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깐 같은 방향이었다

어느 기차 안에서

by 서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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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역 (2026.02.)

플랫폼이 꽤 길었다. 레일은 멀리서 한 점으로 모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까지 보려고 하지 않았다. 기차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고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누군가는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고 벤치에 앉아 있었고, 누군가는 플랫폼 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관광객들이 서로 자리를 맞추며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면 풍경보다 먼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낯선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다리고, 어떻게 앉아 있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같은 기다림 속에서도 사람마다 시간이 조금씩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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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람푼으로 가는 기차역 객실안

기차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에 달린 작은 선풍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객차는 조금 낡아 보였고 손잡이가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바람이 천천히 객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손잡이를 잡고 서 있거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에 앉은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옆자리 사람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창틀에 팔을 올려놓고 바깥을 보고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한동안 같은 객차에서 같은 속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객차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퀴가 레일을 따라 미끄러지듯 굴러가고 플랫폼의 풍경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창밖으로 낮은 건물들과 낯선 간판들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길가의 나무들과 작은 가게들이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스쳐 지나갔다. 객차 안에서는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낯선 언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잠깐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풍경보다 이런 장면들이 더 오래 남는다. 잠깐 같은 객차에 있었던 순간, 잠깐 같은 풍경을 보았던 순간, 잠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던 순간들. 우리는 같은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잠깐 같은 방향이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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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플랫폼은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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