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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캐빈 Jul 06. 2023

“귀하의 조용한 사직서, 수리되었습니다”

캐빈의 [트렌드] 이야기_MZ세대의 소극적 업무관을 뒤바꾼 어느 회사

금융사에 7년차 재직중인 박 모씨(33)는 근무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저녁이 있는 삶을 즐깁니다. 단,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한 철칙이 있다고 하네요. 9시 출근 6시 퇴근을 위해 일하는 시간에는 매일 해야 할 일을 적어두고 우선순위를 부여해 주어진 업무에 몰입하는 것. 박씨는 이를 위해 “가상의 스위치를 달게 됐다”고 말합니다. 출근 할 때 스위치를 켜고, 퇴근 하면서는 스위치를 끄는 식이죠. 이처럼 박씨가 철칙까지 세워가며 스스로 효율적인 근무를 단속하게 만든 회사는 어떤 곳일까요, 또 박씨와 회사는 이대로 괜찮을까요?





조용한 사직, 자신에게 충성하기로 한 사람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과중한 업무와 거리를 두고 최소의 일을 하겠다는 ‘콰이어트 퀴팅(quiet quitting, 조용한 사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기엔 ‘사직’이라는 단어가 쓰였지만 실제로 사표를 내는 게 아닌, 직장 내에서 최소의 업무 지향성을 뜻하는 거죠. 하지만 이와 같이 굳은 의지가 있어야 업무와 삶을 분리 해 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결연하기까지 한 단어를 끌어와 공감을 얻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용어가 부각되기 시작한 건 작년 7월부터입니다. 자이들 플린이라는 미국의 20대 엔지니어가 틱톡에 콰이어트 퀴팅을 소개하는 감각적인 영상을 올렸고, 2개월 만에 조회수 360만회를 기록하는 등 관심을 모았죠. 이후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이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사회적인 현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겁니다.

최근 콰이어트 퀴팅이 주목받은 이유는 코로나 이후 실제로 ‘최소한의 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갤럽이 지난 6월 미국 직장인 1만50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50%가 자신이 맡은 업무 중 최소한만 소화한다고 답했거든요. 미 구인 사이트 ‘레주메 빌더’가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도 25~34세 근로자의 25%가 콰이어트 퀴팅을 추구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 채용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해 12월 직장인 392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딱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20대와 30대 직장인의 78.5%, 77.1%가 이렇게 답한 반면, 40대(59.2%)와 50대(40.1%)로 갈수록 그 비율이 낮아졌습니다. MZ세대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사직’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었던 셈이죠. 이들은 한국 사회 특유의 꽉 막힌 조직 문화 속에서 열심히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회사보다는 자신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겁니다.



업무 태만 VS 정당한 요구, 모두가 이기는 협상

콰이어트 퀴팅은 변화할 수 없는 현실 자각으로 인한 체념, 일종의 버티기 전략이라 치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MZ세대의 특성과 만나 좀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죠. MZ세대 특유의 선택과 집중적 열정이 “주어진 시간만큼만 일하겠다”고 하는 당돌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겁니다.

콰이어트 퀴팅에 대한 기성세대의 시각은 ‘잘 포장된 업무 태만’ 또는 ‘근로자의 정당한 요구’ 등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가운데 오히려 회사와 일에 대한 기본적인 열정이 담보되어야 이 선긋기가 필요해진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만큼 회사가 어떻게 직원들에게 오너십을 부여하고 각자의 소임에 맞춰 근무 시간 내 일의 효율을 높일 것인지,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이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콰이어트 퀴팅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면, 기업들은 이를 적극 수용해 오히려 직원들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열정이 실종된 것으로 속단하는 건 이들을 더욱 침잠하게 만 들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이에 대해 감시하고 추궁하는 등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조정하려 하기 보단, 일을 효율적으로 잘 수행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정당한 요구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거죠. 이를 통해 회사는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모두에게 이로운 협상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몇몇 기업들은 사내 문화나 제도, 공간 변화 등을 통해 직원들에게 새로운 리프레시를 제공하며 되려 이들의 선긋기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박 모씨의 사례처럼 주어진 소임에 대해 몰입감 있게,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에 집중하면서 “조용한 사직을 기꺼이 수리하겠다”고 나선 거죠.



조용한 사직이 마음속 진짜 사직서를 지운다?!

작년에 신사옥으로 이전한 현대캐피탈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뚜렷이 감지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기존부터 추구해 오던 유연한 근무 환경과 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해진 근무 시간에서 최상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공간과 시스템을 도입해 업계에서 주목 받았거든요.

현대캐피탈 신사옥의 철학은 무엇보다 자율적인 소통과 협력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CEO 집무공간을 중층에 배치하고 과감히 중앙 계단과 오픈라운지를 설치하는 등 권위를 허물기도 했습니다. 또 쾌적한 전망을 자랑하는 최상층 공간은 직원들을 위한 휴식, 상담, 힐링 공간으로 할애해 직원들의 마인드 케어와 함께 자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었죠.

한편 시간 안에 집중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은 직원 개개인마다 다른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 또 몰입하기에 좋은 위치, 어떤 땐 알맞은 조명과 자세, 방향 등 세세한 부분들이 결부되어 있기에 고정좌석제로는 한계가 극명해 보였습니다. 이에 현대캐피탈은 업계 최초 자율좌석제를 도입, “New Start, New Wave”라는 슬로건을 달고 신사옥에서의 새출발을 선언했습니다.

특히 자율좌석, 즉 정해진 ‘내 자리’가 없다는 건 직원 모두의 루틴과 근무 방식을 바꾸는 상징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매일 그날의 업무, 필요한 방식에 따라 자리 타입과 좌석을 정하고, 앱을 통해 출근 전 예약을 걸어두는 식이죠. 여기에 회사는 콘솔, 레이싱 등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펀존’이라는 오락실을 차리고 한 켠에선 진공관 앰프가 달린 클래식 스피커를 통해 음악 감상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느 금융사와는 확연히 다른 공간 개념을 통해 업무에 집중하게도, 과도한 몰입으로 인해 번아웃이 오는 걸 방지하게도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또 이를 통해 회사는 오롯이 직원 개개인이 집중 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와 환경이 효율 근무의 관건임을 입증하게 됐습니다.

‘조용한 사직’은 세대간 트렌드와 표현 방식이 바뀌었을 뿐 누구나 하나쯤 책상, 어쩜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히든 카드로서 사직서와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그 마음의 사직서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은 당연한 욕구로부터 나온,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마음 같지 않게 흘러가는 생활에서 상처와 충격파를 흡수하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통했습니다. 여기에 콰이어트 퀴팅은 이를 완충하고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도록 하는 등 순기능 하나를 보탠 겁니다. MZ세대의 업무관을 뒤바꾼 이 회사는 이들의 사직서를 수리하며 손 내밀게 된 격이고요. 그럴수록 책상, 또는 마음에 깊숙이 품고 있던 사직서는 지워지게 될 테니까요.




TIP. 다시 박 모씨의 얘기

확실히 선을 긋기까지 박씨는 한동안 입사 초기에 비해 열정이 사그라진 것 같은 자신을 탓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본인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게 많지 않고, 또 바뀐다고 해도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자각’에 이르게 된 거죠.

박씨와 같이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과 같은 상상은 우리 행동을 조절하는 데 꽤나 유용할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전환하게 되면 막연한 시간에 갇혀 있던 걱정과 불안을 떨칠 수도 있고 말이죠. ‘진짜 저녁’이 있는 삶은 이렇게 의식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가능해 질 수 있지 아닐까요? 단, 스위치에 따른 자신의 모드 전환은 확실하게! 그래야만 업무 외 시간에 가족과 함께, 혹은 개인의 취미와 운동 등을 즐기며 삶의 밸런스를 맞춰낼 수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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