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이미 시작된 뒤에야 보인다. 바다는 먼저 움직인다. 수평선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놓여 있지만, 그 아래에서 물은 조금씩 기울고 있다. 그 기울기가 모이면 파도가 된다. 잠깐 몸을 세우고, 곧 무너질 형태를 만든다.
부딪힌다. 먼저 하얀 것이 생긴다. 안쪽이 뒤집히며 공기가 터져 나온다. 물은 넓어지고 가벼워진다. 그 순간, 파도는 더 이상 파도가 아니다. 형태가 풀리고, 이름도 함께 사라진다.
막 지나간 자리에는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 있다. 이미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진 물 위에, 조금 전의 표면이 겹쳐진다. 그 사이에서도 물은 계속 움직인다. 같은 높이를 허락하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반복하지 않는다.
지금 보이는 것은, 이미 지난 것이다.
흰 물이 바위를 타고 올라간다. 끝난 힘이 끝까지 가보려는 것처럼 조금 더 나아간다. 그러나 곧 멈춘다. 그리고 내려온다. 내려오는 물에는 방향이 없다. 방금의 충돌을 지우듯 흘러내린다.
다음 파도가 온다. 비슷한 자리, 비슷한 속도. 그러나 같지는 않다. 반복은 닮아 있지만, 일치하지 않는다. 멀리 등대가 서 있다. 닿지 못하는 방향. 파도는 매번 그쪽을 향해 몸을 만든다. 그러나 끝내 그곳에 이르지 않는다.
파도는 오고, 부딪히고,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늘, 방금 전의 파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