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계속되는 방식
관계는 종종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문장으로 읽는 데서 어긋난다.
이번 일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문제였다. 보증금과 이사 날짜, 그리고 잠깐의 대출 가능성 같은 것들. 다음 세입자와 일정만 맞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일이 그렇게까지 감정의 영역으로 번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긴장은 종종 사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기대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생긴다.
그리고 그 기대의 틈 사이에는 언제나 조금 더 복잡한 현실이 숨어 있다.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여러 층으로 얽혀 있는 생활의 조건들, 그리고 서로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했던 삶의 맥락 같은 것들. 나는 그 모든 현실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려 하는지 완전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만났고, 그래서 서로에게 품는 기대도 자연스럽게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형성되었다. 어떤 기대는 말로 확인된 것이었고, 어떤 기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기대는 언제나 작은 장면들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서로가 생각했던 관계의 형태가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날 밤에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그는 상황을 설명하려 했고, 나는 상황을 확인하려 했다. 나는 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미리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고, 그는 왜 이렇게까지 따져 묻는 걸까 하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같은 사건에서 출발한 두 문장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의심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는 의심받는 사람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대화를 멈췄다. 오늘은 만나지 말자는 문장을 보내고 나서 묘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마도 이유는 단순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말을 했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 역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관계라는 것은 때때로 누가 옳았는지보다 서로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로 정리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 알아온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은 서로의 기대를 다시 번역하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말은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서로 다른 기대를 조금씩 조정해 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사랑은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존재하는 감정이라기보다, 작은 오해와 설명, 그리고 잠깐의 침묵을 지나면서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감정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을 관계가 흔들린 순간이라기보다 관계가 계속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마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문장을 읽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장을 읽으면서도 같은 페이지 위에 머무르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