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몰아쓴 일기와 곤충 채집의 기억

미뤘던 숙제 속에 담긴 기억과, 어린 날의 조용한 성장 이야기

by 이월규

이상하게도 여름방학 일기는 아직도 내 추억 속에서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신나게 한 달을 놀고 나면, 개학을 앞두고야 비로소 일기장이 떠오르곤 했다.


“아, 일기장!”


그제야 잊고 있던 숙제가 머리를 번쩍 스치고, 나는 그제야 책상 앞에 앉았다. 놀았던 만큼, 쓰기 싫은 마음도 컸다.기억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떠올리며 씨름하던 그 시간이란. 그 중에서도 가장 난감했던 건 ‘날씨’였다.


요즘처럼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시절. 나는 늘 “맑음 또는 가끔 흐림”이라는 표현으로 하루를 채웠다. 비 오는 날에는 ‘집에서 책을 읽었다’고, 맑은 날에는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쓰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복사한 ‘여름방학 일기장’이었다.


그래도 꼼꼼한 선생님의 눈을 피하려고 펜 색과 글씨체를 바꿔 써보기도 했다. 어린 날의 귀여운 꼼수였지만, 지금 떠올리면 따뜻한 추억이다.


여름방학 숙제 중 가장 고독했던 숙제 바로 곤충 채집이다. 내게는 그 어떤 과제보다 까다롭고, 무엇보다 ‘외로운’ 숙제였다. 잠자리, 나비, 풍뎅이, 심지어 매미까지. 곤충을 잡아 상자에 담고, 핀으로 고정해 표본을 만드는 과정은 가장 힘든 과학 숙제였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함께 곤충을 잡아줄 형제도, 친구도 없었다는 것. 나는 늘 혼자였다. 형제가 없던 나는 야산이며 들판을 혼자 헤매야 했다. 한 손에 잠자리채를 들고, 뙤약볕 아래 들길을 걷던 그 길은 어린 나에게 작은 모험이자, 용기를 시험하는 길이었다.


가끔은 잠자리 한 마리를 놓친 게 속상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어렵게 잡은 잠자리를 핀으로 고정할 때, 얇은 날개가 찢어지면 마음이 아렸다. 생명을 다룬다는 일이 이렇게 조심스럽고 숙연한 일이란 걸,

나는 그 여름 처음 배웠다.


그 여름날, 나만의 성장 일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내가 만든 어설픈 곤충 표본 하나에도 수많은 감정과 기억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결국 마지막엔 부모님의 손을 빌려 숙제를 마무리했지만, 곤충 채집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나름의 배움과 성장을 경험했다. 그 여름의 숙제는 ‘과제’가 아니라 소중한 성장의 기록이었다.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서툴렀지만 그 여름방학 숙제는 지금도 내 안에서 따뜻하게 살아 있다.


어쩌면 그 숙제들이 나의 작은 성장 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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