만 딱 주어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떡 먹다 죽은 귀신은

방앗간 기계 앞에 앉아

주인장이 떡을 잘라낼 때마다

꼴딱꼴딱 침을 삼키며

함께 리듬을 탔다.


자신을 위해 준비된 떡인 양

대야에 가래떡이 쌓여가니

설레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주인장의 남편이 그때

배달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가게에 들어왔다.


떡집 계산서에 놓여있는

주문 떡을 확인하고는

새로운 쌀을 가지러 창고로 향했다.


남편은 차가운 물에

가래떡을 식히고 있는

여자 주인장에게 물었다.


"박씨네 집 제사에

인자 떡이 올라가는가?

떡 먹다 죽었다고

떡을 안 올린다 카드만,

인자 맴이 바뀌었는가 베?"


"즈거 아들이 그리 돼가지고

떡을 쳐다도 안보드만,

죽어서는

목 막힐 일 없겠제 카면서

인자 떡 올리고 싶다 카드라.


죽어서라도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카던데.

10년이나 떡을 안 올려가지고

떡 좋아하는 그 구신이

인제사 잘 찾아오겠나 싶데이."


"아이고 마, 하다 하다

떡을 먹다 죽었노.

나도 떡장사 40년에

떡 먹다 죽은 사람 야기는

처음 들었다 아이가.


즈그 어마이도 먹는 거

그리 잘 묵고 좋아하던 사람인데

인자 먹는 것도 잘 안 하고,


아들 그리되고

아들 제사상 차리는

불쌍한 사람이 돼가지고 쯧쯧.


죽은 아들이라도

좋아하는 음식은

먹이고 싶은 갑다잉."


"그기 어마이 마음이다.

죽은 새끼도 챙기고 싶은 기

어마이 마음 아이겠나.


죽은 갸가 찰떡을 그

리 좋아했다하드마,

찰떡이 목에 찰싹 달라붙어가

안 죽었나.


그리 캐도

아들 제사상에 올릴 끼라고

찰떡 맛있게 해가지고

보내 돌라 카드라."


"찰떡을. 시상에.

알았다 고마.

해달라카이 해 주야 제.


할매 떡 자실 때

조심해가 드시라 캐라.


할매 나이가 많아가

영 불안스럽다이."


단도리를 시키며

떡집 남자 주인은

창고로 향했다.


"오야. 그래 하께."


떡을 먹다 죽은 귀신은

자기 어머니의 소식을

떡집에서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떡 먹다 죽은 귀신을

떠나보내고 산 이야기.


떡이라면 치가 떨려서

떡을 빼고

자신의 제사상을 차렸다는 이야기.


생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떡을

드디어 상에 올린다는 이야기였다.


귀신은 처음으로

입맛이 떨어졌다.


자신의 실수로

어머니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것도 모자라

10여 년간

아들의 제사상을

차리게 했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귀신이지만 아들은 아들이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입맛을 잃으셨다가

10년만에

떡을 드실 수 있게 된 것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떡 먹다 죽은 귀신은

제사상에 올라가는 찰떡이

자기 목에 붙었던 일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떡을 먹다 잘못되실까 봐

염려스러워졌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질 찰떡이

만들어질 동안

기다렸다가

떡 방앗간 남자 주인장을

따라가 자신의 집으로 갔다.


10년 만에

처음 가 본 집이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조그마한 주택안에

노란 불과 초가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흰머리가 부쩍 많아진

어머니는 쇠약해 있었다.


노쇠한 몸으로

제사상을 다 차리고

아들의 영정 사진을 꺼내왔다.


소매 끝으로

영정사진을 정성스레 닦으며

가슴 치며 우는 어머니였다.


떡집 남자 주인은

쉽사리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며

열려놓은 현관문 안으로

떡 상자를 조심스레 넣고는

우는 어머니를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안타까워했다.


가슴을 치던 어머니가

떡집 사장을 그제야 확인하고는

버선발로 마당에 뛰쳐나가

앞치마에 에서 돈을 꺼내

사장에게 쥐여주었다.


"우리 아가 좋아했던

찰떡이라 예.

돈 받아 가셔야지 예."


"천천히 줘도 되는데 에이고.

너무 서럽게 우지 마시고

마음 잘 추스르고 계시소.

내 갑니데이."


울음을 삼키는 덕분에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노쇠한 어머니는

버선발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가

떡 상자를 묶은 노끈을 풀었다.


"니가 좋아하던 찰떡이데이.

저번처럼 급하게 묵지 말고

천천히 씹어가

노나 묵어야된데이.

천천히. 알았제?"


제기에 소복하게 올린

찰떡을 마지막으로

제사상에 완성됐다.


어머니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어제 아들이 죽은것 마냥

엉엉 울기만 했다.


밝게 웃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찰떡이 든 제기를

영정사진 가장 가까이로

옮겨주었다.


"내 평생 떡을 안 묵을라 캤다.

근데. 우리 아들이 좋아한 떡 아니겠나.


지금 이 떡 실컷 먹고

다음 생에는

절대 급하게 먹으면 안 된데이.

알았나. 우리 아들아아."


떡을 먹다 죽은 귀신은

영정 사진 위에 앉아

찰떡을 받아들었다.


자신이 평생 가장 좋아하던

찰떡은 아직 따뜻하고 말랑했다.


어머니의 노쇠한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혀 목이 멨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떡을 먹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식탐이

그렇게 많지만 않았어도!'


음식에 욕심을 낸 탓에

사랑하는 어머니와도

영영 이별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귀신이었다.


"내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 아들로 태어날끼라예.


어무이, 맛있는 떡

해주셔가지고 너무

고맙십니데이."


영정사진의 아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여

울고 있는 영정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30여 분을

슬픔에 잠겨 있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술을 올렸다.


아들을 위해 차린

음식을 하나씩 내리며

제사상을 정리했다.


"우리 아들 좋아하던

찰떡 함 묵어보자.

엄마도 니 그리 좋아하던 거

맛이나 보꾸마."


떡이 든 제기를 손에 들고

찰떡을 하나 집어서

입으로 넣으려던 찰나,


별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시계는 제깍제깍 가고 있으나

별과의 간극이 생겼다.


모든것이 멈추는 단 몇초였다.


떡 먹다 죽은 귀신에게

몇초 뒤 떡을 먹다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는

몇 초 뒤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귀신은 어머니가

찰떡을 먹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찰떡을 내리쳤다.


귀신이 찰떡을 내리치자,

어머니의 손에 있던

떡은 방바닥에 쏟아지고

제기가 두 동강이 났다.


어머니가 손에 들고 있던

찰떡 하나는 날아가서

방 유리창에 가서

'퍽'하고 박혀버렸다.


어머니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깜짝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유리창을 한 번,

땅바닥에 쏟아진 떡을 한 번,

그리고 깨져버린 제기를

쳐다봤다.


입이 덜덜덜 떨리는 어머니였다.


"아이고. 아이고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입만 벌어져 있던 어머니가

주섬주섬 떡을 주워 담고

아들의 영정 사진에 대고 말을 했다.


"이 떡 먹으면 내 죽는 거였제?

어? 아이고. 아들아,

이 떡 먹고 죽지 말라꼬

애미 살리 준 거제?


아이고야. 아이고야.

아들아, 아들아

니가 드디어 왔구나!


흐윽.

아들아. 흐윽, 흐윽!"


놀랜 마음에

영정사진을 붙잡고

다시 울기 시작하는 어머니였다.


자신이 살았다는 것보다

따뜻하게

안아볼 수도 없는

죽은 아들이

이 방에 와 있다는 것이

더 가슴 아파 우는

어머니였다.



떡을 먹다 죽은 귀신은

영정사진에 들어가

어머니에게 품에 안겨

실컷 울었다.


영정사진 속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어머니의 앞치마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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