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발목까지 내려온 바람을 한 번 뒤집어 볶는다.
꽃잎이 바닥에 떨어지는 속도를
접시 모서리로 받아본다.
짧게 숨이 들고 나간다.
그건 향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꽃잎절임.
물빛이 살갗에 스며든다,
아직 15도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
가을날,
낙엽은 얇아서 열에 쉽게 구겨진다.
잎맥에 남은 빛을
도마 위에서 눌러 퍼뜨린다.
빛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풀의 냄새가 천천히 끓는다.
그 국물은 진하고 가볍다.
풀빛육수다.
놓아야 하는 것을 오래 쥐면
색이 먼저 벗겨진다,
그 다음은 냄새다.
풀빛 냄새가 천 위로 스며—
옷자락에 남는다.
빛을 우려낸 국물은
맑지만 오래 식지 않는다.
빛수프다.
나는 계절을 여러 번 소비했다.
봄을 태우고
가을을 절이고
겨울은
그릇째 얼려 보관했다.
화구가 꺼져도
빛은 한참 더 남았다.
그건 다시 데운 빛이었다.
모든 계절이 빠져나간 뒤,
눈을 한 줌 쥐었다.
놓는 건 버리는 게 아니다.
빠져나가는 것을
눈 끝으로 붙들어 두는 일이다
눈발은,
그릇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