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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골목길

by Anna

녹이 슬었던 슬레이트 지붕

초라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구시가.


노인들의 발왕래도 없고

쪽창들이 굳게 닫힌 좁은 골목에서


내 구둣발 소리만 크게 들려

살금살금

골목이 깨지 않게 뒤꿈치를 들어야 했다.


집집마다 벽에는 깨진 병을 꽂아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곁눈으로 이방인을 지켜보고 있을까?


갈비뼈가 보일 것 같은 작은 고양이가

그런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문들이 꼭 닫힌 곳마다

말소리도 불빛도 사라진 움집들이 붙어 있다.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무릎 높이의 낮은 창에

비로소 옅은 등불이 하나 느껴졌다.


끝이 찢어진 시트지로

꽤 단단히 마음을 닫았다.


찢어진 틈을 끝까지 메우지 않았지만

내 시선에 그가 소심해질까

얼른 시선을 거둬들였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째진 눈을 한 호인들을 가둬놓은

작은 집들을

살짝 눈으로 만지며 지나갔다.


호다닥 튀어나온

두 번째 고양이 덕분에

도망치듯 골목을 나왔다.


움막에서 구척 장신이 나와

내 앞을 가로막을까 두려웠을까.


깨진 모습으로

거꾸로 박혀있던 유리병이 내 가슴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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