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 항아리 통

by Anna

억울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전화연결,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를

해결을 해줬으면 바라는 마음,

공감을 바라고 시작된 긴 이야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나,

만나고 싶었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만남도 있지만


유독 몇 년간, 내 마음까지 아프고

힘들어지는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다.

해결을 해주고 싶고

아픈 마음을 알아주고 싶었던

나의 의지와

풀 곳 없어서 가슴 찌르고 있는 감정들을

토로하고 싶은 상대의 마음이 더해졌나보다.


이런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경청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지거나

눈물이 나고 답답한 마음에

'어휴'라는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상대의 마음을 해결할 방안이 없을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기도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니

가슴이 저리기도 한다.


이런 내가 힘든 날이 있었다.

내 감정이 소화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소화해 내려니

그만 체해버린 것이다.


하루가 온통 고민과

혼란의 긴 터널 같은 날도 있었다.






나의 목표는

두 발로 똑바로 서는 것이었다.


성숙하지 못한 얼굴로

오랜 기간 살다 보니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딸 셋에 막내라는 존재는

사람들의 선입견과 별반 다르지 않은

찌그러진 못난 모습이었다.


스스로 서지도 못하면서

타인에게 의존하고

불평만 해대기 일쑤였다.

일그러진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면서

두 발로 꼿꼿하게 서 있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

내 모습을 보지 못한다.

세상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려고 했다.


얼마나 나약하고 일그러진 모습인지

너무 추하여 마주하기 어려웠다.


세상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니

고평가된 나를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찮은 나를 발견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나빠질 것도 없었으니

앞으로 발전하고 좋아지는 일만 남아있었다.




20대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

어리석고 자기중심적인

바보 같은 모습이 아니라


하찮아 보이더라도

높은 곳에서 나를 볼 수 있는 눈이

조금은 생겨서.


그래서일까

마흔 중반은 참 좋은 나이다.


여러 가지 경험도 하고

관계도 맺으면서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마음이 생겼다.



엉터리 일을 당하면

분하고 화가 나고

하루 종일 나쁜 기분에 우울했던

20대와 30대는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일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가슴을 찌르는 말도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다.


이제는 힘든 일,

상처가 되는 일을

길게 풀어놓지 않는다.


리본 끈을 쭉 늘려 펼쳐놓은 것처럼

감정이 오늘도 내일도 이어지게

두고 보지 않는다.


미운 모양으로라도

매듭을 지어놓고고 박스에 담아

창고에 잘 처박아버린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속 시원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힘든 일, 억울한 일, 분한 일을 당하면.....


두루마리 휴지 풀듯이

길게 풀어 쏟아내더라도

다 쏟고나면

똑 끊어서 안 보이게

넣어놓으라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래서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많은은 감정이 다 담긴 스토리를 들으면서

아픔에 공감하고 가슴도 아프지만

잘 주워 담아서

항아리에 넣어 뚜껑을 닫는다.


감정을 다시 꺼낼 수도 있지만

뚜껑을 닫아놓으면

아팠던 감정이

곪고 썩으며 나는 악취를

피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겪었다.


감정은 습관이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자.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자.

이 정도쯤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자.


언젠가 감정에

단단한 마음 근육이 생겨

웬만한 일에는 생채기를 입지 않는

갑옷을 입고 있고 있을 것이다.


감정 항아리통이

내게 여러 개가 있다.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힘든 감정들. 다 기억하고 있다.


내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 정리되고 뚜껑이 닫혀 잘 아물고 있다.


그래서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감정 항아리통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구시가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