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토양 위에 피어난 행복의 정의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운명에 달려 있다고.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운명은 우리에게 단지 기회의 재료와 씨앗을 제공할 뿐이다.” 인생의 결은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외면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밝은 견해와 맑은 마음속에 깃든다.”
얼마 전, 지인이 푸념하듯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다 운이 없는 탓이야.”
하지만 나는 안다. 그의 인생에는 분명 몇 번이나 좋은 기회가 찾아왔었다는 것을.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
문제는, 그 기회를 어떻게 대했느냐였다.
젊은 시절 그는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세상이 영원히 자기편일 거라 착각했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지금의 탄탄함이 계속될 거라 믿었다.
행복의 씨앗이 손에 쥐어졌음에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기회는 언제나 겸손하고 준비된 사람에게 문을 연다. 하지만 그는 기회가 올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남 탓을 하며, 스스로 씨앗 위에 흙을 덮어버렸다.
요즘 그는 무기력하다. 과거의 행복만 붙잡은 채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불행의 희생양이라 여기며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반면, 나의 또 다른 친구는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있다. 몸은 불편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감사의 미소가 깃들어 있다.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에 고마워하며, 스스로 누군가를 도울 수 없음에 미안해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병이 내 운명이라면,
나는 이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긍정의 마음으로 끝까지
같이 갈 거야.”
그의 태도는 조용하지만 깊고 단단하다. 몸은 아파도, 그는 삶의 방향키를 스스로 쥐고 있다. 마음의 키를 조정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자기 의지로 살아간다.
그를 보며 나는 ‘행복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불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짜 불행은, 마음을 잃었을 때 시작된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기회와 성공이 손쉽게 오기를 바라면서 노력보다는 결과를, 과정보다는 보상을 원한다. 그리고는 “운이 없어서”라며 인생을 부정적으로 넘기곤 한다.
그러나 행운의 씨앗은 준비된 마음에만 뿌리내린다.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처럼, 진심과 정성은 결국 복을 불러온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 작은 씨앗 하나를 손에 쥐고 세상에 나온다. 그 씨앗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그 씨앗이 행복의 꽃으로 피어날지, 불평의 잡초로 뒤덮일지는 바로 내 마음의 토양이 결정한다.
삶 속의 밝음과 어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내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내가 쥔 운명의 씨앗을 불만과 후회로 썩히지 않겠다고. 마음의 흙을 고루 펴고, 긍정의 물을 주며, 그 씨앗이 꽃피우는 날까지 정성껏 키우겠다고.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단지 ‘씨앗’이라는 재료일 뿐이다. 그 씨앗을 불행의 그늘 아래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의미 있는 삶의 꽃으로 피워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마음에 달려 있다.
삶이라는 희로애락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운명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명과 함께 살아내는 법을 안다.
나는 오늘도 마음의 방향을 긍정으로 돌리며, 행복이라는 꽃을 조용히 피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