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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는 귀신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귀신-

by Anna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귀신이

저승사자를 찾아왔다.

이승 생활을 얼마 하지도 않았음에도

이곳에는 미련이 없다며

저승에 가고 싶다 청하였다.

"부디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제 딱한 처지를 봐서라도

저승으로 하루빨리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타살을 당한 귀신은

저승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이승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지 않고

정녕 저승으로 바로 가도

괜찮겠느냐?"라고 묻자

남편에게 죽은 귀신은

"저를 죽인 남편이 있는 이승에서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습니다.

빨리 다른 인생으로 태어나서

전생을 잊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저승사자는 20대 꽃다운 나이에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타살을 당한 귀신을 딱히 여겼다.

"이승에서 활짝 펴보지도 못하고

바로 저승으로 가야 하다니

너도 참 딱하구나!

네 인생을 안타깝게 여겨

소원을 하나

들어줄 테니 말해보거라."

"감사하게도 저승사자님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저를 죽인 전 남편에게 흘릴

눈물 한 방울도 아깝습니다.

그저 전 남편이

지금살고 있는 동네에

4개월간 비 한 방울 오지 않게

해주시겠습니까?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죽임을 당하였으니

비가 오지 않는 기간도

4개월이면 족합니다."

"단지 그 소원이 다인 것이냐?

전 남편을 죽여달라는

소원을 말해도 될 터인데

네가 죽은 원한에 비하면

참 작은 소원이로구나.

네 소원을 들어줄 터이니

저승에서는 부디

좋은 인생을 뽑아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저승사자님."

담담한 얼굴로 귀신은

저승길에 바로 올랐다.

이승에 미련이 남지 않은 탓인지

저승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도

매우 수월했다.

별빛이 반짝하며

꼬리도 그리지 않은 채

유성이 되어

바다로 뚝 떨어졌다.

저승으로 들어간 귀신이

어떤 인생을 뽑았는지

알게 된 저승사자는

만족스러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아내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간

저승사자는 살인자의

동네 주변 지역에 4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게 해 주었다.


4개월이 지났다.

저승사자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떠들썩한 모습이 보여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내를 죽인 살인자가

경찰들에 의해 집에서

끌려 나와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연행되는 것이 보였다.

하루 종일 온갖 매체에

살인자의 범행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결혼 4개월 만에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은

이렇게 드러났다.

몇 개월 동안 가뭄이 지속되자

아내가 차에 갇혀 죽은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는데

인근 주민이 저수지 바닥에

있는 자동차를 수상히 여겨

신고를 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고 과학수사팀이

차에 묶인 채로 죽어 있는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저수지 주변에는 즉시

수사라인이 쳐지고

남편은 구속되었다.

아내를 죽인 남편은

남에게 보일 때에는

매너 있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는 누구보다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내가

늘 못마땅했고

자신의 아이를 유산까지 하자

비아냥 거리며 아내에게

폭력까지 휘둘렀다.

범행을 저지른 남편은

구속되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포토라인에 섰다.

남편은 아내를 죽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언론에서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남편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사설이 실렸다.

결혼한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앳된 신부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남편의 얼굴은 다음날

전국 신문 1면으로 실렸다.

온 국민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남편에게 손가락질을 하였다.

술을 마신 채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심신 미약을 핑계로 감형을 받으려다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욱한 마음에

저지른 범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범행 준비가 지독했기 때문이었다.

물에 잠겨도 아깝지 않은

오래된 연식의 차와 끈

그리고 흉기 등의

범행 도구가 증거물로 제출되었다.

저승사자는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던

귀신이 다시 생각났다.

그 귀신은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 보다

온갖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가장 중요했던 남편에게

사형보다 높은 형벌이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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