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가는 알아차림
요즘 나는 시댁에 연락하지 않는다.
안부도 묻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
예전 같았으면 의무감에라도 전화를 하고, 억지로라도 찾아가 얼굴을 비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래도 되는 것을.
그동안 내가 했던 수많은 행동은 사실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했다.
신랑의 부모님이라면, 나에게도 부모님 같다고 믿었다.
‘나도 가족이다’라는 마음으로, 억지보다 순수한 품음에 가까웠다.
그게 나에게 해가 된다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순수함이 더 단단한 끈이 되어 주길 바랐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나는 또다시 흔들렸다.
시댁의 방식이 떠오르자, 억울함과 답답함이 가슴을 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결핍을, 그들은 알고도 건드린 게 아닐까.’
그 생각이 나를 덮치자 화가 나고, 속이 조여왔다.
순간,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게 바로 휘둘림이구나.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 휘둘림을 알아차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한참을 빠져 헤매고 있었을 텐데,
이제는 흔들리는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눈이 함께 열린 것이다.
나는 휘둘린다. 그러나 곧 알아차린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휘둘림 속에서도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다는 것,
그것이 자유로움의 시작이었다.
--- 그래서 엄마는 이제 알겠다.
잘 산다는 건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흔들려도 끝내 자기 마음을 지켜내는 거라는 걸.
너희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더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 엄마가 –
---
나는 다시 원점으로 가지 않는다.
흔들려도, 나는 금세 돌아올 수 있다.
휘둘림과 알아차림을 동시에 터득한 내가, 앞으로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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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몇 해 동안 나는 답을 찾아 헤맸다.
몇 년 동안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 회복탄력성의 김주환 교수, 그리고 여러 심리학자와 상담가들의 강연이 줄지어 떴다.
휘둘림과 감정의 우물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내 마음을 지켜내고 싶어서였다.
그 메시지 조각들은 흩어진 듯 보였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알았다.
휘둘림과 알아차림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
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졌다는 것을.
휘둘림은 결국, 시댁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품어온 감정의 무게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무게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완성된 눈으로, 새로운 길을 걷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깨달음이, 나처럼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