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칭찬한다

대견한 나에게 바치는 한 편의 글

by 최자두

결혼을 하고 나는 경단녀가 되었다.
전공을 살릴 수도 있었지만, 입덧이 심해 결국 집 안에 머물러야 했다.

신랑이 벌어다 준 돈으로 아이를 돌보며 주부가 되었지만, 그 생활은 점점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내가 번 돈이 아니니 쓰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1만 원짜리 티셔츠 하나 사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날들이었다.

둘째가 태어나자 ‘나,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둘째아이가 11개월 될 무렵, 아울렛 오픈 알바를 시작했다.
단 3시간의 일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황금처럼 소중히 여겼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살아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 경험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쥬얼리 매장을 맡아보기도 했고, 더 큰 도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보험업계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선택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쉽지는 않았다. 배우는 것도 많았고, 때로는 “너의 자리는 없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메이저 보험사에 입사했다.
그 곳은 내 인생의 봄이었다.
다정하게 가르쳐주고, 실수에도 괜찮다 말해주는 환경 속에서 나는 다시 자랐다.


둘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등하교를 챙기며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다 보니 거주지역의 GA대리점 설계매니저로 전환을 하게되었다.
처음부터 유에서 무를 만들어야 하는 업무이고 매출을 이끌어내야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해냈다.
인정받는 매니저가 되었고, 많은 설계사들이 “매니저님 덕분에 일이 즐겁다”고 말해주었다.

변화는 계속 있었다. 구조조정, 조직 이동, 시기와 질투, 심지어 모함까지…
그러나 나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해졌고, 또 다른 시작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교육이라는 새로운 길을 받았다.
“상품 교육, 해보시겠어요?”라는 지점장의 한마디에,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섰다.
지금 나는 함께하는 수많은 설계사들 앞에서 강의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이제 나는 누구보다 대견한 사람이다.
많이 벌지 않아도,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아도, 나는 내 삶을 정말 잘 살아왔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칭찬하고 싶다.

대견하다, 자두야.
정말 잘 버텼고, 참 잘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아주 멋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 자존감은 나 혼자 키운 게 아니었다.
사회라는 무대가 있었기에 나는 버틸 수 있었고,
그 무대 위에서 나는 내 힘을 확인했다.
가정 안에서는 작아졌던 내가, 사회에서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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