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나를 위로하는 방법
오늘은 아침부터 무더웠다. 어린이도서연구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땀으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다. 정리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망설임 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 한참 집중하며 자료를 정리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창밖이 젖어 있었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내가 듣지 못했던 거다. 잠깐이었지만, 기습적인 소나기가 도시를 적시고 지나간 모양이다.
사람들은 오늘 같은 날, 갑작스러운 비에 당황하기도 하고 축축한 날씨에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말한다. 비가 오면 세상이 잠시 멈춘 듯 마음이 가라앉는다. 바쁘게 돌아가던 시간도, 소란스러운 마음도 그 순간만큼은 멈춰 선다. 비는 세상을 말끔히 씻어내며, 우리의 마음까지 정화해 주는 고마운 친구인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이면,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자주 듣는다. 이 노래는 마치 빗방울처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허스키한 음색, 느릿한 리듬, 낮게 깔린 멜로디, 담담한 듯 들리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안아주네…”
가사 한 줄, 한 줄이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 마음 구석구석을 두드린다. 그 울림은 마음속 깊은 감정들을 흔들어놓는다. 사랑하지만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 함께 있어도 점점 멀어지는 감정의 거리, 그리고 침묵 속에서 점점 짙어지는 외로움. 그 모든 감정이 노래 안에서 숨 쉬고 있다.
장필순의 목소리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꾹꾹 눌러 담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노래를 듣고 나면 마음 어딘가에 길게 여운이 남는다.
비와 음악은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해 주는
진한 언어이다
빗소리는 단지 듣는 것만이 아니다. 그 소리에는 분명히 냄새가 있다. 어릴 적, 비 오는 날이면 골목마다 흙냄새가 퍼졌다. 고무신을 신고 흙길을 뛰놀던 시절. 우리는 고인 물만 보면 일부러 첨벙이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물방울을 튀기며 웃고, 소리를 지르던 그날의 나. 그 냄새는 내게 기억을 불러온다. 비가 내리면 나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지금은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살고 있다. 시멘트 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은 낭만보다 무거운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아스팔트 냄새보다 흙냄새가 더 익숙해진 세대이다.
그래서일까.
비 오는 날 시골에 가면 나는 일부러 창문을 활짝 연다. 풀 냄새, 젖은 나무껍질, 낡은 벽돌에서 나는 시골 냄새. 그 냄새 속엔 시간과 감정, 추억이 담겨 있다. 내가 잊고 살았던 어릴 적 기억이 비 냄새를 타고 돌아온다.
누군가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거리를 걷는다. 몸을 적시며 감정을 흘려보내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얻는다.
나는 조금 다르다.
조용한 방 안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음악을 틀고, 창밖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나와 마주한다. 책장 몇 장을 넘기거나, 멍하니 흐르는 빗물만 바라봐도 충분하다. 마음속 어지러운 감정들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한다.
“비가 와서 세상이 잠시 멈추듯,
너도 잠시 멈춰 쉬어가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