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9 21일 나만의 계획 세우기

인연은 걸음처럼, 천천히 깊어지는 것

by 이월규

글도 오래된 친구처럼, 삶에 온기로 남는다


이른 새벽, 대전에서 부천행 첫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은 상쾌했고, 공기마저 맑고 가벼웠다. 낯선 도시, 부천. 처음 가보는 도시이지만 이상하게 설렜다. 부평구청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사람들 얼굴엔 각자의 안부와 기쁨이 담겨 있었다. 저마다 하루를 품고 시작하는 얼굴들이 참 따뜻해 보였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40년지기 친구들을 만나는 오늘은 유난히 특별했다. 약간의 여유가 생겨 우연히 들른 민화 전시회. 늦은 나이에 다시 붓을 잡은 이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품들에서 감동을 받았다. 다양한 색감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얹어 탄생한 민화 앞에서 절로 발걸음이 멈췄다.


그중, 거친 바다를 가르며 두 마리 물고기가 힘차게 뛰어오르는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다. 튀어 오른 두 물고기가 공중에서 마주한 찰나, 민화 속 생명력과 눈앞의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 모습이 마치 삶의 기운이 솟구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나도 오늘 하루, 그렇게 힘차게 살아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들과의 시간은 왁자지껄하면서도 따뜻했다. 다리 부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친구까지 함께해 더욱 반가웠다. 안부를 묻고, 웃고, 잠시 울컥하고. 그 모든 대화 속엔 서로를 향한 깊은 염려와 응원이 녹아 있었다.


점심으로 곤드레 솥밥을 앞에 두고 우정을 한입씩 싸먹는 기분이었다. 알맞게 익은 열무김치처럼, 깊고 담백한 삶의 이야기들이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정원이 있는 조용한 카페 한켠에 앉아 나눈 대화는 세월과 추억을 천천히 익혀내듯 따스하게 이어졌다.


바느질로 인연을 이어가는 자야, 전원생활 속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현이,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도전하며 자신답게 살아가려는 선이. 각자 다른 삶의 결을 지녔지만, 모두 제자리를 지켜내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빚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40년의 우정은 단단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행복도,
인생도, 우정도 함께 걸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인연이란 꼭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스쳐가는 풍경, 우연한 장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인연은 조용히 피어난다. 글쓰기도 그렇게 내게 찾아왔다.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애써 거절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절 인연’이 되어.


블로그에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며 낯선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때로는 모르는 이의 진심 어린 댓글 한 줄에 하루가 따뜻해졌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말에 가슴이 찡해졌다. 글이 이어준 인연들은 내 삶에 생각과 감정을 더해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를 알고, 나를 만나고, 나를 사랑할수록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쓰는 글,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들. 그 모든 시작은 결국 ‘나’로부터였다. 내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디뎠기에, 지금 이 따뜻한 인연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정은, 때로는 회복의 힘이고 글쓰기는 인연을 이어주는 다리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걷는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글처럼, 우정처럼. 삶에 깊이 스며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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